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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비 Jul 16. 2024

광주에서 먹고 마시기

광주, 선유도, 군산의 초여름 열흘 6

내가 가진 전라도에 대한 환상 1, 남자가 멋지다. 2. 음식이 맛있다. 3. 소수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이게 환상일까, 아니면 사실일까. 알아보려면 역시 직접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게이바에 가서 남자들을 '관람'했고, 미술관에 가서 이주자를 다룬 전시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모습을 '확인'했으며, 가급적이면 '광주식으로 어레인지 한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맛을 '평가'했다.

이 글은 그런 광주의 맛에 대한 나의 평가서다.


1. 일단 소쇄원에 가기 직전 먹은 담양군 가사문학면에 위치한 한식집 <수려재>.

담양 하면 떡갈비니까, 떡갈비반상을 먹었다. 반찬의 가짓수도 많지만, 각 반찬에 들어가는 재료가 다양하고 색도 많아서 군침 작렬! 확실한 전라도식 한식차림으로, 부산은 저렇게 많은 색을 못 쓴다. 떡갈비는 언제나 진리니까, 그냥 맛있었다. 사실 음식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가게 위쪽 주차장 근처에 있던 흔하디 흔한 플라스틱 의자. 색깔이 독특해서 가까이 갔더니, 세상에나, 조각이었다. 작품 제목에서 모든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효심의 미술화, 가슴이 찡해졌다.

2. <명가은:담양군 가사문학면>은 광주에서 살다 온 부산커플(두 사람의 앞글자를 따서 성민커플이라고 하겠다)이 추천해 준 곳.

한옥카페로 은은한 다향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차를 안 마시고 빙수를 먹었을까. 모양은 예쁘지만 맛은 글쎄. 오실 분은 무조건 차를 드시라. 옆 방에서 차 마시는 모습을 살짝 봤는데, 너무 멋졌다.

3. <미미원:광주 동구>

역시 성민커플 추천. 육전과 '지금이 아니면 맛보기 힘들다는' 맛조개전을 먹었다. 계란물 입힌 소고기라니, 말해 뭐 하겠나 맛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예상보다 더 맛있었다. 평소 육전을 싫어해서 진주냉면도 잘 안 먹는 오스씨의 '엄지척'이면 말 다했다. 숙달된 솜씨로 순식간에 휘리릭 구워주는 서비스가 없다면 절대로 그 맛이 안 나올 테지. 집에서 따라 하진 말아야겠다. 이곳 말고 티비에 여러 번 나와 엄청나게 유명한 집이 있다 해서 거기도 가자고 다짐했는데,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육전집을 또 가지는 못했다. 아쉽다. 다음에 와도 또 육전을 먹으러 갈 거다.

4. <파더스베이글:광주 동구>은 우리의 숙소였던 <컬처호텔 람> 바로 옆이다.

연어샌드위치와 무화과 잠봉샌드위치를 먹었는데, 맛도 좋지만, 가게 인테리어가 너무 멋있었다. 입구에서 보면 작은 가게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널따란 공간이 나온다. 커다란 대리석 탁자 위에 살아있는 나무를 세팅한 센스는 우아! 배 채우러 들어갔다가 거의 두 시간 정도 글 쓰다 나왔다. 점심 나절엔 사람도 적어서 책 읽기도 좋다.

5. <풍남옥 본점: 광주 동구>는 우리의 아침을 책임진 곳이다.

두 번 가서 두 번 다 오스씨는 황탯국을, 나는 콩나물국밥(안 매운 거)을 먹었다. 광주는 어딜 가도 밑반찬이 많고, 맛있다는 통념을 산산이 부숴준 곳이다. 그래도 메인인 국밥이 맛있어서 봐줬다.


6. <아우르: 광주 동구>

광주 하면 전통, 전통하면 전통주, 전통주 하면 안주로 퓨전한식, 논리적 귀결로 퓨전한식주점을 표방하는 아우르에 왔다. 가게 소개를 따로 보진 않았지만, owlr이란 영어 간판의 한글명 아우르는 아우르다... 겠지? 독특한 메뉴들이 있어서 '젊은 여종업원'에게 추천을 해달라 했다. 그러지 말걸. 그녀는 안주는 자기 입맛에 맞는 것들을, 술은 당연히 비싼 걸 추천했다. 술과 안주의 조화도 안 좋고, 우리 입맛도 아니었다. 다행히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는 와중에, 창가자리여서 분위기만은 최고였다. 다음에 가면 직접 후기를 찾아보며 먹을 것들을 선택해야겠다 다짐.

우렁이쌀 전통주에 감태파스타라니... 육회타르트 속 육회도 심이 너무 많이 씹혔다.

7. <호재: 광주 동구>

요즘 먹고 있는 약이 있어서 커피를 끊고 있는데, 여기는 후기를 보고 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우르에서 밥을 먹고 근처라서 걸어갔다. 별생각 없이 찾아가는데, 동명동 산책코스로 추천받은 <푸른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여기도 들어가고 싶은 카페들이 보였는데, 중간에 새지 않고 계속 걸었다. 역시나 한옥 카페. 비 오는 날 밤, 꽤 외진 곳인데도 사람이 정말 많았다. 디카페인 드립이었고,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덩치가 큰 바리스타가 우리 눈높이에 맞춰 몸을 낮추고 설명하는 장면만, 어딘가 기묘한 사진처럼 저장되었다.

