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입학(치, 약) 필답고사 고개 넘기

치의예과 약학과 편입학 필답고사 풍경

by 우주별

치학과와 약학과 편입학 필답고사가 치러진 오늘 아침

편입학의 입시는 지금까지의 신입학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신입학 수시나 정시 모집 때 느껴지던 솜털 보송보송한 고교생들의 들뜬 불안감이나 어수선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잘 벼려진 칼날 같은 차분함과 무거운 침묵이었다.

편입학 치학과 약학과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이미 입시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은 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이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고사장 풍경은 그 여느 입시와는 다른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신분증 미소지자는 수백 명 중 단 한 명뿐이었고, 입실 마감 시간인 10시를 넘겨 헐레벌떡 뛰어오는 지각생이라는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은 는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간과 규칙을 자신의 신체 리듬처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가장 낯설었던 건 고사장 건물 밖의 풍경이었다. 영하를 밑도는 한겨울의 칼바람이 부는 날씨였다. 하지만 학생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밖의 벤치에 줄지어 앉아 있었다. 고사실 내 전자기기 소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미리 파악한 그들은 입실 마감 5분 전까지 밖에서 마지막 한 줄이라도 더 읽기 위해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동도 없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제 지원 자격 서류를 검토하며 확인한 그들의 전적 화려한 대학이 떠올랐다. 이미 공부로는 대한민국에서 성공의 맛을 본 아이들. 그들에게 '공부'란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 숨을 쉬거나 물을 마시는 것처럼 이미 몸에 깊이 배어버린 습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 고요한 등들이 내뿜는 집중력은 경이로우면서도 동시에 서글픈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미 훌륭한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이 수많은 인재들이 다시 한번 인생의 경로를 틀기 위해 의학 계열이라는 좁은 문으로 몰려드는 현실.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 빛을 발해야 할 재능들이 모두 거대한 블랙홀처럼 이곳으로만 빨려 들어오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리고 그 벤치 너머에는 부모들이 있었다. 시험을 치르는 이들은 이미 성인이 된 지 오래지만 부모에게 자식은 영원히 물가에 내놓은 아이인 모양이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뜨지 않고 두꺼운 패딩 점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굳게 닫힌 고사장 문을 응시하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나는 부모라는 역할이 주는 영원한 형벌 같은 무게를 느꼈다.

고사장의 하루는 날 선 긴장감 속에서 흘러갔다. 묵직한 문제지 봉투들을 가지고 고사장으로 이동하는 순간부터 필답고사 진행, 답안지 회수 및 인계, 그리고 OMR 카드 판독까지.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천길 낭떠러지 옆의 좁은 길을 걷는 위태로운 세계다. 한 번 발을 헛디디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줄타기와도 같다. 다행히도 준비하면서 가장 두려워했던 '출제 문제 오류 시비'나 민원, 부정행위 같은 불미스러운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입학처 직원에게 있어 이보다 더 완벽한 결말은 없다.

고사를 운영하는 동안에는 그 공간을 지배하는 무거운 중압감과 살벌한 분위기가 일종의 각성제 역할을 했다. 마치 전장의 한복판에서 스팀팩이나 모르핀을 투여받은 병사처럼, 통증도 피로도 잊은 채 복도를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하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더 깊은 고통이 찾아오는 법.

모든 고사가 끝나고 긴장의 끈이 탁 끊어지는 순간, 몸은 녹아내린 양초처럼 흐물거렸고 물 먹은 솜처럼 무겁게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또 한 번의 거대한 파도를 넘었지만 수평선 너머에는 면접고사와 정시 실기고사라는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수시 모집이 긴 호흡의 마라톤이라면, 정시와 편입학은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전력 질주 구간이다.

사실, 정말로 견디기 버거운 것은 육체적인 피로가 아니다. 문제지를 나르느라 뻐근해진 어깨나, 온종일 뛰어다니느라 부어오른 종아리는 하룻밤의 숙면으로 타협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날 선 긴장감이 주는 중압감은 성질이 다르다.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면도칼을 삼킨 것처럼, 언제든 내면을 벨 것 같은 공포감을 주기까지 한다. 누군가의 인생이 걸린 시험이라는 무게, 그 책임감이 주는 부담은 육체의 피로보다 훨씬 더 깊고 집요하게 정신을 갉아먹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퇴근하지 못하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모니터 구석에서는 교육부에서 보내온 다양한 요구자료 목록들이 적혀 있다. 투서 바탕의 민원으로 인한 교육부의 방대한 입시 관련 자료 요구(억울한 입학처 입장에서는 바쁜 시기에 이런 요구들이 버겁다). 공문들은 퇴근 시간을 가로막고 서 있다. 창밖은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렸고, 나는 오늘 몇 잔 째 인지도 모를 쓴 커피를 습관적으로 들이키며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다. 수없이 반복해 온 계절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더 힘든 것 같다. 입학처의 겨울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겨울밤처럼 여전히 어둡고 춥고, 버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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