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기 2025 (1)
1.
스키 타러 무주리조트에 갔다. 11시 반 웰컴센터 오픈 시간에 맞춰 집에서 출발했다. 오픈런에 성공해야 무주리조트 내 인기 숙소인 솔마을 콘도를 지정받을 수 있다.
7시 40분쯤 집에서 출발했는데, 거의 빠듯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인구도 팍팍 줄어든다는데, 차로 부산을 벗어나는 일은 여전히 뻑뻑하다.
대기번호는 40번. 20분쯤 지나 숙소를 배정받았는데, 인기 좋은 3,4동은 회원 우선이어선지 자리가 없었고, 언제나처럼 1동 당첨. 그것도 슬로프뷰가 아닌 도로뷰. 솔마을은 가족호텔 예약가격에서 1박당 2만 원 추가다. 슬로프로 오가기 편하다는 장점에 비싸도 다들 이곳을 원한다.
솔마을의 장점은 또 있다. 점심시간에 잠시 들러 숙소에서 밥 해 먹기 좋다. 스키장 휴게소 인기메뉴인 돈까스 가격이 16000원이고 라면값도 7천 원이다. 인원이 많다면 점심만 숙소에서 해결해도 추가요금이 아깝지 않다.
저녁도 고기 좀 구워 소주 한 잔 하면 간편하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쩌나, 와보니 고기 굽기 금지. 심지어 프라이팬도 없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콘도에 질병처럼 번진 ‘멋진 주방완비, 단 멋진 요리행위 금지’가 이곳까지 감염된 상태였다. 아, 싫다!
고기 굽기 금지 안내판 밑에는 두터운 배달음식 책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8만 원짜리 닭볶음탕 같은 음식이 즐비했다.
이러면 솔마을에 굳이 묵을 이유가 없다. 야간 스키까지 즐긴다면 모를까, 주간 6시간권만 탈 예정이면 앞으로 솔마을은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실망 포인트는 스키장에서도 계속됐다. 슬로프는, 역시나... 작년에 이어 올해도 상급 슬로프를 거의 오픈하지 않았다. 특히 설천 쪽은 아예 전멸. 스키 인구가 줄어서 영업이 힘들어지는 면도 있겠고, 지구온난화 문제도 있겠고... 갈수록 한국에서 스키 타기가 버거워지고 있다. 언제까지 스키를 즐길 수 있을까 한숨이 나온다. 오스씨랑 같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인데. 뭐 오스씨 나이를 생각하면 지구온난화보다 그의 관절이 더 빨리 우리 삶에서 스키를 지워버릴 것 같기도 하지만…
이번 무주여행은 내 조카도 동행했다. 다다음달이면 드디어 회사에 출근을 하게 된단다. 직장이 울산이라 우리와 물리적으로 가까워졌다. 오스씨의 가족은 모두 서울에, 우리 가족은 대전에 산다. 그동안 우리 둘만 똑 떨어져 살아왔는데, 중간 지점에 가족 구성원이 하나 더 생겼다. 기쁘다. 유일하게 우리랑 스키 여행을 갈 수 있는 녀석이라 더 기쁘다. 내년 스키 여행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올해 스키는 끝! 선언하고 스키 왁싱을 맡기러 샵에 갔다가 ‘신상이지만 겨울 끝물이라 30% 세일’이라 해서 부츠를 새로 장만했다. 스키랑 같은 브랜드, 같은 라인이라 색상 배합이 똑같다. 이뻐! 빨리 와 내년 시즌!!!
2.
난 명절에 대전에 가지 않는다. 내 나이 오십. 나의 명절은 내가 주체가 되어 조직한다는 명제를 가족들에게 숙지시켰기 때문에 갈등은, ‘이젠‘ 없다. 대신 스키여행 후 대전에 들렀다. 작년에도 같은 패턴이었어서 어쩐지 무주-대전 코스가 우리만의 명절 행사가 되어가는 듯하다. 가족들과 시내에 있는 유명한 올갱이 전문점에서 식사를 하고, 야구장 근처 호텔에서 잠을 잤다. 말이 호텔이지 난방 대신 전기장판을 깔아주는 싸구려 숙소였다. 그런데도 가격은 호텔값. 국내여행을 포기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미친 것 같은 호텔값(대비 형편없는 시설과 서비스)이라고 누가 말하면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이 동네엔 호텔 이름을 단 숙소가 엄청 많은데, 다음에 묵게 되면 사전에 전화를 걸어 난방형태를 꼭 물어봐야겠다.
