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뭘기 2025(2)
6.
대중음악을 두루두루 듣는 편인 내가 짧지 않은 인생동안 '전곡 마스터' 수준으로 몰입했던 아티스트는 비틀즈, 서태지, 사장오르스타즈(southern all stars, 줄여서 사장), 빅뱅(지드래곤 개인 포함), 장범준, 방탄소년단 6팀이 전부다. 그야말로 전곡을 다 알고, 앨범을 샀으며, 노래방에서 지긋지긋하게 불렀다. 앨범 단위 작업 늦게 하는 걸로 유명한 이들 중, 셋(빅뱅의 지드래곤)이 지난 한 달 동안 '정규앨범'으로 컴백했다. 장범준은 6년 만에, 지드래곤은 8년 만에, 사장은 10년 만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잔치야!
지드래곤은 컴백 타이틀로 대한민국 차트를 씹어먹고,
사장은 초동 23만 장을 팔아 70,80,90,00,10,20년에 모두 오리콘 앨범에서 1위를 한 그룹이 됐고,
드라마와 연동된 장범준의 앨범은 드라마처럼 조용히 묻히고 있는 중이다.
지디앨범은 지디가 지디 했는데 그래서 지디일 뿐, 팬들이 기대하는 더 나은 지디는 아니었다는 평이고, 장범준은 이제 그만 우려먹고 새로운 음악을 하던지 아니면 예전처럼 창법을 더 불안하게 만들어서 애간장이라도 녹이든지라는 평이고, 사장은 저 나이에 어떻게 이렇게 비슷해서 안심이 되면서도 뭔가 새로운 것들이 더 있는 것처럼 잘 포장해서 팬이 뿌듯함을 느끼도록 할 수 있지라는 경탄을 불러일으킨다는 평이다.
난 그저 셋 다 앨범 단위 작업물을 내준 것만으로도 황송할 지경이다
지디는 목소리가 변했지만 감각은 여전해서 좋고, 장범준도 눈물 나게 좋진 않지만 가만히 듣다 보면 힐링 포인트 만점은 여전하고, 사장은... 말 해 뭐 해. 한 달이 지난 지금 줄기차게 듣는 것은 역시 사장음악이다.
아무튼 내 사랑, 6팀 중 무려 절반이 컴백한 사뭘. 비틀즈와 서태지는 제쳐두고 올해 방탄소년단의 정규앨범까지 나온다면, 2025년은 내 팬질의 역사 속 한 해가 될 것이 자명하다!
7.
수영을 등록하면 반드시 거쳐가는 관문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감기. 수영만 시작하면 감기도 시작이다. 이번에도 수영 3일 차에 감기에 잡혀버렸다. 감기에 걸린 친구랑 술을 먹은 게 원인. 벌써 열흘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두 번을 더 한 지금, 어깨 통증에 팔을 휘두르기도 힘들다. 이 고질적인 어깨통증 때문에 수영강습을 받으며 자세를 교정했고, 수업 중에는 한 번도 통증이 없었는데, 자유수영 4번 만에 다시 통증이 시작됐다. 아, 정말 어쩌란 거지...?
나처럼 운동과 상극인 몸뚱이가 있을까. 운동만 시작하면 일단 아프기부터 한다. 등산 시작하면 무릎이 나가고, 헬스 시작하면 허리가 나간다. 자전거 좀 탔다고 관절, 엉덩이 다 엉망이다. 그냥 뒹굴거리며 글이나 쓰고 살 때가 제일 건강했던 것 같다.
근데 그냥 뒹굴거리면 어깨, 무릎, 허리, 엉덩이 다 아프다.
아, 정말 어쩌란 거지...?
8.
난 녹음한 내 목소리가 그렇게 싫다. 내가 정말 저 정도였어? 싶을 만큼 이상하다.
얇고, 높고, 옹알이하는 거 같다. 말을 분명하게 딱딱 끊어서 하지 않고 질질 끌면서 한다. 높낮이도 예측불가해서 계속 듣다 보면 불안불안하다. 말 끝을 흐린다. 회의를 녹음한 걸 들어봤는데, 문장 중간에 웃음을 넣는 경우도 많다. 실없어 보인다.
한마디로 처음부터 끝까지 깔끔하고 분명하지 않아서 말에 신뢰감이 들지 않는다.
물론 자주 듣다 보면, 장점도 있다.
일단 위협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어려운 이야기도 쉽게 들린다. 특이해서 기억하기 쉽다.
아무튼, 맘에 들지 않는다. 바꾸고 싶다.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가갸거겨고규구규그기부터 시작하란다.
따라 해 보니,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대부분의 지적질이 입을 작게 벌리고 발음하는 데서 오는 것 같다. '아'를 입을 동그랗게 하지 않고 '어' 발음할 때만큼만 벌리고 발음한다. 그래서 옹알이처럼 들렸던 거다. 입을 크게 크게 벌리고 발음하니 대번 배가 땅긴다. 복식호흡을 하면서 발음하라 조언하는 이유를 알았다. 일단 많이 연습하는 것만이 방법이다.
학원을 알아보니 일주일에 한 번 60분, 한 달 4시간에 45만 원이란다.
일본어가 4시간에 12만 원, 수영 강습이 4시간에 20만 원, 스키가 4시간에 28만 원이었다.
