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이중등록 합격 취소

불운의 시계태엽

by 우주별

충원 합격자 발표 기간 특유의 날 선 긴장감 그리고 그 긴장을 억누르기 위해 습관처럼 들이킨 카페인으로 새벽 내내 뒤척이다 동이 트고서야 겨우 얕은 잠에 들었다. 평소 출근 시간에 맞춰진 생체 리듬 덕분에 토요일임에도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습관적으로 시간을 확인하려 집어 든 휴대전화 액정에는 낯선 번호의 부재중 전화가 덩그러니 찍혀 있었다.

오전 8시 반.

입학처 직원에게 저장되지 않은 번호란 대개 불길한 징조와 동의어다. 즐거운 합격 감사 인사보다는 절박한 호소나 날 선 항의일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으니까. 나는 막연하지만 묵직한 불안감을 안고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화기를 받은 사람은 어제 다녀간 학생의 아버지였다.

나는 잠시, 수차례 내선 연결을 시도하다 실패했다며 답답함을 호소하는 그에게 결국 개인 번호를 알려주었던 어제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업무는 내선 전화로 끝내야 한다는 철칙을 상황의 절박함 탓에 어긴 대가는 주말 아침의 불안한 통화로 돌아왔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건조했지만 물기를 가득 머금은 모래처럼 무거웠다. 대화의 내용은 어제 사무실을 찾아와 눈물을 쏟던 아이 엄마와의 그것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정말 방법이 없습니까?"라는 질문과 "안 됩니다"라는 대답의 무한 도돌이표.


사건의 전말은 충원 합격자 발표 기간, 우리 대학에 합격한 아이는 기쁨에 겨워 등록을 마쳤다. 문제는 그 아이가 이미 다른 대학에 등록된 것으로 대교협 시스템에 떴다는 점이다. 아이는 먼저 합격했던 대학에 등록 포기 신청을 했지만 시스템에는 반영이 안 됐던 것이다.(먼저 합격했던 대학에서 등록포기 승인이 늦었을 수 있다. 그리고 대교협 위반자 시스템은 실시간 반영이 아니라 대학이 포기자 자료를 올리면 대학에서 올린 자료들을 수합해서 시간대별로 시스템을 돌리고 있다. 이로 인해 약간의 시간차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아이는 '이중등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비극적일 만큼 순진하게 오해하고 있었다.

지원자는 등록 과정에서 실수로 마우스를 더블클릭해서 전산상으로 두 번 등록되어 버린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 엉뚱하고도 거대한 공포감에 휩싸여 먼저 등록한 대학을 포기 신청한 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우리 대학의 등록마저 '포기' 버튼을 눌러버렸다.

스스로 합격을 취소해 버린 것이다.

더 큰 비극은 '수시 합격 이력'은 남는다는 점이다. 등록을 하지 않아도 합격한 사실 자체가 존재하기에 아이는 정시 모집에도, 추가 모집에도 지원할 수 없는 '입시 미아'가 되어버렸다.

등록 마감 시간인 오후 4시 직전, 입학처 사무실로 뛰어 들어와 우는 딸을 달래며 돌아가던 모녀의 뒷모습은 최근 내가 본 가장 서글픈 풍경 중 하나였다.


"대체 이 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 겁니까?"


아버지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침묵했다. 입 밖으로 내뱉고 싶은 말은 명확했다.

"따님입니다. 가장 큰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삼키고, 규정과 원칙이라는 매끄러운 단어들로 문장을 에둘러 포장했다.


물론, 아버지가 상황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몰라서 전화를 건 것은 아닐 테다. 밤새 방에서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 딸의 등을 보며 가장으로서, 한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입학처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뻔한 하소연이라도 하는 것뿐이었으리라.

'아빠가 뭐라도 해봤다'는 그 무력하지만 필사적인 제스처라도 보여주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을 내가 모르지 않기에 나는 그 건조하고 무거운 항의를 묵묵히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끊고 힘이 빠져 한동안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바닥만 쳐다봤다.


이 비극은 사실 아주 사소한 불운들이 켜켜이 쌓여 맞물린 결과였다.

만약 먼저 등록했던 대학이 포기 신청을 즉각 승인해 줬다면 어땠을까.(신입생 충원이 급한 일부 대학들은 포기 승인을 고의로 늦추곤 한다. 그들의 생존 본능이 아이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 원인 중 하나다.)

만약 아이가 이중등록의 개념을 '더블클릭 실수' 따위로 오해하지 않고 조금만 더 차분하게 파악했다면.

그리고 등록 포기라는 절차가 요구하는 그 복잡한 휴대폰 인증 과정 속에서 단 한 번이라도 "정말 포기하시겠습니까?"라는 팝업창을 진지하게 읽어보았다면.


수많은 '만약'들이 아이의 손가락 끝에서 빗나갔다. 그 작은 엇갈림들이 모여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불행이란 거창한 악의를 가진 괴물의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그저 타이밍이 맞지 않은 신호등이나 찰나의 오해, 그리고 서두름 같은 사소한 얼굴을 하고 우리를 찾아와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시 잠을 청하기엔 이미 의식이 너무 또렷해져 있었다. 커튼을 젖히자 창밖에는 금방이라도 무언가 쏟아질 듯 무겁고 낮은 회색 구름이 도시를 짓누르고 있었다. 저 흐린 하늘 아래서 지금쯤 세상의 모든 문이 닫혀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을 열아홉 살의 아이를 생각하니 입안이 모래를 씹은 듯 까끌거렸다.








덧붙임)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반전이 일어났다. 오늘(12.23.), 전화 충원 마지막 날 오후 4시경, 그 아이가 기적적으로 마지막 남았던 우리 대학 충원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쥔 6장의 카드 중 2장은 본인의 실수로 찢어버렸고(우리 대학 포함), 3장은 지나친 상향 지원으로 이미 불쏘시개가 된 상태였다. 남은 것은 단 한 장.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던 교과 일반전형(포기했던 과와 같은 과)'뿐이었다. 역대 입시 결과로 보나 뭐로 보나 예비 번호가 돌아올 리 만무했고 설상가상으로 모집 인원마저 전년 대비 5명이나 줄어들어 문틈은 바늘구멍보다 좁아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기어이 그 바늘구멍으로 낙타를 통과시켰다. 켜켜이 쌓인 불운인 줄 알았던 그 모든 과정이 어쩌면 이 마지막 대반전을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복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축하한다. 부디 대학에서는 '더블클릭'을 조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