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남도 여행기 1
여름만 되면 여행 본능이 꿈틀거린다. 22년엔 제주에서 한 달을 살았고, 그다음 해엔 속초에서 반 달, 작년엔 광주와 선유도, 군산에서 열흘을 보냈다. 한 곳에 머물며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는 소위 'OO살이'는 늘 만족스러웠다.
“올해도 가야지?”
5월이 되자마자 오스씨의 재촉이 시작됐다.
“알았어. 어디로 갈까.”
매년 6월 말쯤 떠났으니 숙소를 서둘러 잡아야 했다. 그때 불쑥 떠오른 곳이 있었다.
“목포 가볼까?”
언젠가부터 유튜브에 목포 영상이 줄줄이 떴다. 유명 개그우먼이 방송에서 꽃게장비빔밥과 세발낙지호롱을 흡입하는 장면이 뇌리에 남았다. 예전에 맛봤던 그 황홀한 맛의 잔치가 기억났다.
“좋아, 이번 여행의 테마는 남도 먹거리야. 목포로 가자!”
그렇게 정했건만, 정작 준비는 전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가족이 내려오고, 서울 퀴어퍼레이드에 다녀오고, 범일동 재개발 취재까지 겹치면서 여행은 계속 뒷전이었다.
“여행 계획은?”
오스씨의 재촉이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그러게. 삘리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안 내킬까. 분명 맛있는 음식이 기다리고 있는데, 인터넷으로 향하는 손가락이 유난히 무겁다.
작년에 전자책 두 권을 냈다. 오스씨와 한국과 일본을 돌아다닌 기록을 엮은 여행기였다. 따지면 ‘자기만족’에 충실한 책들이었다. 자족도 출판의 멋진 이유다. 하지만 속으로는 답답하기도 했다. 다시 여행기를 낸다면, 조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했다.
그러려면 뻔하지 않은 신박한 아이템이 필요하다.
예컨대 “오토바이로 남도 섬 여행하기”.
목포나 신안군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섬들을 하나씩 탐험하는 것이다. 차는 선적비가 너무 비싸니 오토바이가 딱이다. 흑산도 차량선적비는 6만 원인데, 오토바이는 3만 5천 원. 왕복이면 꽤 차이가 난다.
“절대 안 돼!”
내 계산기를 보자마자 오스씨가 펄쩍 뛰었다.
한때 우리도 125cc 오토바이에 텐트며 장비를 싣고 전국을 질주하던 시절이 있었다.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팔과 다리, 매연으로 시커매진 콧구멍. 평소 선크림 없이는 외출도 안 하는 오스씨가 감내한 젊은 날의 객기였다. 스무 해가 흐르니 이제 그는 그 시절을 주마등처럼 희미하게만 기억한다. 요즘은 스쿠터 뒷자리에 오를 때조차 헬멧 때문에 머리 모양 망가진다며 난리다.
“다시는 오토바이로 안 가!”
그걸로 쫑.
대중교통으로 다니면 좋으련만, 나는 무릎 문제로 오래 걷는 여행은 삼가고 있다.
"하... 도대체 목포에서 먹는 거 말고 뭘하면 좋지?"
그렇게 오리를 안갯속에 풀어놓은 채 하루하루 보내던 중, 우연히 발견한 게 있었다.
‘강진 반값 여행’.
1인당 최대 20만 원, 커플 당 40만 원을 쓰면 절반을 지역화폐로 돌려준다는 프로그램이었다.
“이게 웬 떡이냐!”
우린 곧장 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신청했다.
“그런데 우리 강진 가본 적 있어?”
“아마? 목포 가던 길에 한정식 먹은 데가 강진 아니었어?”
긴가민가하며 지도를 펼쳐보니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2007년 오토바이 여행 때, 부산에서 보성을 거쳐 장흥을 지나 목포에 도착했는데 강진만 쏙 뺐던 것이다. 한정식 먹은 곳은 장흥이었고, 장흥에서 강진으로 넘어가지 않고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완도-해남 코스를 탔다. 돌아올 때는 월출산 본답시고 영암으로 올라왔다. 남해안 국도를 동서로 가르며 강진만 빼기. 그 어려운 걸 우리가 해냈다.
“이 정도면 미안해서라도 가야지.”
결국 이틀은 묵기로 했다. 그래야 40만 원도 알차게 쓸 테니까.
강진에서 묵고 싶던 이유는 또 있었다.
농촌민박 체험 프로그램 ‘푸소(FUSO)’.
현지 민가에서 1인당 7만 원에 숙식이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사진을 보니 집마다 개성이 넘쳐 골라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신나서 예약을 넣었는데, 곧 전화가 왔다.
“그날 저희가 여행을 가서요… 죄송하지만 예약 취소 부탁드립니다.”
다른 곳으로 예약, 또 전화.
“아이고, 단체 손님이 있는데 깜빡했네요.”
세 번째 다른 곳을 예약 후 또 전화.
“… 학생 단체가 온다고 해서요.”
분노를 넘어 어이가 없었다. 알고 보니 구조적 문제였다. 단체일수록 이익이 남으니, 2인 예약은 늘 뒷전일 수밖에. 그러면서도 ‘입금 완료 후 확정’ 시스템을 고집하니 환불만 세 번 했다.
마지막 거절에는 항의도 없이 “알겠습니다” 한 마디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마 전화 건 쪽이 더 놀랐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일정은 이렇게 짜였다.
하루는 강진 시내 호텔, 하루는 기적처럼 예약이 된 푸소. 그 집은 확신컨대 강진 최고의 푸소일 것이다. 푸소가 강진항 근처라 다음 행선지는 자연스럽게 완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파도에 몸을 맡기고, '해창막걸리'의 고장 해남에서 하룻밤, 할인권이 있는 진도 <쏠비치>에서 또 하루. 마지막으로 목포는 다른 권역에서 하루씩.
매일 다른 숙소, 조각보처럼 짜집기한 듯 난해한 동선이지만, 지역마다 맡은 미션이 있으니 지루하진 않을 듯하다. 준비 과정은 엉망이었지만, 그 혼란 덕분에 여행길은 오히려 더 예측 불가한 재미를 품게 됐다.
우리를 기다리는 건 또 어떤 해프닝일까.
이제는 남도 땅이 우리를 어떻게 맞이할지 기대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