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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듯이 May 30. 2020

_장독대

감칠맛



할머니의 오랜 경험으로만 가능한, 무심한듯한 눈대중 요리법에는 철학이 있었다
조선장 한 큰 술 정도의 양이 부추 위에 겉돈다  또르르.. 방울:멍울 고춧가루도 적당히 훗 훗 감칠맛을 더 하는 참깨와 참기름은 야채의 신선한 맛을 증감시켜준다  그 조선 장맛과 직접 농사지으신 작물들의 조합은 따라 하기 어려운 요리 비책의 선물이었다 (칼자루가 빠진) 버려질 만한 칼은 무명천으로 돌돌 잘 싸매져 밭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덕분에 빠짐이 없이 부드러운 힘을 전달할 수 있었다 송송, 숭숭 하루하루 잘 크는 부추밭 옆에 날이 무디어 퇴색되어 보일지라도 추억 속에 그 밭에서는 운치를 더한다 부숭부숭 들풀 같은 부추 위 줄기는 유용하게 적당히 잘 베어 내주니, 역할상 꼭 필요한 무명천 두른 칼이다. 한번 부추밭이면 그냥 줄곧 해가 바뀌어도 부추 밭이다 갈아엎어서 뿌리를 뻗지 못하게 하기 이전까지는.. 우연히 찾게 된 조선장. 장인의 간장으로 할머니의 부추김치를 재현해 보기를 시도해 봤지만, 역시나 만드는 사람이 다르고 간장 맛이 다르니 감히 같을 수가 없다 비슷하게 흉내 내보이는 것 , 그게 나름의 최선 일께다

옛 조상들은 말 날 닭 날, 손 없는 길일에 장을 담가야 장이 끓어 넘치지 않고 음식 궁합도 좋다고 하여 길일을 택해 장 을 담그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대충 그 날이 언제 인지는 그냥 할머니께서 장 담그는 날이었겠거니 가늠해 본다

불려 놓은 메주콩을 가마솥에 안치고 뭉근하게 삶아내어 널따란 대나무 채반 위에서 남아 있는 물기를 내리게 하고, 식기 전에 재빠르게 콩알을 으깬다 콩 쪽이 드문드문 있을 때까지 찧은 후 콩 덩어리로 모양을 잡고 한 되 틀에 담아 사각형으로 만든다 하얀 곰팡이를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발효시키고, 소금은 소금장수 아저씨의 트럭이 시골 동네를 돌아다니며 팔 때 사두었다가 밑동이 구멍 난 항아리에 담고 간수를 빼둔다 장이 담길 간장독은 거꾸로 뒤집은 상태로 살짝 곁들고 볏짚 태운 불씨와 연기로 소독을 마치고 발효가 잘 된 메주를 담고 물과 간수를 뺀 소금으로 염도 조절을 하여 항아리에 채운다 메주가 동동, 둥둥 떠 다닌다(재밌다, 별게 다) 둘의 일체는 하나가 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처음은 늘 어색하니까.. 크으(친해져라 친해져) 메주와 소금물아~~ 햇살 빨갛게 잘 익은 태양초 건고추와 대추 몇 알 그리고 굵은 참숯을 몇 개 넣고 제대로 된 장이 되어주기를 기다리는 것, 기다림이 남은 과제다 그 많던 메주는 어느 날인가 보면 하나도 없고, 처음에는 불투명하던 소금물이 까맣게 되어 있더라니.. 독 안에서 마법을 부렸나~~ 태양이 간장물에 반사되어 모습이 비칠 거울 정도가 되면 그즈음 사용될 수 있었나 하는 아스라한 기억 속 가늠이다  감동적인 탄성이 절로 나는 솜씨, 할머니는 그 독 속의 보석 간장으로 솔 김치를 무심한 듯 대충 무치셨지만, 그 조선장의 향내나 깊은 감칠맛은 긴 기다림이 아니고는 맛볼 수 없는 진가 높은 검정 단물이었다 맛있게 익어 갔을 테고, 물 말아서 한 숟갈 먹으면 잃었던 여름 입맛에 생기를 주었던 솔 김치였으니까.. 오늘 유난히 할머니의 손맛이 그립고, 장독대 있는 풍경이 아련하다. 애틋한 그리움에 심장이 쿵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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