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멜라 북토크에 다녀와서
‘부울경퀴어웨이브’에서 주최한 김멜라 작가 북토크에 다녀왔다. 『제 꿈 꾸세요』를 읽고 느꼈던 희열을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는 자리였다.
좋은 이야기들이 참 많았는데, 아쉽게도 대부분은 금세 잊혔다. 남은 건 독자와의 대담 시간에 내가 던졌던 질문과, 그에 대한 작가와 대담자였던 김건형 평론가의 대답을 담은 짧은 녹음뿐이다.
그 조각만큼은 오래 간직하고 싶다.
선우비: 작품을 쓰는 주체의 ‘당사자성’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요. 현재 문단에서 이성애자 작가들이 퀴어문학을 창작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시나요? 만약 있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떠신지도 궁금합니다.
김건형: 작가분들께 직접 (성정체성을) 여쭤본 건 아니지만요(웃음), 제 판단에는 이성애자인 것 같은 중장년 남성 작가들이 종종 ‘게이 화자’를 설정하는 경우가 있어요. 마치 “나 아직 안 죽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이죠. 그런데 그런 작품을 보면 대체로... (그들이) 왜 잘 안 보이는지, 왜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퀴어가 ‘유행’이니까 한번 써보자는 식으로, 깊은 고민 없이 접근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고요.
그렇다고 해서 ‘당사자성’이 없으면 절대 쓸 수 없다고 보진 않아요. 타 정체성을 쓰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좋은 사례들도 있어요. 예를 들어 이현석 작가의 『다른 세계에서도』처럼, 여성 화자를 설정하고 여성의 임신 중절권 문제를 다룬 작품은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해요.
반면,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인 『훈향』에서는 HIV 감염인을 다뤘는데, 그건 좀 별로였어요. 그래서 결국엔 얼마나 진지하게 조사하고 고민했는지, 얼마나 자기 안에서 뒤집어봤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선우비: 그럼 이성애자 작가들의 퀴어문학 진출 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나요?
김건형: 이것도 역시 직접 물어본 건 아니지만(웃음), 여성 작가들이 레즈비언 캐릭터를 설정한 경우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오정희 선생님 같은 분도 계셨고요.
그런데 요즘 들어 우리가 ‘눈에 띈다’고 느끼는 건 남성 작가들이 돌출되어 보여서인 거 같아요.
역사적으로 자기 말고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없던 남성 작가들이, 이제야 (퀴어를) 다루기 시작하는 거라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선우비: 박상영 작가의 영화화된 『대도시의 사랑법』, 그중에서도 ‘재희’ 파트는 많은 공감을 얻었잖아요. 게이 남성과 그의 이성애자 여자친구 이야기요. 그런데 반대로, 레즈비언 작가가 이성애자 남자친구나 게이 친구 이야기를 쓴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또 게이 작가가 레즈비언에 대해 쓴 경우도 없고요. 가장 가까운 관계처럼 여겨지는 게이와 레즈비언이, 정작 서로에 대한 서사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혹시 작가님은 게이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 있나요?
김멜라: 이성애 여성과 게이 남성의 우정은 꽤 익숙한 서사잖아요. 해외 드라마에서도 자주 나와서인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실제로 그런 관계가 얼마나 흔한지는 통계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매체에서는 자주 접하게 되니까요.
반면, 동성애 여성과 이성애 남성의 우정은...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남성이 욕망 표현에 있어 더 직접적이고, 또 신체적으로 힘이 우위에 있기 때문에요. 그래서 후배들이 그런 관계에 대해 물어오면, 가능은 하지만 조심할 부분이 있다고 조언할 것 같아요.
(소설에서) 그런 관계를 그리는 건 어렵지 않아요. 어차피 세상은 이성애자 남성 중심이고, 가족관계 속에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레즈비언과 게이 남성의 관계’는... 외국 작품들에선 자주 보이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꽤 고민이 많았어요.
