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뮤직 클래식을 해지한 이후, 클래식 음악이 점점 내 일상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앱만 켜면 적절한 곡들이 줄줄이 흘러나오던 애플 클래식과 달리, 유튜브뮤직에서는 음질도 아쉽고, 원하는 곡을 찾는 일조차 번거롭다. 자연스레 음악을 듣는 시간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공연장을 찾는 발걸음도 뜸해졌다.
괌에서의 결혼 준비가 내 정신과 감정을 온통 집어삼킨 탓일까, 봄이 오도록 클래식 공연 한 편 예매하지 못한 채 개월이 훌쩍 바뀌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시립교향악단 제2바이올린 수석의 독주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조용히 공연장을 찾았다.
첫 곡은 드뷔시의 바이올린 소나타. 오랜만에 접하는 생음악이라 그런지, 귀가 아직 녹음본의 매끄러움에 길들여진 탓인지, 초반에는 음들이 조금 거칠게 다가왔다.
스튜디오에서 정제된 음향과 공연장에서 마주하는 생생한 음색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 낯섦이 잠시 불편함으로 변질되었고, 곡이 끝날 무렵엔 문득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건 매너가 아닌지라, 일단 버텼다.
다행히도 이어서 흐른 차이콥스키의 명상곡이 막혀 있던 감각을 조용히 풀어주었다.
음들이 무겁지 않게, 자연스럽게 귀 속으로 흘러들어왔고, 라벨의 치간느를 지나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소나타에 이르러서는 현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전율마저 느낄 수 있었다.
앙코르로 연주된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은 늦봄의 밤공기와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그 선율만으로도 봄밤의 풍경이 완성되는 듯했다.
그 한 번의 공연만으로 클래식에 대한 열정이 다시 되살아났다.
난 쉽고 가벼운 남자였구나.
그 여운을 안고 오랜만에 영화관으로 향했다.
라벨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었고, 그중 하나인 다큐멘터리 영화 <볼레로: 불멸의 선율>이 상영 중이었다.
요즘엔 유튜브의 ‘도발적인 발레 영상’ 배경음악으로 더 익숙한 이 곡이, 사실은 어떤 맥락 속에서 탄생했는지, 그리고 라벨이란 인물이 얼마나 다층적인 삶을 살았는지를 섬세하게 조명하는 작품이었다.
주연을 맡은 라파엘 페르소나즈는, 말 그대로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외모로 초반부터 나를 휘청이게 했지만, 곧 라벨의 내면에 집중하게 되었고,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경탄의 연속이었다.
다양한 여성과 교류했지만 어떤 이와도 육체적인 접촉을 하지 않던 그의 삶은, 어딘가 무성애적이라는 해석을 납득하게 만들었고,
매혹적인 발레리나의 춤을 보며 도리어 경기를 일으키는 장면은 오히려 유성애에 대한 미묘한 반감을 암시하는 듯했다.
영화에 짧게 등장했던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그 우아하고 나른한 선율로 내 마음을 다시 사로잡았다.
마치 슬리퍼를 질질 끌며 고요한 오후의 집 안을 거니는 파리 남성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창밖으로는 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고,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로 흐르는 파반느가 내 방 안을 채우고 있다.
마치 천상에 있는 듯한 충만함이 가슴 깊숙이 밀려온다.
그러고 보니, 조성진 하면 떠오르는 아련한 이야기 하나.
올해 부산에 빈야드 구조의 새로운 콘서트홀이 개관하면서, 그 첫 무대를 장식할 주요 공연으로 정명훈과 조성진의 베토벤 황제 협주곡이 예정되어 있었다.
티켓 오픈일, 마음을 가다듬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예매 버튼을 눌렀으나... 시작과 동시에 꽝.
그랬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