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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미슐랭 : 부산 가게 중 1위는?

2024년 연말 결산 4

by 선우비

올 초에 미슐랭의 마수가 부산까지 뻗혔다는 소식을 듣고는, "안 돼!" 두려움에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공포는 곧 현실화되어, 아무 때나 가서 먹던 돼지국밥집이 이젠 2-3시간 웨이팅은 기본이 되고, 기념일마다 찾던 레스토랑은 가격이 대폭 올랐고, 적금 타면 가봐야지 노리고 있던 가게는 장소를 아예 다른 곳으로(더 비싸고 울 집에서 먼 곳으로) 옮겨버렸다.

하지만 모든 일은 동전의 양면. 미슐랭 가게들이 손님들을 싹 쓸어가 버리는 바람에, 동종 메뉴 업장 중 웨이팅 길던 가게들은 상대적으로 손님이 줄어 쉽게 접근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남천동 장어덮밥의 쌍두마차였던 <동경밥상>과 <고옥>. 미슐랭 전에는 고옥이 압도적인 웨이팅을 자랑했는데, 이제는 고옥을 줄 서지 않고 갈 수 있다. 광안리에서 관광객들의 숙취 해소를 두고 경쟁하던 <안목>과 <바로해장>도 안목이 미슐랭에 선정되면서 인기도가 역전되었다.

뭐, 미슐랭의 마수 어쩌고 시작했지만, 사실 먹는 일에 즐거움을 부여하는 일이고, 식당에 스토리가 생기면 같은 돈을 써도 뭔가 뿌듯하다. 지난 1년간 우리의 외식을 꽤 좌지우지했던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고... 해서,

연말을 맞이해 그동안 다녔던 부산 미슐랭 가게들 중 최고의 가게를 선정해 보기로 하겠다.


먼저, 예전부터 다녔던 미슐랭 선정 가게 중 올해 발걸음을 하지 않은 곳은,

<금수복국>, <비네토>, <으뜸 이로리바타>. <러브얼스>, <야키도리 온정> 이다.

<금수복국>은 <초원복국:대연점>보다 맛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굳이 갈 필요를 못 느꼈고, <비네토>는 코스요리로 승부할 때 가봤는데, 참신한 전개에 물개박수, 다만 내 입에 간이 너무 짜서 두 번은 가지 못했다.

<으뜸 이로리바타>는 동네 술집일 때는 즐겨 가던 곳이었는데, 미슐랭에 선정되고 나서는 한 번도 못 갔다. 값도 꽤 올랐고... 아마, 열기가 사그라들면 가볼 듯하다.

<러브얼스>는 난 너무 맛있었는데, 오스씨가 비건 싫다고 안 가려고 해서 결국 올해는 못 갔다.

<야키도리 온정>은, 비슷한 곳들이 많아져서 패스!


그래서 우리가 지난 1년 동안 방문한 곳은 총 17군데.

목록은 아래와 같다.


<뉴러우멘관즈>, <동경밥상>, <안목>, <피리피리>, <바오하우스>, <합천국밥집>, <융캉찌에>, <언양불고기 부산집>, <야키도리 해공>, <레썽스>, <나막집>, <델리봉>, <오스테리아 어부>, <부다면옥>, <아르프>, <셰프 곤>, <피오또>


<뉴러우멘관즈>와 <융캉찌에>, <바오하우스>는 모두 대만요리로 승부한다. 맛은 다 좋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뉴러우멘관즈는 식탁이 너무 협소해 밥 먹을 때마다 답답하다는 느낌이어서 우육면이 당긴다면 융캉찌에를 추천한다. 우린 뉴러우멘관즈가 집 근처라 여기만 주구장창 갔음. 바오하우스는 남들 다 먹는 바오 안 먹고 우육면 먹어서인지 실망... 했다. 또 가면 바오를 먹겠지만, 웨이팅이 심해서 열기가 가라앉으면 가게 될 듯.

<안목>, <나막집>, <합천국밥집>의 돼지국밥 진검승부! 승자는 단연 <안목>이겠지만(크, 고기 질이 달라~ 반드시 돈 좀 더 주고 쫄깃 고기로 먹을 것), 진입 난이도가 너무 높아졌으니 대안으로 <합천국밥집>을 추천해 본다. 맑은 국물 돼지국밥으로 범일동 <할매국밥>과 승부해볼만 한데, 합천 쪽이 고기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을 듯.

나막집 역시 <뉴러우멘관즈>처럼 밥 먹기 불편할 정도로 좁다. 넓은 곳으로 이사하면 또 가보고 싶다.

