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남도 여행기 3
갈대와 갯벌, 생명
‘강진 반값 여행’ 인증샷을 찍기 위해 두 번째로 향한 곳은 강진만 생태공원이었다. 호텔에서 잠시 쉬었다가 해 질 녘에 맞춰 나섰다. 작렬하던 태양이 기운을 잃고 산 너머로 스며들 무렵, 눈앞에 펼쳐진 갈대밭은 숨을 멎게 할 만큼 장관이었다.
데크 위로 들어서자 풍경은 한층 더 살아났다. 짱뚱어는 갯벌 위를 폴짝거리며 뛰어다니고, 붉은 발 말똥게는 집을 짓느라 분주했다. 멀리 선 큰고니가 긴 다리로 갯벌을 가로지르며 사냥감을 찾고 있었다. 이곳은 탐진강과 강진천이 만나는 자리라, 남해안 다른 갯벌보다 훨씬 많은 생명이 모여 산다고 한다. 갈대만 해도 20만 평 규모라더니, 발길 닿는 곳마다 갈대가 파도처럼 일렁였다. 초록빛 물결이 우리를 삼켜버릴 만큼 넓고 깊었다.
언제나 사람들로 빼곡한 순천만의 갈대밭이 관광객의 탄성과 플래시로 가득 찬 ‘셀카 스튜디오’ 같다면, 이곳은 그저 바람 소리만 남은 조용한 ‘안식처’였다. 덜 알려진 만큼 더 고즈넉했고, 그래서인지 작은 생명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인간의 발길이 드물수록 작은 생명들은 더욱 분주히 삶을 이어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고니는 우아하게 사냥을 하고, 게들은 땅을 파며 집을 짓고, 우리는 발소리를 죽인 채 걸으며 인증샷을 남겼다.
각자 할 일을 충실히 해내는 저녁 풍경이었다.
“근데… 게다리 보니까 배고프다.”
감동 바사삭!
아닌 게 아니라 슬슬 배가 고팠다. 인증샷도 찍었겠다, 이제 강진의 밥상을 맞이하러 가볼까?
게이가 알려준 맛집 지도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문득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현지인에게 직접 맛집을 추천받아 가보자.”
문제는, 그 ‘현지인’을 어디서 만나야 하느냐였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국내 최대 게이 사이트인 ‘이반시티’를 떠올렸다. 그 안에 있는, 흔히 ‘우동게(우리 동네게시판)’라 불리는 즉석 만남 게시판에 접속해 강진을 검색했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게이들에게 일일이 메시지를 남겼다.
이번에 강진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혹시 맛집을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거긴 주로 즉석만남 하는 곳이잖아. 대답해 줄 리가 있겠어?”
회의적인 오스씨의 말과는 달리, 놀랍게도 답장은 꽤 많이 왔다. 그들은 자신이 단골로 가는 가게들을 하나하나 성심껏 소개해 주었다.
“시간 되시면 같이 가시죠.”
고마움에 혹시 함께 가시겠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늘 같았다.
혼자 오세요? → 아뇨, 애인이랑 같이 가요.
아, 그날은 일이 있어서 못 나가요.
결국 만남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마음은 충분히 전해졌다.
강진 게이들이 가장 먼저 추천해 준 곳은 < 모란추어탕>이었다. 저녁 무렵 도착해, 리뷰에서 강추하던 보쌈을 주문했다. 그런데 잠시 후, 네 명의 남자가 우리 옆 테이블에 앉아 똑같이 보쌈을 주문했는데, 주인아주머니의 말이 이어졌다.
“아이고, 방금 이분들이 마지막 보쌈을 시켰네요.”
그들의 시선이 순간 우리 쪽으로 향했다. 입맛을 다시며 결국 추어탕을 주문했지만, 우리 상 위에 보쌈이 놓이자 또다시 힐끔. 잔에 따라둔 소주를 꿀꺽 털어 넣으며, 아쉬운 마음을 삼키는 눈치였다.
그 순간, 더 기분이 좋아지는 건 나쁜 마음일까 인지상정일까. 귀한 보쌈을 차지한 행운에 입술을 씰룩.
한 점 크게 싸서 입에 넣었다. 잡내 하나 없는 부드러운 고기가 탱글 하게 씹히며, 혀끝에 감칠맛을 흩뿌리고 목으로 쏙 사라졌다. 옆 테이블 사람들에게 일부러 “캬~ 이 맛 좀 보라고요!” 하고 설명해 주며 메롱이라도 하고 싶은 맛이었다. 아, 나쁜 마음 맞구나.
후식으로 주문한 미니 추어탕도 베리 굿!
보쌈을 가장 작은 양으로 시킨 건 또 다른 추천 장소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아름다운 포차>. 이름만 보면 술집 같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모두 밥상처럼 한 상 가득 차려놓고 식사하듯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밥집과 술집의 경계가 흐릿해진 공간, 그 자체가 남도의 분위기 같았다.
우리는 바지락탕을 시켰고, 술은 당연히 잎새주였다.
시원한 국물이 입 안을 적시는 순간, 하루 종일 쌓인 열기가 스르르 가라앉았다.
“오늘 어땠어?”
“하나같이 만족스러웠어. 강진, 참 좋다.”
뜨거운 날씨와 작은 실수들이 있었지만, 그것을 충분히 덮고도 남을 풍경과 맛, 그리고 도움을 주는데 인색하지 않은 사람들. 하루를 떠올리며 나누는 대화가 바지락 껍데기처럼 하나둘 탁자 위에 쌓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