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연말 결산 5
2024년. 돌이켜보니 그 어느 때보다 정체성 충만하게 살아왔던 해였다.
"퀴어로서" 무얼무얼 하고 살았나 한번 정리해 보자.
1월. 홍예당 송정 엠티.
홍예당 엠티에 참석했다. 고기도 구워 먹고, 게임도 하고, 젊은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엠티라는 형태의 행사에 참여한 것은 30대 이후 처음. 지현이가 타로카드로 신년운세를 봐주며, 하는 일이 다 잘 될 거라고 했는데... 용하다! 2024년에는 할 일 초과달성!
3월. <모두의 결혼>에서 진행한 동성커플 인터뷰에 참여.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주절주절 늘어놓다 보니 어느새 오스씨와의 삶이 샤라락 한방에 정리되는 기적이! 음성파일로 저장된 우리의 결혼생활. 지금 들어도 꽤 흥미롭다. 인터뷰어의 결혼식 이야기를 듣고 2025년에 하와이에 가서 결혼하자고 오스씨랑 결심하게 되었다.
4월. 인터뷰 때문에 갑자기 퀴어력이 높아져서인지, 도쿄 퀴어페스티벌에 커플룩 입고 참여하자! 는 쪽으로 여행 계획이 잡혀버렸다. 3박 4일 동안 도쿄 퀴퍼의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겠다고 계획을 잔뜩 세우고 갔는데, 태풍이 와서 행사가 하루 취소 + 그 다음날 말도 안 되게 더운 날씨 + 징그럽게 많은 사람들 때문에 완전 탈진. 사전 행사 둘러보기, 본 퍼레이드 옆에서 구경하기, 게이바 싸돌아다니기 정도로 즐기고 왔다.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되게 선진~ 선진~ 한 도쿄의 프렌들리 문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5월. <모두의 결혼> 인터뷰 과정을 성민커플과 명진커플에게 풀어놓자,
“재미있었겠네요. 우리도 하고 싶다…”
해서 연결시켜 줬고, 같은 부분에서 자극을 받았는지 자신들도 결혼식 하고싶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합동결혼식을 하자로 이야기가 발전됐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부산게이커플 결혼원정대>가 꾸려졌다. 평소 지향하는 바가 꽤 보수적인 애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들어 여러 면에서 상당히 급진적으로 바뀌고 있다. 모임이 끝나고 범일동 게이바에 놀러 갔는데, 명진커플은 '게이바'에 난생처음 나온 거라고!!!!!
6월. 서울에서 열린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했다. 함께 퀴퍼에 간 적은 여러 번이었지만, 오스씨가 행렬에 직접 들어와서 행진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이 60이 넘어서부터 이 할아버지, 상당히 거침없이 움직인다. 역시 나이가 깡패! 두려움이 점차 사라진다. 부산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도 올라와서 홍예당 깃발 아래서 흥겹게 행진했다.
홍예당 친구 폴님이 팟캐스트 <게이피시방>에 출현한 적이 있었다. 게이피시방 진행자인 삼식님은 하와이에서 동성결혼식을 올린 분이었다. 도움을 얻고자, 폴님에게 삼식님과 연결시켜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오케이. 삼식님을 통해 하와이에서 결혼하는 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어 이후 계획을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전혀 귀찮아하시지 않고 하나라도 많은 정보는 주려는 모습에 완전 감동.
그 와중에 태국에서 아시아 세 번째로 동성결혼 허용이라는 기사가 터져 나왔다. 얼씨구!
페미니즘을 표방한 <극단 우주>의 연극 <갈림길에 선 여자>를 홍예당 친구들과 같이 관람했다. 연극도 재미있었고, 끝나고 홍예당 뒤풀이에 참여해 많은 수의 레즈비언 친구들을 알게 돼서 더욱 기뻤다. 그때 첫인사 하고 말을 섞은 친구들 중 하나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나서 더 기억에 남는 뒤풀이가 되었다.
7월. 대법원에서 동성 배우자도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다는 판결이 났다.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판결이지만, 앞으로 한국에서 동성 결혼이 가능하다는 시그널이 분명해져서 다 같이 축배를 들었다.
소송을 주도한 <희망을 만드는 법>이란 단체를 주욱 후원해오고 있는데, 후원금 이상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단체라 언제나 미안하고 고맙다.