며칠 만에 처음 마신 커피는 디카페인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해 그때부터 잘 때까지 쉬지 않고 방광을 자극했다는 뒷이야기...

8. 성민커플의 또 다른 추천 <광주옥 1947 : 광주 서구>

그들과 우리 커플 둘 다 냉면광이라 어딜 가도 냉면부터 찾는다. 유명인들의 사인으로 도배된 벽엔 문재인전대통령과 찍은 사진이 작게 걸려있었다. 대통령 방문 맛집에 간 적은 여러 번인데, 이렇게 주인장과 찍은 사진을 본 건 첨이었다. 문재인 전대통령의 서민 지향 이미지와 어울려 좋아 보였다. 참고로 우리 동네 돼지국밥집은 들어오는 입구 벽에 삼성전자 이재용과 찍은 사진을 거대한 플래카드로 확장해서 걸어두었다. 이재용이 돼지국밥을 먹을 순 있지. 하지만 그 조합이 어색한 걸 사장님은 알까? 또 가게 안에 작지만 멋진 액자에 걸어두면 더 럭셔리해 보였을 텐데, 플래카드라니... 벌써 색도 다 바래서 조잡하기 그지없다. 이런 건 오히려 역효과 마케팅.

메밀 함량에 따라 가격이 달랐는데, 우리는 70% 함량으로 먹었다. 요게 가장 적은 거. 내가 좋아하는 식감은 아니어서 먹다가 면의 1/3은 오스씨에게 주었다. 내가 면에서 집착하는 것은 딱 하나, 바로 "균형"이다. 좋고 귀한 것도 균형이 안 맞으면 다 황이다. 나에게 냉면은 메밀의 자기주장이 적어야 맛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슴슴한 맛'이다. 국물은 맛있어서 다 마시고 싶을 정도.


9. <반르시엔 : 광주 동구>

광주에서 숙소를 정할 때, <컬처호텔 람>에 계속 있을까 하다가, 하루는 다른 곳에 자고 싶어서 라마다플라자 충장호텔을 선택했다. 여긴 가격이 꽤 비싼 곳이어서 생각도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공돈(택시 뒷자리에 있다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상대방 보험사에서 돈을 주었다 같은?)이 들어와 충동적으로 예약했던 곳이다. 시민회관이 보이고 광주천도 흘러서 좋은 동네다 싶었는데, 막상 가보니 주변이 모두 임대 딱지 붙은 건물 투성이었다. 오스씨가 <강호의 발바닥>이란 망한 동네 찾아가는 유튜브를 즐겨보는데, 딱 그 느낌. 그래서인지 호텔의 서비스도 위태위태해 보였다. 헬스장(요즘 다시 가슴 운동함)과 사우나의 존재가 호텔 선택에 한몫했는데, 우리가 간 날이 사우나 업장의 마지막 영업일이란다.

그래도 객실이 멋진 호텔이고, 비도 오고 해서 계속 룸에서 뒹굴거리다 보니 저녁 시간이 됐다. 역시 밖에 나가기 싫어... 방 안에 근사한 테이블이 있어서 시켜 먹으려고 앱을 열었는데, 먹고 싶은 게 단 하나도 안 보였다. 그래서 호텔 안에 있는 중국집에 가기로 했다.

"짜장에 탕수육!"

외치고 갔는데, 아... 사람도 적고, 분위기도 좋고, 또 벽장에 와인도 보이고, 좀 전에 말한 공돈도 생각나고 해서, "코스 먹을까" 말해놓고 테이블을 보니 여름 특선으로 해산물 위주의 코스가 있었다. 그걸 주문하고, 와인 리스트를 보여달라고 했다.

종업원은 수습인지, 순간 당황해하고, 잠시 후 매니저가 왔는데, 하는 말이...

"사실 여기가 작년까지 이태리레스토랑이어서 남은 와인이 있긴 한데(벽에 붙은 장식물에 와인이 달라붙어 있긴 하다) 품목이 몇 개 없어요. 리스트는 없고, 그냥 말씀하시면 가져다 드릴 순 있는데..."

예전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그렇군요. 그럼 소주 주세요." 했을 텐데, 요즘 난 '원영적 사고'에 미쳐있는 상황.

'얼쑤! 그 말은 가장 저렴한 와인도 빈티지가 좋겠구나!'

그렇게 주문한 와인은 좀 된 빈티지인데도 값이 싸고, 심지어 맛도 좋았다. 음식도 다 맛있었지만, 지금은 와인 생각만 난다. 럭키비키!

호텔 인테리어가 독특하고 멋진데, 돌파구를 잘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10. <현대옥 광주충장로점> 

광주에서 마지막 아침식사를 한 곳이다. 오스씨는 순두부찌개를, 나는 풍남옥과 비교하기 위해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승자는 없다. 다 맛있다. 반찬도 둘 다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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