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들의 크리스마스

에어 슈트와 함께 정시 시작

by 우주별

입학사정관에게 9월 이후 달력의 빨간 날은 특별한 휴일이 아니라 그저 평일과 똑같은 '검은색 날'에 불과하다. 9월 수시 원서 접수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이듬해 2월 말 추가 모집이 끝날 때까지 우리에게 '연휴'란 사전 속에나 존재하는 죽은 단어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남들이 송편을 빚는 추석에는 수백 명의 생활기록부 평가 더미에 파묻혀야 하고 떡국을 먹어야 할 구정에는 정시 합격자 발표와 추가 모집 준비로 사무실 바닥을 굴러다녀야 한다.

크리스마스라고 예외일 리 없다. 오히려 수시 마감과 정시 준비라는 두 개의 거대한 파도가 겹쳐오는 가장 잔인한 시기일 뿐이다.


그러니 12월 23일 수시 모집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충원 합격자 발표 버튼을 눌렀다고 해서 샴페인을 터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일 16시 등록 마감'이라는 데드라인이 여전히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으니까. 우리는 등록률이라는 숫자를 건져 올리기 위해 보이지 않는 그물을 던져놓고 건조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크리스마스는 케이크 위의 촛불처럼 빠르게 타들어 갔고 12월 26일 아침이 밝았다.

이날은 입학처의 달력에서 붉은색 펜으로 동그라미가 쳐진 날이다.

수시에서 등록을 포기한 인원을 정리하고 그 빈자리를 '이월 인원'이라는 이름으로 정시 모집 인원에 합산하여 업로드해야 하는 날. 입시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날이다.


출근과 동시에 사무실은 1분 1초가 아쉬운 전장의 한복판처럼 치열하게 돌아갔다. 지역 대학별 수시모집 문서등록률을 취합해 윗선에 보고해야 했다. 그것은 일종의 대학별 성적표와 같아서 내 성적표를 바탕으로 다른 대학의 성적표를 훑어볼 수밖에 없다. 숨 쉴 틈도 없이 국회 요청 자료들이 공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학교폭력 가해자 합격 현황, 특기자 전형 통계... 거기에 "내가 왜 떨어졌느냐"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국민신문고 민원까지. 오늘을 보고자료와 공문서 사이를 오가며 하루를 태웠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계는 퇴근 10분 전.

그제야 사무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쇼핑백들이 눈에 들어왔다. 팀원들과 약속했던 '크리스마스 뒤풀이 이벤트' 용품들이었다. 원래는 24일에 했어야 했지만 수시 일정 탓에 미뤘고 오늘마저 넘기면 이 산타와 눈사람 옷들은 내년까지 창고에서 곰팡이와 친구가 되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전장을 누비느라 머리는 헝클어지고 눈은 퀭한 팀장의 눈치를 보느라 팀원들은 쇼핑백을 만지작거리지도 못한 채 시무룩하게 앉아 있었다.

그 침울한 정적을 깨고 내가 외쳤다.

"뭘 멍하니 있어? 얼른 입어! 10분이면 충분해!"

하루 종일 미친 듯이 뛰어다니던 팀장이 이제야 말을 꺼내니 팀원들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퇴근 시간이 미뤄질 것이 명백한 이 무모한 말에 그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사무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윙-' 하는 모터 소리와 함께 납작했던 천 조각들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 이벤트를 주도한 건 E사정관이었다. 본인은 극도로 내향적인 'I'라고 주장하지만, 아무리 봐도 태생적 관종인 '극 E'가 분명한 그녀는 눈사람 복장에 산타 목도리를 두르고 지휘자처럼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가장 압권은 수시 모집의 핵심이자 학생부 교과 전형을 담당했던 R사정관이었다. 에어 크리스마스트리 복장을 입고 부풀어 오르자, 사무실의 절반이 꽉 차는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부피를 가늠하지 못하고 출입문에 끼어 버둥거렸고 그 모습은 마치 굴뚝에 낀 거대하고 초록색인 곰 같았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과묵한 정시 담당 S사정관. 평소라면 업무 외에는 관심 없다는 듯 무표정한 그가 사람들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가 웃으며 퇴근하는 모습을 보는 건 수능 만점자를 배출하는 것만큼이나 희귀한 광경이었다.

우리는 좁아진 문을 낑낑거리며 빠져나와 복도에서 하하 호호 사진을 찍었다. 지나가던 다른 부서 직원들이 미친 사람들을 보듯 쳐다봤지만 상관없었다.

서툰 몸짓으로 뒤뚱거리는 산타와 눈사람, 그리고 문에 낀 트리.

입학 업무라는 건 기본적으로 19살 아이들의 인생 무게를 짊어지는 고단한 일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나사 풀린 듯한 '미친 짓'들이, 그 무게를 견디게 하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되곤 한다.

10분간의 짧고 강렬한 소동이 끝나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에어 슈트를 벗어던진 우리는 다시 평범한 얼굴로 돌아와 서둘러 퇴근 준비를 했다.


긴 수시는 끝났고, 이제 또 정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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