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여행자도 좋아해 주세요

우당탕탕 남도 여행기 4

by 선우비

마량 소년의 한 줄 경구


여름날 여행지에서의 밤은 늘 낯선 에어컨 농도와의 싸움이다. 덥다 추웠다를 반복하며 뒤척이다 보면, 잠 설친 몸으로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다행히 전날 미리 주문해 둔 황태해장국을 조식으로 싹 비우고 나니, 다시 기운이 났다. 우리는 곧장 호텔을 나섰다.

목적지는 다산초당(茶山草堂). 유배 온 다산 정약용이 십여 년을 머물며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같은 대표 저작들을 집필했던 곳.

짧지만 가파른 산길을 오르자, 가지런히 놓인 한옥 한 채가 눈앞에 나타났다. 한국 실학의 산실이라기엔 너무 작다.

더운 여름날 이곳까지 찾아오는 손님이 고마웠던 걸까, 마루 위에는 선풍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숲이 이미 공기를 식혀두었는데, 거기에 선풍기 바람까지 더해지니 땀이 가라앉고 마음까지 고요해졌다. 적막강산 속에 홀로 살았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니 왠지 숙연해졌다. 솔직히 말해, 나 같으면 이런 산중에서 혼자 밤을 버티지 못했으리라.

사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강진을 즐기려면 정약용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 도서관을 찾기도 했었다. 관련 책이 많았지만 공자가 어쩌고 하는 문장만 나오면 귀가 절로 닫혔다. 오래 몸에 밴 퀴어라는 자의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좋은 말도 “하나님이 어쩌고”하는 순간, 오만정이 사라지는 것처럼.

정약용에 관심도 없으면서 이곳까지 올라온 이유는 사실, 초당에서 백련암까지 이어지는 동백길이 유명하다고 해서다. 하지만, 꽃을 볼 수 있는 계절도 아니고 날씨도 뜨거워 돌아서기로 했다.


다산초당에서 내려오면 곧장 다산박물관이 있다. 다산의 생애와 업적을 한눈에 정리해 둔 공간이다. 전시실은 연대기별로 나뉘어 그의 삶을 따라가게 되어 있었는데, 정직하게 말하자면 내겐 좀 밋밋했다. ‘역시 이런 소도시 박물관은 전시 방식도 지루하네’라는 감상을 흘리려던 찰나, 예상 밖의 흥미로운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정약용의 형 정약전의 《자산어보》 전시였다. 마침 이준익 감독의 동명의 영화도 본 터라 물고기 이야기가 성리학이나 실학이 어쩌고 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최근 읽은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없다』도 떠올랐다. 분류학을 시도했던 학자들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지니, 어쩐지 아이처럼 게임(다양한 해양 생물군 맞히는 게임)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밖으로 나오니 단정하게 꾸며진 정원이 있었다. 한쪽에는 검은 화강암 시비(詩碑)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지은이는 유명인부터 지역민까지 다양했고 짧은 어록이 돌에 새겨져 있었는데,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마량초등학교 소준섭 군의 글귀였다.

“독서는 사람의 일 가운데 가장 깨끗한 일이다.”

독서를 청결과 연결한 상상력에 절로 박수가 나왔다. 맞아, 책을 읽을수록 불순한 것이 벗겨지고 마음이 닦이는 법이지.

꼭 다산에게서가 아니더라도, 값진 배움 하나 얻어갔다.


유명인들 중에는 지금 와서 보니 욕을 먹을만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이 돌에 글을 옮겨 적을 때만 해도 그냥 유명인이었겠지. 새삼 무언가를 남긴다는 게 두려워지는 풍경이기도 하다.



정약용 박물관을 뒤로하고, 우리는 가우도로 향했다. 강진만 한가운데 떠 있는 이 작은 섬의 이름은 한자로 예쁜 소? 정도 되나 싶었는데, 소의 머리에 씌운 멍에에서 따왔다고 한다. 멍에가 어떻게 생겼나 그림 검색을 해보니 두 마리의 소를 강제로 이어서 노동을 시키는 도구였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동물학대의 느낌이 들어 조금 섬뜩해 보인다. 그냥 예쁜 소로 하면 안 되나?

