기다리는 자들
12월 15일부터 17일.
달력 위에서는 그저 평범한 사흘에 불과하지만 입시의 세계에서 이 기간은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수시모집 최초 합격자 등록 기간'
이 기간은 선택받은 학생들의 시간이다. 수시라는 여섯 개의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겨 중복해서 명중시킨 아이들은 이제 자신이 쥔 선택지들을 펼쳐놓고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A 대학의 경영학부냐 B 대학의 경제학과냐. 그들의 선택은 곧 누군가에게는 기회라는 이름의 빈자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기간이 끝나면 등록일 다음 날부터 대학별로 '충원 합격자 발표'라는 피 말리는 2차전이 시작된다. 예비 번호를 부여받은 학생들에게는 희망 고문의 시간이자 운이라는 변덕스러운 신이 주사위를 던지는 순간이다. 작년에는 내 앞번호까지 빠졌는데 올해는 내 차례에서 멈춰버릴 수도 있고 반대로 작년엔 꿈도 못 꿨을 번호인데 올해는 기적처럼 문이 열리기도 한다.
이 기간 동안 입학처 전화기는 안타까운 사연들의 집합소가 된다.
"등록 기간을 깜빡하고 놓쳤어요.", "다른 대학에 등록했다가 마음이 바뀌어서 포기했는데 다시 번복할 수 없나요?", "아이가 상의도 없이 지 마음대로 결정해 버렸어요.", "분명 등록 버튼을 눌렀는데, 전산 오류인지 등록이 안 됐어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들은 절박하고 때로는 애원하며 때로는 분노한다. 하지만 내 대답은 늘 건조한 앵무새(입학처를 상징하는 새가 있다면 앵무새가 아닐까 싶다.)처럼 반복될 수밖에 없다.
"죄송합니다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입시라는 거대한 시스템은 단 한 번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 비정한 원칙 위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기회는 버스 문처럼 냉정하게 닫히고, 그 빈자리는 즉시 다음 순번의 학생에게 넘어간다.
한 사람의 사정을 봐주기 시작하면 그 뒤에 줄 서 있는 수백, 수천 명의 운명이 뒤엉켜버린다. 융통성이라는 단어가 입시판에서는 가장 위험한 폭탄이 되는 이유다.
누군가가 더 나은 선택을 찾아 떠나며 남긴 포기는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기다려온 기회가 되고 누군가가 찰나의 실수로 놓쳐버린 자리는 누군가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되어 굴러들어 온다. 그것은 타인의 불행이나 부주의가 나의 행복이 되는 참으로 기묘하고도 냉혹한 현실이다.
이 피 말리는 충원합격 버스에 탑승하지 못한 학생들은 이제 수시의 문을 닫고 정시라는 좁고 차가운 문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창밖으로 12월의 건조한 바람이 분다. 전화벨이 다시 울린다. 나는 잠시 멈췄던 숨을 고르고 수화기를 든다. 이 얇은 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누군가의 환희와 누군가의 절망.
나는 그저 상관없는 사람인데도 감정이라는 것은 때때로 공기 중에 부유하는 바이러스처럼 방어막을 뚫고 전염된다. 합격한 아이의 터질 듯한 심장 박동이 내 혈관을 타고 흐르고 기회를 놓친 아이의 깊은 한숨이 내 명치를 묵직하게 누른다.
타인의 기쁨과 슬픔이 나에게까지 닿는다. 오늘도 소용돌이치는 이 기묘한 울렁임은 아마도 그들의 눈물과 웃음이 남긴 긴 여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