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푸소, 밥상 위의 힐링

우당탕탕 남도 여행기 5

by 선우비

막걸리 한 잔에 풀린 여행의 피로


FU-SO는 Feeling up, Stress off의 줄임말이다. 이름처럼 지친 마음을 풀어주는 제도. 강진에는 백여 개의 푸소 민박이 있고, 1인당 7만 원이라는 가격도 동일하다. 시골 농가에서 숙박하며 저녁과 아침을 먹는 방식이다.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는 목포에서 ‘일주일 살기’였지만, 강진에서 여행비의 절반을 돌려준다는 말에 혹해 남도 여행으로 방향을 틀었다. 강진에서 2박을 하려던 이유도 바로 푸소 때문이었다. 시골 농가에서 차려주는 밥상, 그 낯선 매력에 끌렸다.

하지만 예약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연달아 거절당한 끝에, 간신히 허락을 받은 곳이 N푸소였다.

그곳은 전형적인 농갓집을 손님맞이용으로 손본 느낌이었다. 마당엔 꽃이 만발했고, 개와 닭, 고양이가 뒤섞여 뛰어다니는 풍경이 ‘전원일기’의 한 장면처럼 펼쳐졌다.

문자 메시지로 받은 비번으로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한참이 지나서야 주인이 나타났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은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았다. 그리고 푸소의 하이라이트, 저녁상이 차려졌다.

손님은 우리 둘과 학생 네 명이 전부였는데, 아이들은 나중에 따로 먹는다 하고, 식탁에는 우리 둘과 주인 내외만 앉았다. 내가 좋아하는 나물들과 오스씨가 좋아하는 메인 반찬(주꾸미 초장, 하모조림, 돼지불백)이 한가득. 풀밭만 나올까 봐 잔뜩 걱정하던 오스씨 얼굴에 안도와 기쁨이 번졌다.

결정타는 주인아저씨가 꺼낸 막걸리 한 병이었다.
가우도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막걸리 한 잔에 스르르 녹았다. 푸소라는 이름, 누가 지었는지 퍼펙트!
그날 우리는, 오랜만에 과식을 했다.

식사 자리에서 주인아주머니가 말했다.
“근처 마량항이 야경이 괜찮아요.”

광안리 불빛에 길든 우리라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부른 배를 꺼트릴 겸 발걸음을 옮겼다. 밥상에서 받은 기운 때문일까? 등대까지 이어진 데크는 공사 자재로 어수선했는데도, 소박하고 아늑한 조명에 마음이 풀렸다. 작은 조각상 앞에서도 “꺅, 귀엽다”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고 웃음이 터졌다.

오늘 하루는 피곤함으로 기억될 줄 알았다. 그런데 저녁 한 끼가 모든 걸 바꿔버렸다. 이게 바로 남도 밥상의 힘인가!

다음 날 아침, 핸드폰이 울렸다.

“밥 먹으러 오세요.”

우리는 원래 아침을 적게 먹는 편이지만, 이 부부에겐 통하지 않았다. 황태구이, 고둥무침, 나물들이 다시 상을 가득 채웠다. 아침부터 또 폭식. 그래서 조언 하나. 푸소를 이용할 계획이라면 전날 하루 종일 칼로리를 소모할 일들을 잔뜩 하고 올 것!


다시 봐도 말문이 막히는 구성. 2인 1박 7만 원(반값 적용)의 저녁상이라니...


식사 자리에서 푸소 이야기가 나왔다.

이 제도는 독일에서 시작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강진의 푸소 운영자들은 일본 연수까지 다녀왔다니, 제도 하나에 꽤 많은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우리가 세 번이나 거절당했다고 하자, 아주머니는 안타까와하며 말했다.
“교육을 그렇게 했는데도, 아직 그래요.”

푸소는 초기에 정말 ‘농가민박’ 다운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농사를 짓는 집만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행객이 몰리는 시기는 늘 농번기와 겹쳤다. 결국 농사를 짓는 집들은 하나둘 물러나고, 대신 펜션업자나 귀농인이 자리를 채웠다.

방학이 되면 전국에서 중고생들이 강진으로 현장체험 학습을 온다. 학생들은 서너 명씩 짝을 지어 여러 푸소에 분산된다. 우리와 같은 날 온 학생 네 명도 그렇게 이곳에 배정된 아이들이었다. 이맘 때는 이런 종류의 단체 예약이 많다 보니, 소규모 여행자는 종종 밀려나기 쉽다. 그 설명을 듣고 나니, 우리를 거절했던 농가들에 대한 섭섭함이 조금 가셨다. 아무 때나 떠날 수 있는 우리보다, 방학이라는 짧은 틈에 남도를 경험하는 아이들이 우선이어야지, 암!

대부분 푸소는 집 한 채를 통째로 빌려주는 방식이라 인원이 많을수록 유리하다. 우리가 묵은 N푸소는 작은 방이 있어 두 명도 받을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그래서 팁 하나.
푸소를 예약할 땐 2인 특화 숙소를 고를 것. 그리고 방학 시즌은 가급적 피할 것.

우리는 이곳에서 배부른 밥상과 소박한 친절을 잔뜩 챙겼다.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는 건 거창한 풍경이 아니었다. 결국, 따뜻한 상차림과 마음이었다.

강진에서의 이틀, 충분히 성공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두 명의 여행자도 좋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