섬으로 차는 들어갈 수 없고, 동쪽과 서쪽, 두 개의 출렁다리로만 연결된다. 섬을 한 바퀴 도는 2.5km 둘레길, 전망대, 그리고 하늘을 나는 집트렉까지—강진 여행 페이지는 이 섬을 ‘모험과 낭만의 공간’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저 가볍게 섬을 걷고, 모노레일을 타는 정도만 기대했다.

문제는 시작부터 꼬였다는 거다. 섬이 박물관보다 남쪽에 있기에 아무 생각 없이 아래로 차를 몰았고, 가우도가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돼지볶음을 주문한 뒤에야 깨달았다. 우리가 서쪽 출렁다리의 입구에 있다는 사실을. 이후의 일정을 보낼 청자박물관, 민화박물관, 그리고 오늘 묵을 숙소가 모두 섬의 반대편에 있었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 북쪽으로 차를 돌렸다. 이번엔 만을 따라 도는 지방도로를 택했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차창을 따라 길게 펼쳐졌다.

“그래도 새옹지마지. 덕분에 해안도로 드라이브하게 됐잖아?”
전날 호텔 예약 소동에 이어 또다시 ‘뜻밖의 복’ 타령이다. 뭐,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이때까진 여행의 흥분이 더 컸으니까.

한 시간을 훌쩍 돌아 마침내 제대로 된 가우도 입구에 도착했다. 출렁다리는 이름 그대로였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다리가 살짝 흔들리고, 발아래로 바다와 하늘이 출렁거렸다. 충분히 흥미로운 사진 포인트였지만, 뜨거운 햇살이 모든 낭만을 눌렀다. 우리는 잔뜩 지친 몸을 이끌고 모노레일 승강장으로 향했다.

“몇 분이세요?”
“두 명이요.”
“최소 열 명은 모여야 출발하는데…”
말끝을 흐리더니, 나이 든 매표원은 이내 자기 일로 돌아갔다. ‘조금만 기다리세요’라는 말조차 없었다. 모노레일 승강장 어디에도 인원이 차야 운행한다는 문구가 없었다.

그 순간, 속에서 불이 붙었다.
뭐야, 푸소 예약할 때부터 그러더니! 강진은 왜 이렇게 두 명의 여행자에게 냉정한 거야!

피곤한 몸에 이런 홀대까지 겹치니, 더는 섬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여기 둘레길이 유명하다지만, 코딱지만 한 이 섬보다 남해를 바라보며 걷는 부산 이기대 해안산책로가 훨씬 낫네요! 심통 난 얼굴로 투덜대며 섬을 빠져나왔다.

이어 도착한 강진 청자박물관. 고려청자의 본고장이라는 강진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다. 3층 규모의 박물관에는 고려 청자와 도자기 제작 도구, 가마터 복원 전시실이 있었고, 야외에는 전통 가마터와 도자기 체험장이 자리했다.

하지만 그 넓은 박물관에 관람객은 우리뿐. 푸른빛 청자는 묘하게 칙칙했고, 화려한 상감무늬도 도예 장인 밑에서 수행 중인 서열 6위쯤 되는 제자가 만든 듯 어딘가 찌그러져 보였다.
“중앙박물관에서 본 거랑 너무 다르다. 좀… 싸 보이지 않아?”
우리는 그렇게 온갖 트집을 잡으며 박물관을 나섰고, 맞은편 도자기 판매장에서 청자색 앞접시 두 개만 사 들고는 서둘러 숙소로 향했다.

요즘은 어딜 가도 빛을 이용한 이런 식의 전시가 대세가 된 듯하다. 솔직히 실물보다 이런 가상의 이미지가 더 취향 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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