대전에 오면 대흥동 숙소에서 잔다. 이 동네에 게이바가 많아서다. 가볍게 칵테일이나 한잔하고 싶었는데, 중년이 갈만한 게이바 중에 원샷바는 없고 소주방이나 가라오케 형태만 있었다. <리치> 주인장 커플이 친절하게 여러 가지 알려준 바에 따르면, 대전에는 내가 이반시티 핑크맵에서 찾아낸 것보다 훨씬 많은 중년 가라오케가 있었다. 부산에는 가라오케만큼 원샷바도 많다. 대전 게이들이 원샷바를 싫어하는 이유가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가라오케에 왔으니 당연한 문답이 이어진다.
"노래 한 곡 하시죠."
"제가 노래를 못해서..."
그래도 계속 권유를 한다. 이럴 땐 조금 난감하다.
게이바 사장이 손님에게 노래를 강권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게이바 대부분이 지하나 2층에 자리하고 있어서 손님들은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계단에 첫발을 디뎠는데, 안에서 음악소리가 흘러나오면, "오호라, 안에 손님이 좀 있구나." 하고 기대감에 발걸음을 옮기지만, 만약 노랫소리가 없이 조용하다면? 안에 들어가 봐야 맨날 보는 주인 얼굴만 볼 거라 생각하고 다른 가게로(노랫소리가 나오는) 발길을 돌린다. 그런 게이들이 꽤 많다 보니, 가게 주인은 손님이 제발 좀 노래를 불러서 다른 손님들을 끌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시간이 꽤 지나도 손님이 없을 땐 주인이나 종업원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일종의 세이렌 전략. 이런 가게는 어딘가 좀 짠하다. 그들의 노랫소리에 끌려 들어갔다가, 에이 뭐야. 주인이잖아. 하고 그냥 다시 문 닫고 나가는 비정한 손님도 분명 있을 거다. 난 속으로 욕하고 그냥 들어가는 편이다.
둘째, 노래를 부르면 당연히 목이 마르다. 맥주가 당기는 상황. 맥주 매상이 올라간다.
셋째, 주인이 언제까지고 한 테이블 손님과 수다를 떨어줄 수는 없다. 손님이 노래를 부를 때, 다른 테이블에 가서 인사를 한다... 또는 지루한 손님과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 "노래 한 곡 하세요."하고 도망간다... 등등.
어찌 되었든 모두 애잔한 이유들이라 가급적 노래를 해주고 싶지만, 내 돈 내고 술 마시면서 원치 않는 재롱까지 떨 필요는 없다.
2차로 간 곳은 숙소에서 가까운 <가오리>. 게이바로서는 드물게 3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인지 창문을 필름지로 막아놓지 않아 넓은 창을 통해 거리가 다 보였다. 때마침 눈발이 휘날리고 있어서 게이바에서 눈 구경이라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이 가게는 인테리어도 독특해서 돌출무대가 꽤 길게 나와있었다. 그날 손님은 우리 빼고 딱 한 명. 본인 입으로는 '영웅시대'가 아니라면서도 줄기차게 임영웅의 노래를 불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임영웅의 '무지개'를 리퀘스트했더니, 또 그 노랜 모른단다. 정이 안 가는 남자.
작년 초에는 <바이브>와 <탑텐>에 갔었는데, 손님이 없어서 재미가 없었다. 이번에도 손님은 별로 없었지만, 기대감이 없으니 재미없음도 없어서 어쩐지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공수래공수거.
3.
이런 식으로 우리가 짧은 여행을 할 때면 이웃 동네에 사는 레즈비언 커플에게 고양이 돌봄을 부탁한다. '수영구에 사는 퀴어들의 모임'의 창단 멤버들로, 서로의 집을 오가며 종종 술자리도 가지면서 친하게 지내왔다.