이 기세를 이어서 성민커플 집에 모여서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여행을 시작할 건지, 숙소부터 항공까지 구체적인 토론하기 시작했다.
홍예당에서 장편소설 쓰기 모임, 일명 <별장 동인>이 출범했고, 1기가 되었다. 브런치에도 올린 <퀴어하게>를 장편으로 만들기로 했다. 다양한 닉네임으로 활동했던 퀴어활동가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될 예정이다.
9월. 처음으로 대구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했다. 계기는 서울 퀴퍼에서의 만남. 서울 퀴퍼 행사장을 돌아다니다 너무 예쁜 티셔츠를 발견해서 구입했는데, 그게 대구 퀴퍼 티셔츠였다. 판매하시던 분이 퀴퍼위원장님이었는데, 평소 그분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존경하는 마음에, "대구 퀴퍼도 오세요!"라는 말을 듣자마자 "네!" 해버린 거다. 또 대구 퀴퍼 측이 작년에 홍준표의 방해로 고난을 겪기도 했고, 그걸 극복해 내고 법정 투쟁에서 승소까지 하는 등 축하할 일도 있어서 가기로 했다.
대구시의 졸렬한 방해 행동은 여전히 있었지만, 우리끼리 재미있게 잘 즐기다 왔다. 아마 2025년에도 가지 않을까 싶다.
커플모임에서 웨딩 행선지를 하와이에서 괌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애들이 휴가 내는 시간이 애매해지기도 하고, 금액면에서 괌이 더 저렴해서 내린 결정. 여섯이 함께 하는 게 더 의미가 있어서 기꺼이 변경!
10월. 사랑하는 박상영 작가님이 온갖 매체에 나와 홍보를 하는 바람에, 영화관에 가기 싫은 병을 이겨내고 기어코 영화관에 가서 <대도시의 사랑법>을 봤다. 내가 박상영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재미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즐겁게 퀴어를 묘사하기도 하고, 리얼하게 보여주기도 해서지만, 무엇보다 그가 이성애자들 속에 있어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편안하게, 존중받으며" 지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이러한 게이들에게 빨리빨리 익숙해져야 한다.
12월. 연말 윤석렬의 개짓거리 때문에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홍예당과 영남퀴어 등, 모임 친구들이 연일 탄핵집회에 나가는 마당에 늙은 우리가 가만있을 수 없지! 하는 심정으로 거리 집회에 나섰다.
시민들이 발언대에서 자유롭게 말하는 걸 들으니, 이게 정말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장이구나 싶고, 윤석렬 같은 것들이 진짜 억누르고 싶은 국민의 모습이 이런 것이겠다 싶었다. 그 생동감 팡팡 느낌 때문인지 가수 콘서트보다 더 재미있었다.
<모두의 결혼>에서 대만의 동성결혼 합법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사랑이니까 가족이지> 상영회를 부산에서 개최했고, 일전에 신세를 진 삼식님이 게스트로 참여한다고 해서 영화관 싫어 병을 극복하고 참여했다. 삼식님은 그새 유튜브 스타에 주간지 표지모델도 하는 등 완전 네임드로 자리잡으셨다. 괜히 기쁨 …..
대만의 동성 결혼 합법화 과정은 거리로 나선 동성애자들의 용기와 시민들의 연대가 찰떡으로 붙은 보기 드문 감동 서사다. 이번 탄핵 집회에서 수많은 퀴어들이 연단에 올라 발언한다고 들었는데, 이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도 퀴어와 시민의 연대가 더욱 굳건해지길 바라본다.
거리집회가 일상화되어서인지 부산 퀴어들도 5년 만에 <메리퀴어스마스> 행사를 다시 시작했다. 이게 바로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탄핵 정국 이후 집회가 항상 열리는 서면 한복판에 장소를 빌려서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퀴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연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함께 듣는 축제였는데, 안타깝게도 활동가 한 분(6월 연극이 끝난 후... 의 그분)이 갑작스럽게 떠나는 바람에 축제는 차분하지만 분노는 만땅 게이지로 올려 뜨겁게 치러냈다. 홍예당 친구들에게 떠밀려 마이크까지 잡은, 이래저래 잊을 수 없는 축제로 그 어느 때보다 퀴어했던 한 해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