<동경밥상>은 일본에서 먹는 장어덮밥보다 더 좋았는데, 이유는 한국인인 내 입에 간에 딱 맞아서. 일본 장어는 기본적으로 짜니까. 다만 비싼 가격이 옥에 티. 근처에 조금 더 저렴한 가성비 장어덮밥집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언양불고기 부산집>은, 비록 아주머니들이 고기를 맛깔나게 잘 구워주시기는 하지만 광안리 터줏대감 <원조언양불고기>를 놔두고 왜 이곳이 선정됐는지 모르겠다. 손님 접대하기 좋고, 전체적으로 깔끔한 것이 점수에 영향을 줬나?

<야키도리 해공>은 맛있었지만, 그 정도 재료로 왜 이렇게까지 고급스럽게 꾸몄을까 하는 의문이 좀 들었고,

<부다면옥>은 부산치고는 괜찮은 평양냉면이지만, 역시 서울의 전통의 강자들에 비하면 어딘가 비어있는 맛이다. 남천동 <백일평냉>과 비교해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서울살이 시절 평냉 귀신으로 살아서인지 평냉에는 잔혹한 평가를 내리니 이해바람.

<아르프>는 비건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역시 비건인이 아니어서인지 크게 감동적이진 않았던 듯하다. 맛만 따지면 <러브얼스>가 더 내 입맛에 맞았다.

<오스테리아 어부>는 시작부터 화려하고 중반부에도 계속 힘을 유지하다가, 막판 디저트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디저트 수를 줄이고 가격을 낮출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


<레썽스>는 우리 집에서 담만 넘으면 되는 곳이라 자주 가던 가게였다. 맛있고 멋진 음식인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안 오나, 이러다가 망하는 거 아니냐, 간만에 마음에 드는 레스토랑이 집 근처에 생겼는데 안돼! 걱정되어서 연말 모임도 해보고, 친구들도 자주 데려가던 곳이었다. 그래서 이번 미슐랭 발표에 흥분해서 냉큼 달려갔다. 여전히 맛있고, 여전히 멋진 플레이팅! 추천받은 오가닉 와인은 조금 식초스럽긴 했지만 뭐 음식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그 후 한 번도 안 갔다. 미안해요, 다른 미슐랭 가게 가는 재미에... 내년에 다시 봅시다.


<셰프 곤>은 사실 별 기대 없이 간 곳이었는데, 의외로 묵직한 한방이 있어서 계속 생각난다. 자갈치 인접 레스토랑의 아이덴티티를 살려 다양한 해물요리가 계속해서 나와주었다. 원래 고기보다 해산물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특히 더 인상 깊었다. 와인이 잘 받쳐주지 않은 점이 아쉽긴 하지만, 가격 대비 또 맛보고 싶은 구성이었다.


<피오또>는 1 스타를 받은 곳이서 무척 기대가 되었다. 테이스팅코스를 콤부차 페어링으로 먹었는데, 콤부차 굳! 오가닉 와인보다 솔직히 더 나았다. 음식은 별을 받는 가게들이 그러하듯, '눈부터 일단 즐겁게' 시작한다. 스토리텔링도 중요한 요소라 무언가 잔뜩 적혀있었지만 솔직히 그건 그렇게 감동적이진 않았고(이건 오스테리아 어부도 마찬가지), 대신 요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맛있게, 또 적당하게 끝이 났다. 부러 욕심을 더 내지 않은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또 갈 거냐 하면, 이런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하다가 결론. 집에서 너무 멀다. 이 가게는 해운대 주민들에게 양보!


자, 그렇다면 올해 내가 뽑은 미슐랭 1위 가게는 어디일까.

아직 소개하지 않은 곳 두 곳 중 하나겠지?


후보 1 : <피리피리>는 태국음식점이다. 진짜 조금의 기대도 하지 않은 곳이고, 타이밍 좋게 가서 줄도 안 섰고, 그 집에서 가장 비싼 메뉴(아래 사진)를 시켰지만 가격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착했다. 팟타이도 아주 굿굿굿! 기대 이상의 맛이었고, 양이었고, 분위기였다. 부산에서 태국음식점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곳들이 여럿 있긴 했지만, 여기는 조금 레벨이 더 높은 느낌이었다.

후보 2 : <델리봉>은 사퀴테리 전문점이다. 위치도 어중간하고, 찾기도 힘든 상가 어딘가에 박혀있어서 초반에 힘이 좀 빠지지만, 일단 안에 들어가면 아주 맛 좋은 고기를 계속해서 맛볼 수 있다. 건물이 싼 곳이라 그런지 가격대비 만족도를 만땅 충족시킬 만큼 좋은 구성으로 나온다. 아주 좋은 와인을 가지고 있을 때, 한 모금 한 모금 음미하고 싶을 때 들고 가면 딱 좋은 가게다.


자, 그럼 결과는????


<삐리삐리>!!!!!


축하축하!

그 이후 한 번도 안 갔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가야 하는데, 겨울이라 추워... 날씨 땃땃해지면 자주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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