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31
현관 도어록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분명 곤히 자고 있어야 할 녀석이 거실 한복판에 떡하니 앉아 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뺨에 남은 베개 자국이 역력한데
마치 처음부터 깨어 있었다는 듯 태연하게 그림책을 넘기고 있다.
17개월의 능청스러운 연기
모의 전형 준비로 지친 몸을 이끌고 서재에 앉자
우주는 슬그머니 따라 들어와 제 머리에 모자를 뒤집어쓴다.
그러고는 책장에서 제일 두꺼운 책을 골라와 내 무릎 위에 툭 던져놓는다.
"이거 읽어줘." 혹은 "나랑 놀자."
거창한 위로도 대단한 휴식도 필요 없다.
지금 내 무릎 위의 이 따뜻한 무게감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