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봄
어느 날은 이유 없이 창문을 오래 열어 둔다.
아직은 차가운 공기인데도, 이상하게도 닫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알게 된다.
아, 봄이 오는 중이구나.
봄은 늘 그렇게 온다.
확실한 선언도 없이, 한 번에 환해지지도 않은 채,
아주 느리고 조심스럽게 우리 곁을 더듬는다.
햇빛이 조금 부드러워지고,
두꺼운 외투가 어딘가 어색해지고,
화분의 흙이 문득 마른 냄새 대신 젖은 냄새를 품을 때—
그때 우리는 비로소 계절의 방향을 눈치챈다.
생각해 보면 봄은 시작의 계절이라기보다,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계절에 더 가깝다.
겨울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접어 두고 산다.
움직임을 줄이고, 마음도 조금은 안쪽으로 말아 넣는다.
견디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의 하루는
자연스레 조용해지고, 단단해진다.
그래서 봄이 오면
세상이 변하기 전에
먼저 마음이 풀린다.
굳어 있던 생각이 조금 느슨해지고,
미뤄 두었던 계획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괜히 한 번 더 걸어 보고 싶은 길이 생긴다.
아마도 우리는
계절과 함께 용기를 배우는 지도 모른다.
나무가 아무 망설임 없이 새잎을 내미는 것처럼,
흙이 아무 설명 없이 싹을 밀어 올리는 것처럼,
삶은 때가 되면 다시 움직인다는 사실을
봄은 매년 조용히 증명해 준다.
그래서 나는 봄을 좋아한다.
무언가를 크게 바꾸게 해서가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을
슬쩍 건네주기 때문이다.
오늘 창밖의 공기가 조금 다르다.
아직 완연하지는 않지만,
분명 어제와는 다른 결.
나는 괜히 창문을 조금 더 열어둔다.
봄이
잠시
머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