그동안 내가 배운 기술 중, 최고가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저 돈을 투자해 신뢰감 넘치는 매력적인 목소리가 될 수 있을까?
믿음이 안 간다.
일단은 생각해 보겠다고 상담 전화를 끊었다.
장고가 시작됐다.
9.
다음 주면 두 쌍의 커플과 함께 동성결혼식을 올리러 괌에 간다. 각종 서류 준비는 다 마쳤고, 남은 건 예복 정도라 주말을 이용해 백화점에 갔다. 괌 날씨가 30도를 웃도는 데다 우리 둘 모두 특히 더위는 못 참는 허약생물이라 반바지와 반팔로 커플 느낌 나게 꾸미기로 했다.
두 가게에서 옷을 입어봤다.
한 군데는 마셔츠와 지구색 반바지로 노랗고 카키한 색상 조합의 열대 느낌이다.
다른 곳은 커플 느낌 세게 나는 흰/검피켓티에 사막/핑크 진바지 매칭한 점잖은 아저씨 느낌.
공교롭게도 두 가게 모두 개별 품목은 다 다른데, 총가격이 동일했다.
평소라면 전자를 선택하겠는데, 예식이 끝난 후 어떤 걸 더 자주 입겠나 했을 땐 또 후자가 낫다.
'괌에서 한 결혼'과 '아저씨 커플'과의 싸움이다.
일단 아저씨 커플 쪽을 계산하고 물건을 들고 왔는데, 아직 택은 안 뗐다.
다른 커플들에게 사진을 보내봤더니 의견이 반반으로 갈렸다.
이것은 단고 시작!
주말까진 결론을 내야 한다.
10.
몇 년 전부터 부산 민락동에는 예쁜 가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다. 그래서인지 인테리어 업체도 꽤 많고, 타일이나 수전을 교체해 주는 세라믹 가게들도 많다. 민락동 블루핸즈에 차를 맡기고 동네 구경하다가 세라믹 가게를 지나가게 되었다. 진열창 너머로 보이는 욕실 해바라기 샤워기가 이상하게 예뻐 보였다. 충동적으로 가게에 들어가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더 마음에 든다.
그래서 그냥 질렀다.
하는 김에 세트로 나온 다른 화장실 샤워기와 싱크대 수전까지 몽땅 비슷한 톤으로!
사실 집도 이젠 구축 소리 들으니까 할 때가 되기도 했다.
욕실 전부 다 뜯어고치는 공사를 주변에서 많이 하길래 가격을 알아봤다가 그냥 포기하고 돌아섰는데, 이 정도 변화구는 줘도 된다 싶기도 하고.
오늘 와서 공사를 했는데, 아뿔싸. 씽크세이버(발로 툭 쳐서 수도전원넣기)에 특화된 제품이 아니어서 싱크대 수전을 포기해야 했다.
해바라기 샤워기를 설치한 욕실은 마음에 드는데, 일반 샤워기를 설치한 욕실은 별로다.
본래 있던 지지대를 제거하지 않았더니(그걸 제거하면 구멍만 두 개 뚫린다 해서 포기) 그저 그런 풍경이 되었다.
왜 다 뜯어고치는 공사를 하는지 살짝 이해가 가버렸다.
11.
지난달 애플워치를 잃어버리고 대체품을 알아보다가 알게 된 가민.
189만 원짜리 피닉스가 마음에 들어서 욕심을 냈더니 오스씨가 어어어.. 버벅거리며 뒷걸음질했다.
그 이후 내가 가민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귀 막고 아바바바바 외쳐댔다.
"결혼 예물을 뭘로 할까 고민했는데, 가민으로 해야겠다."
선언해도 듣는 척도 안 한다.
오스씨는 패물에 익숙한 옛날 사람이라 천만 원짜리 팔찌는 고민해도, 애플워치울트라는 아깝다는 사람이다.
그렇게 잊고 있다가, 어제 예식에 신을 커플 운동화를 사러 전포동에 갔다. 뭐 하다 가민 얘기가 나왔는데, 마침 백화점이 근처에 있어 가민 매장에 들렀다.
점원하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눠보니 70만 원대 제품에도 내가 원하는 기능이 다 있었다.
웬일로 오스씨가 사고 싶으면 사라고 부추긴다. 그럴까? 하면서 189만 원짜리 피닉스도 슬쩍 차 봤더니, 빨리 아까 집어본 거 사라고 난리다.
사실 이미 뽐뿌가 지나갔던 터라 그렇게까지 사고 싶진 않았지만, 그렇게 사주고 싶다면 사야지 별 수 있나.
그런데, 아뿔싸. 전열 되어 있던 색상이 예쁜 제품(리미티드 에디션)은 다 품절이란다.
기본형인 검은색만 가능하단다. 줄만 다른 걸로 바꾸면 느낌 비슷하게 난다는데...
싫다. 이런 박탈된 선택권으로 예물을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줄만 갈아선 원래의 그 폼~~이 안 난다.
안 사고 집에 돌아와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역시 검은 것만 남아있었다.
오프라인에는 있을까 싶어 부산의 다른 가게에 전화해 보니 어랏? 해운대점에 하나 남아있단다.
결혼예물, 결정!
아, 근데 오스씨의 결혼예물은 정한 게 없네.
뭘까..........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