그런데 그녀들이 갈라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불과 얼마 전에도 같이 만나 신나게 놀았는데??
공식적인 이별 이유는, 미래에 대한 서로의 비전이 맞지 않아서라는데...
알고 보니, 본래 그리 크지 않은 집에서 냥이 두 마리, 개 한 마리와 숙식을 나누던 와중에 또 한 마리의 개를 데리고 오는 문제로 크게 다투고는 이별까지 결심한 모양이었다. 우리가 보기에도 그 집엔 더 이상의 생명이 들어오면 안 될 것 같은데, 왜 또 한 마리의 반려를 원했던 걸까. 그 깊은 사정까지는 (무서워서)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저 아이고 어쩌나...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둘은 오랫동안 같이 살아왔기 때문에 헤어졌다고 바로 따로 사는 건 아니란다. 완전한 별거까지는 시간을 더 두기로 했다고.
그 와중에 얼마 전, 입양 반대파의 생일이 다가와 입양파가 몰래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었다. 우리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처음엔 '도대체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황당해하던 생일자도 시간이 지나서 술이 몇 순배가 도니 신나게 파티를 즐겼다. 그 모습을 보며 뭔가 희망~ 희망~ 한 미래를 착즙하고팠지만, 이런 문제는 당사자주의를 지켜주는 게 올바르다. 부디 좋게 좋게 마무리가 되어 내년에도 같이 생일파티를 즐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4.
홍예당에서 진행하는 장편소설 쓰기 모임이 최소한의 인원(4명)을 맞추지 못해 한 달간 쉬기로 했다. 작년에도 두 달간 쉬었는데, 아이고.. 언제 끝나려나. 최근 소설 쓰기에 탄력을 받고 있었는데, 이렇게 멈추면 또 기운이 빠져서 흐지부지 될 텐데.. 안절부절못하다, 에라 모르겠다. 강사님을 집으로 초빙해서 단독 과외수업을 받기로 했다.
과외수업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학창 시절 그 흔한 학원 한번 안 가본 인생!
여럿이 하는 수업도 즐겁지만, 집중도가 확실히 다르다. 아, 이 맛에 다들 과외를 받는구나 싶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풀어놨음에도, 앞으로 갈 길이 캄캄했었는데, 뭔가 속 시원하게 정리가 된 느낌이다. 이 개운함을 추진력 삼아 또다시 달려보자. 아무튼 올해 상반기까지는 초고를 반드시 끝내도록 하자!
5.
서면에 있는 '이토 준지 호러하우스'에 갔다. 오스씨가 아주 이토 준지라면 사족을 못 쓴다. 전집을 구매해 머리맡에 쌓아두고 자기 전에 읽고 또 읽는다. 원화 같은 것을 전시하는 줄 알았는데, 아뿔싸! 체험 전시였다. 나는 완전 쫄보라 공포 영화는커녕 스릴러 영화도 못 보는 사람이다. 잔뜩 겁을 먹고 입장했다. 안에선 먼저 들어간 남자들의 비명 소리가 쏟아지고... 마침내 첫 번째 방에 들어갔는데...
에이.. 재미없어. 연기자들이 다양한 공포 연기를 하며 깜짝 놀라게 하는데, 솔직히 안 무섭다. 이토 준지의 작품 속 이야기를 배경으로 공포를 꾸몄다는데, 뭘 알아야 무서워하지. 오스씨도 하나도 안 무서웠다는 평. 대신 배경 이야기를 다 알아선지 나름 재미는 있었다고. 진짜 마니아들을 위한 체험전시였다. 20분 만에 5만 원이 날아갔다. 솔직히 너무 비싸다.
6.
장범준 - 소공연 라이브 온에어 [Transparent sky blue colored]의 LP를 작년 11월 20일에 사전 예약 주문을 했다. 2월 18일이 발송일. 하지만 기다려도 오지 않고,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공장 사정으로 4월 말이나 어찌해 볼 수 있단다. 취소할까 갈등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