이번에 장편소설을 구상할 때도 그 부분을 한참 생각했죠. 혹시라도 특정 집단을 왜곡하거나 해가 되는 건 아닐까, 많이 고민했어요.
결국 저는 ‘그 사람(캐릭터)이 게이냐 아니냐’보다, 그 인물 사이의 관계와 감정, 욕망이 더 중요하다고 느껴요. 그 사람이 게이라면, 그것은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되는 거고요.
그래서, 나 자신에게도 그 인물을 꼭 쓰고 싶다는 절실함이 있다면, 레즈비언 작가도 게이 캐릭터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결과가 공감을 얻든, 혹은 비판을 받든, 작가로선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하고요.
게이에 대해서는... 그냥 (너네 이야기는) 너가 써! 이런 느낌이어서가 아닐까요? (웃음)
김건형: 말씀 듣고 보니 진짜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네요. 넷플릭스 드라마만 봐도 다양한 정체성이 함께 등장하곤 하는데, 한국 소설에선 레즈비언이 게이 커플을 그리거나, 게이가 레즈비언 커플을 그리는 일이 거의 없는 것 같긴 해요.
다들 너무 자기 이야기하느라 바쁜 걸지도요. (웃음)
아무튼 재미있는 지적이에요. 저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네요.
선우비: 김멜라 작가님의 『나뭇잎은 마르고』를 읽다가, ‘체’라는 인물이 제가 아는 어떤 분과 너무 닮아서 깜짝 놀랐어요. 특히 “아주 짠 것을 먹은 사람처럼 얼굴을 찌푸렸다”는 웃음 묘사요. 혹시 실존 인물이 있는 건가요? 아니면 그런 디테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 궁금합니다.
김멜라: 실존 인물은 아니에요.
제가 워낙 집에만 있고, 사람을 잘 안 만나는 편이에요. 관계도 주로 가족이나 애인 정도고요.
그런데 소설 안에서는 저 자신이 꽤 모험심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 한 번 써보고 싶은 건, 형식이건 소재건 꼭 해보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잘 모르는 세계일지라도, 이번엔 이걸 알아보고 싶다 싶으면 공부하고, 자료 찾고, 관찰하고 그렇게 써요. 물론 허술할 수도 있죠. 실제 아는 사람이 보면 ‘뭐야, 이거?’ 할 수도 있지만, 그 낯섦과 새로움이 제겐 오히려 중요한 자극이에요.
‘체’의 표정 같은 것도 어떤 한 사람을 모델로 했다기보다는, 제가 봤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이미지들이 뒤섞여서 나온 거예요. 상상도 덧붙이고요.
(디테일을 말하자면) 쓰다가 문장이 좀 상투적이다 싶으면 한참을 되돌아가서 다시 보고, 또 보고, 라켓을 칠 때 공이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요. 그렇게 문장을 만들어가요. 그 과정을 거쳐 한 인물울 완성하는 거죠.
선우비: 평론을 쓰실 때, ‘이 작품은 아직 미완성이고, 내 평론이 이를 완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이미 완성된 작품의 확장판, 감독판을 다시 만드는 일’이라고 보시나요?
김건형: 영화는 잘 몰라서요, 비유가 어울릴지 모르겠지만(웃음), 평론가들마다 스타일은 다 다른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정말 ‘감독판’처럼, 작가를 더 크게 만들어주는 방식의 평론을 선호하시고요.
저는 좀 다른 편이에요. 완성된 장면들: 소설 속 문장이나 장면들을 모아서, 또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걸 더 좋아해요.
소설을 읽다 보면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다른 방식으로 우리 시대를 보는 시선이 있어요. 그런 조각들을 모아서, 내가 생각하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걸 좋아해요.
그렇게 접근하면, 그 소설도 또 다른 각도로 보이게 되기도 하거든요. 저는 그런 방식의 평론을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