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제주의 두 번째 이야기

가을 제주 이야기 1

by 선우비

2022년 5월, 우리는 제주에서 한 달을 살았다.

“아무것도 안 하려고” 떠난 여행이었다.

골치 아픈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지만, 가성비와 본전 생각에 길들여진 남자 둘이 아무것도 안 할 리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평소 안 하던 짓을 해보자며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한 달 살이는 제주의 오름을 오르고, 독립서점을 순례하고, 때로는 자아를 성찰하며, 게이 친구들에 대한 단상까지 담아낸 ‘안 해 본 거 해 보는’ 여행이었다.

환갑을 넘긴 오스씨와 띠동갑 선우비가 서로의 차이를 웃음으로 버티며 완성해 간 봄날의 기록. 그 이야기는 한 권의 작은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다.

남자 둘이 손잡고 한 달 살기

그 책의 <제주에서 한 달 살기> 마지막 장을 덮으며 우리는 말했다.

“가을에 다시 제주에 오자. 봄에 못 간 오름도 다 가보고, 억새도 보자.”

그래서 우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제주로 향했다.

이제부터 펼쳐질 이야기는 봄의 한 달 살기에 이어지는 시월의 제주 여행기다.

짧지만 밀도 높은 일주일.

소란스럽고, 조금은 쓸쓸했던 그 가을의 기록을 이제 시작하려 한다.



봄으로부터 여섯 달, 치유와 화해


봄의 한 달 살기로부터 여섯 달이 지났다. 우리는 아직 ‘건강하게’ 잘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건강은 단순히 몸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난 반년 동안, 우리 안에서 조금씩 조용한 변화가 일어났다.

절반의 비건을 시작하며 식탁에서 덩어리 고기가 사라지자 가장 먼저 달라진 건 내 피부였다. 오랜 시간 괴롭히던 피부 건조 증상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값비싼 수입 크림이 아니면 금세 뒤집히던 내 피부가, 이제는 어떤 제품을 발라도 편안하다. 덕분에 오스씨와 비싼 크림을 두고 실랑이하던 일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오스씨는 한라산 완등 이후 산을 오르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무리한 등산 끝에 목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나 역시 허리 통증으로 재활의학과를 전전했다.
몸은 이렇게 늘 어딘가 불편했지만, 마음만큼은 한결 편안해졌다. 제주에서의 시간은 마치 오래된 꽃병을 싹 바꿔버린 듯한 경험이었다. 마음속에 쌓여 있던 낡은 습관과 묵은 감정들이 서서히 씻겨 내려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생각들이 꽃처럼 피어났다.

특히 여행에서 만난 책들이 나를 보다 나은 사람으로 살고 싶게 만들었다.

제주를 떠나기 전까지 우리를 괴롭혔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위층의 누수 문제였다. 장장 열 달 동안 이어진 갈등은 우리 부부의 마음을 쩍쩍 갈라놓을 만큼 깊고 지루한 싸움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그 문제를 마침내 풀어내기로 결심했다.

위층도 누수의 원인을 찾기 위해 마룻바닥을 다 헤집으며 우리 못지않게 속을 태운 걸 알면서도, 법정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 그동안 일부러 거리를 두며 지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을 열기로 했다.
공사한 자리에서 좋은 향이 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천연 허브 스프레이를 선물로 골랐다. 위층 아주머니는 감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값비싼 과일로 화답해 주셨다. 단지 내에서 마주칠 때마다 예의만 차렸는데, 이제는 활짝 웃으며 근황을 묻는 사이로 바뀌었다.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니, 몸의 통증보다 더 깊은 곳에서 치유가 시작되는 듯했다.


책이 연결한 새로운 길


제주를 떠나기 직전, 한 권의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제람 씨의 『암란의 버스, 야스민의 자전거』였다. 난민 문제엔 관심 1도 없던 내가 그 책을 집어 든 건, 단순히 정우성 씨가 유엔 난민기구 친선대사라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작은 충동에서 시작된 선택이었다.

책을 읽고 난 뒤, 저자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반가운 마음에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했다. 그의 팔로워 중에 ‘부산퀴어문화플랫폼 홍예당’이 있었다. 그곳에서 소설가 김비 님이 진행하는 수필 쓰기 모임을 발견했다.

목표는 “나와 가까워지는 글쓰기”. 제주에서의 나를 정확히 표현한 문장 같았다. 이건 운명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제주에서의 한 달 살이를 기록하기로 했다.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 흐릿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떤 배움은 강력한 접착제로 기억 속에 붙잡아 두어야 한다.

주 교재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수강생 모두가 자신의 내면을 가감 없이 드러냈고, 그 덕분에 나 역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4개월 동안 쌓인 글들은 『백 척의 무지개는 마을을 만드네』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다. 지원받은 예산이 적어 계란 두 판 양도 안 되는 초소량만 찍었다.


다시 제주로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는데….”
내 글에서 로맨스의 상대역, 혹은 메인 빌런으로 등장했던 오스씨도 자신의 활약상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독립서점에서 좀 저렴하게 찍은 것처럼 보이는 책들 봤잖아. 우리도 그렇게 한 번 내볼까?”

“책 한 권 낼 분량이 못 돼.”
“덧붙일 만한 내용 좀 없나? 이것저것 추가해서 분량을 늘리면 되잖아.”
“뼛속까지 박박 긁어서 썼어. 지금은 이게 한계야.”

그렇게 대화가 끝나는 듯했는데, 문득 봄 여행기의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다.


“우리 이번 가을에도 제주에 다시 오자. 윗세오름도 가고,
이번에 못 간 서부 오름들도 다 가보자.”
“그르자, 그르자.”


며칠 뒤 내가 슬쩍 말했다.
“잠깐 제주도 다녀올까? 억새도 볼 겸.”
오스씨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얼마면 돼? 얼마면 되니?”
그 순간, 그는 원빈보다도 멋져 보였다.

“한 일주일 정도 다녀오면 글감이 생기겠지?”
“오케이, 가자!”

그렇게 두 번째 제주행이 기획됐다.
첫 번째 여행이 ‘쉼’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었다.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해 글로 남기리라 다짐하며, 가을이 절정에 달한 시월 중순 다시금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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