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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듯이 Mar 18. 2021

_단상

지푸라기 호랑이 냄새



간밤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나 보다

쏴~악 쏴악 스르륵

마당 쓸어지는 소리에 설잔 잠이 깬다

방문을 여니 젯밤의 겨울이 함께 넘나 든다 하얀 목장갑을 끼고 누비 한복에 털고무신을 신으신 할아버지는 손녀  뛰어놀라고 앞마당에 길을 만들며 밤새 내린 눈의 흔적을 화단 바깥쪽으로 쓸어내신다 

샘가  정각  볏짚 처마에 덩그렁 매달려 있는 고드름은 녹기 싫었는지 볏으로 엮은 지붕  물줄기를 따라 순리대로 모습을 감추고 연기까지  푸욱 쪄낸다 

희한하게도 나는 냄새는 겨울 한낮의 공기에 섞여 볏짚 축축한 강아지  냄새가 났다

살짝 남아 있는 눈의 흔적을 따라 마당에서 껑충껑충 아침잠을 깨고 심술과 호기심 많은 꼬마는 장대를 높이 추켜들어 똑똑 또르륵 물줄기를 타고 흔적을 감추는 고드름을 단번에 샤샤삭 떨어트리곤 신나서 웃고 있다



할아버지

고드름에서 볏짚 호랑이 냄새가 나요 

혹시 말이에요 밤새 호랑이가 지붕 위에서 잠들었다   아닐까?

상상력 풍부한 꼬마는 바삐 마당을 쓰는 할아버지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상상  호랑이 말한다 

할아버지께서는 진짜 그런 건지도 모른다며 손녀를 업고 마당  바퀴를 천천히 거닐며  시시콜콜할 수도 있는 손녀의 상상을 함께 그리 표정으로 그저 웃고 계셨다

소곤소곤  중얼중얼 대다가 할아버지 수염을 만지작만지작

정말로 호랑이가  볏짚 위에서 자고 간 건 아니었을까? 

나만 아는 아름다운 비밀이 잔뜩 있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네  앞마당 겨울 풍경이다 

신나고 행복한  뜀박질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며 늦은 오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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