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남도 여행기 7
해남읍에서의 하루, 강진의 보너스.
해남읍에서 우리가 선택한 숙소는 남도호텔이었다. 가격 대비 넓은 방, 벼가 심어진 논 뷰, 월풀 욕조까지. 읍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점만 빼면 흠잡을 데 없었다.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읍내도 구경할 겸 차를 몰았다.
강진에서와 마찬가지로, 해남에 도착하기 전 이반시티에 접속해 현지 게이들에게 맛집을 물어봤다. 대화는 늘 비슷했다.
“저녁 같이 하실래요?”
“혼자 오셨어요?”
“아뇨, 애인이랑요.”
“아, 저는 일이 있어서요. 맛있게 드시고 가세요.”
역시나 같은 결말. 커플 주제에 괜히 말을 걸어 죄송합니다.
차를 군민광장 지하주차장에 세우고 제일 먼저 들른 곳은 해남 고구마빵으로 유명한 빵집 <피낭시에>. 그런데,
“어쩌죠? 고구마빵이 다 떨어졌는데요.”
어쩌긴요, 옆에 있는 고구마 타르트라도 주세요. 실망을 조금 담아 한입 베어 물었는데, 어라? 맛있다. 해남 하면 고구마라더니, 역시! 다음 날 아침 9시에 문을 연다니, 다시 와서 고구마빵을 꼭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다음은 <해남서점>. 여행 중 서점에 들르는 건 우리 여행의 필수 코스다. 요즘 트렌디한 독립서점은 아니었지만, 전남 지역 예술가들의 책을 한쪽에 가지런히 모아놓은 모습이 반가웠다. 가장 좋은 위치에 놓인 이재명 대통령의 책은 이곳이 전라남도임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나는 <어른 김장하 취재기>를 집어 들었다가 여행에서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이 떠올라 내려놓고, 오스씨는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손봉기 지음)>을 골랐다.
이제 본격적인 저녁. 해남 게이에게 추천받은 샤부샤부 전문점인 <성내식당>으로 갔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직원이 말했다.
“예약하셨어요?”
“어… 아니요?”
“그럼 못 드세요. 오늘 예약이 꽉 찼습니다.”
“에에엑?”
수요일, 저녁 6시인데도 예약이 꽉 찬다니! 읍 단위 식당이라고 얕봤다가 큰코다쳤다. 부랴부랴 네이버지도를 열고 검색한 끝에 <갯마을 아구찜>을 발견했다.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거니 다행히 자리가 있다며 얼른 오란다.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푸짐한 해물찜이 등장했다. 두절콩나물무침부터 한입. 매콤하면서도 감칠맛이 살아 있는 양념에 무쳐진 콩나물이 아삭하게 씹힌다. 남도의 음식은 왜 이렇게 하나같이 우리를 만족시켜 주려고 애쓰는 걸까. 배가 터질 지경인데도 결국 남은 양념에 밥까지 볶아 먹고는 헉헉대며 호텔로 돌아왔다.
이른 시각 호텔에 돌아와 할 일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
김훈의 에세이 <연필로 쓰기>를 꺼냈다. 장례식장에서의 소회를 적은 문장이, 최근 친구들의 죽음으로 한껏 예민해져 오만 글을 싸질러대고, 또 인생에 초탈한 척하던 날 부끄럽게 만든다. 나를 찔끔찔끔 울게 만들었던 그 문장들...
“여러 빈소에서 여러 죽음을 조문하면서도 나는 죽음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다. 죽음은 경험되지 않고 전수되지 않는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은 죽은 자들의 죽음에 개입할 수 없고, 죽은 자들은 죽지 않은 자들에게 죽음을 설명해 줄 수가 없다. 나는 모든 죽은 자들이 남처럼 느껴진다. 오래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염을 받고 관에 드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범접할 수 없는 타인이라고 느꼈다.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제가 죽었는지를 모르고, 제가 모른다는 것도 모르고, 산 자는 살았기 때문에 죽음을 모른다. 살아서도 모르고 죽어서도 모르니 사람은 대체 무엇을 아는가.(김훈 - 늙기와 죽기 중에서)”
그래, 김훈도 모르는 죽음, 내깟게 뭘 안다고, 그리 요란을 떨었을까. 죽음이 말을 걸면 그냥 겸손하게 고개 숙이며 "넵, 알겠습니다. 그냥 주시는 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해야지.
앞으로 내가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형이상학 앞에서는 겸손, 또 겸손할지어다.
그런데 여담으로, 김훈의 산문은 좀 징그럽다. 문장에 넘실거리는 힘으로 독자의 감정을 마구 뒤흔든다. 결국 책을 끝내지 못하고 절반만 읽고 가방에 쑤셔 넣었다. 여행을 동반하기엔 맞지 않다. 특히 더운 여름날엔.
건강한 밥상 덕분이었을까. 오랜만에 깊게 잠들고, 개운하게 깨어났다. 호텔의 조식은 소박했지만 부족함은 없었다. 가격을 생각하면 감지덕지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강진 반값 여행 관련 알림. 전날 제출한 영수증이 확인됐고, 여행비의 절반인 20만 원이 지역화폐 앱으로 입금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돈은 강진의 가게에서 쓸 수도 있고, 지역 특산품 쇼핑몰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전날 이미 쇼핑몰에 들어가 장바구니를 가득 채워두었다. 강진의 자랑 새청무쌀 10kg, 투뿌라스 한우 등심과 안심, 그리고 다양한 전라도 김치들까지. 딱 20만 원에서 2500원 초과한 금액.
놀고먹고 쉬었을 뿐인데, 귀한 먹거리까지 한아름 안겨주는 강진군! 이러니 사랑할 수밖에.
벌레 많은 여행지에서 살아남는 꿀팁
여름만 되면 얼굴을 향해 달려드는 작은 날벌레들. 손으로 휘휘 몰아내는 것도 이내 귀찮아진다. 그럴 땐 손선풍기가 구세주!
하지만 방향이 포인트다. 얼굴 쪽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바람을 세게 쏴라. 날벌레는 강한 역풍 앞에 감히 다가올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작지만 확실한 여행의 지혜, 기억해 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