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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년기

결혼했습니다

사월기 2025(1)

by 선우비


1.

아이고, 드디어 결혼이란 걸 하게 됐다.

이제 대략 38개 국가 -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비롯한 북아메리카,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쿠바, 콜롬비아 등 남아메리카, 영국,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EU국가들, 호주, 뉴질랜드의 남반구 국가들, 대만, 태국의 아시아, 남아공, 스칸디나비아 나라들 등, 우리가 평소 여행지로 선택하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우리는 공식적으로 부부다.

신난다.

guam_print3.JPG


2.

괌에서의 결혼기는 이후 별도의 포스팅을 통해 풀어보려 한다.

우리 둘만이 아니라 다른 게이 커플 두 쌍과 함께 했기에 더욱 특별한 여행이 되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 친구들 자랑을 하고 다닐 예정이다.

고마워, 얘들아!

단체사진.png 챗지피티한테 민화풍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3.

부산 퀴어문화협동조합 <홍예당>이 드디어 총회를 열었다.

총회에 참석한 조합원에게 나눠준 자료집에는 그동안 홍예당이 해왔던 사업이 주욱 나열되어 있었다. 개중 나도 참여했던 프로그램을 세어보니 대략 19가지 정도였다. 지난 4년 간의 나의 퀴어 활동 대부분이다. 여행에서의 경험이라든가 친구들끼리 모여서 논 것은 대체로 잘 잊어버리는 편인데, 홍예당에서 한 일들만큼은 신기하게도 하나하나 다 기억난다. 그만큼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총회를 앞둔 어느 날 조합장이자 유일한 상근자인 모리로부터 이사로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며칠 두고 고민해 보겠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간곡하게 거절할 이유를 찾기 위해서였다. 나이 먹고(난 50대 중반) 애들 일하는 곳(활동가 대부분 30대)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는 거,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른은 뒤에서 지갑만 열면 된다, 이런 마인드였다.

그런데, 모리의 말에서 "부탁할만한 사람이 없어서..."가 걸렸다.

지방에서 무슨 일을 하던 하나에서 열까지 부족하지 않은 게 없지만, 그중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역시 사람이다.

특히 동성애 관련 쪽은, 꼭두각시, 거수기로 쓰려해도 사람이 없다.

그 사정을 알기에, 그래, 필요하면 가져다 쓰거라, 했다.

한가지 더,

활동가에게는 부탁을 거절당하지 않는 경험도 중요하다.

거절이 일상이 되면 괜히 위축된다.

우리 애, 기죽이지 말아야지!

올해에는 모리가 원하는 게 더 많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4..

연초에 브런치 이웃인 멜번니언님(https://brunch.co.kr/@eacfd00a750241b)에게서 <게이, 아빠 되다>라는 책에 추천사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훌륭한 책이 만들어졌고, 전자책으로 발간된 내용을 종이책처럼 만들어서 보내주셨다. 책 출간소식을 듣고 따로 포스팅을 할까 하다가, 이 일기프로젝트에 (분량 늘이기 좋은 아이템이라서^^;;;) 넣는 걸로 정했다.

작가님에게 두 가지의 추천사를 보내드렸는데, 그중에서 채택되지 않은 추천사를 여기에 소개한다.


<추천사>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곧장 브런치에 들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퀴어’, ‘동성애’를 검색창에 넣고 어떤 작가들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많이 검색된 작가 중 한 명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Ding 맬번니언’이었습니다. 그의 글을 하나씩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곧바로 포기하게 됐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이미 수백 개의 글을 발행한 prolific(다작의) 작가였고, 내용도 풍성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구독자라면 익히 알다시피, 그는 무척 성실한 브런치 작가이기도 해서 거의 매일 새로운 글을 올립니다. 엄청난 양에 놀라 그의 과거 이야기는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최근 글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정보에 따르면, 그는 한국에서 호주로 이민 간 게이로, 호주 남성과 결혼해 아이를 기르며 살고 있었습니다.
“뭐? 아이를 키운다고?”
할리우드의 게이 커플이 아이를 키운다는 이야기는 뉴스에서 접한 적 있지만, 브런치에서 게이 아빠를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의 독특한 삶의 이야기는 단번에 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게이 브런치 작가 자체가 소수이다 보니 우리는 필연적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주로 댓글을 통해 교류해 왔습니다. 사실 제 브런치 댓글의 절반 이상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Ding 맬번니언’의 글은 대체로 내용이 풍부하지만 읽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그의 글이 술술 읽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솔직함 덕분입니다. 꾸미지 않은 글에서는 그가 바라보고 묘사하는 세상이 굴곡 없이 그대로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가 아들 행복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예쁜 모습만 남기고 싶기 마련이지만, 그는 육아의 현실적인 모습들까지도 솔직하게 담아냅니다. 행복이가 좌충우돌하며 성장하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 그의 고민과 선택이 변화하는 장면들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육아 경험이 전혀 없는 저조차도 그의 글을 통해 육아를 대리 체험할 수 있을 만큼 그의 묘사는 세밀하고 진솔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 연인, 그리고 친구들에 대해서도 많은 글을 써왔지만, 책을 낸다면 행복이 이야기가 가장 적합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게이, 아빠 되다>라는 책을 낸다는 소식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 책은 행복이와의 만남 10주년을 기념하며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를 원하는 LGBTQ+ 커플은 물론, 자신의 아이가 다양한 삶을 이해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이성애자 부모들에게도 소중한 선물이 될 책이라 확신합니다. 책을 덮을 무렵, 독자들은 성 정체성을 떠나 모두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된 하나의 큰 가족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https://brunch.co.kr/@eacfd00a750241b/1043


5.

(3월에 발행했어야 하는 일기인데, 빼먹은 거)

레즈비언 작가 모가님의 조선시대 배경 장편 백합소설 <하추간>의 웹툰화 작업을 담당하고 계시는 그림작가-콘티작가님이 부산에 오셔서 홍예당에서 첫 미팅을 했다. 고등학교 때 이 작품을 보고 완전히 반했다고. 레즈비언 사랑이야기의 웹툰화라니... 당시엔 꿈도 꿀 수 없었는데, 그만큼 세상이 좋아진 거겠죠. 우리끼리 흐뭇해했다.

<하추간>은 2007년에 발간되었다. 20년이 다 돼 간다. 새삼 '좋은 콘텐츠'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작품의 힘!

아, 그걸 내가 '출판'했다니.

젊은 날의 나, 칭찬해!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또 좋은 콘텐츠 많이 만들자, 결심!

혹시, 관심 있는 분은 웹소설로 서비스 중이니, 전자책 사이트에서 모가님의 하추간을 찾아보세요. 재미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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