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소개한 두 편의 ‘퀴어 소설 탐험기’는 2011년에 출판된 『게이컬춰홀릭』이라는 책에 실린 글이다. “국내 최초, 게이들이 직접 만든 게이문화 가이드북!”이라는 문구가 책 표지에 적혀 있고, 발행인은 남성동성애자인권단체 친구사이다.
놀랍게도 이 책에 필진으로 참여했던 사실을 나는 완전히 잊고 살았다. 그것도 무려 세 번이나.
첫 번째는 2022년, 홍예당 글쓰기 모임에서 함께 만든 수필집 『백 척의 무지개는 마을을 만드네』를 출간하고 소소한 북토크를 열었을 때였다.
“살다 살다 북토크도 다 해보네. 나 참 출세했다.”
“무슨 소리야? 너 예전에 했잖아.”
“내가?”
“『게이컬춰홀릭』 출판기념 북토크 하려고 서울까지 갔잖아.”
오스씨의 말을 듣고서야 희미하게 기억이 되살아났다. 북토크뿐만 아니라 출판파티까지 열어줘서 신나게 놀다 왔다고 했다. 심지어 사람들 앞에 선다고 오스씨가 새 옷까지 사줬다는데, 그런 기억조차 없었다. 꽤 큰 행사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말끔히 지워버렸을까.
두 번째는 작년,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된 서울 종로의 게이바 <비바>를 방문했을 때다. 신상 게이바로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오래된 가게였다.
“이렇게 내 취향에 맞는 큰 바가 종로에 있었는데, 왜 이제야 알았지?”
“아니, 이 인간 좀 봐라. 예전에 『게이컬춰홀릭』 출판 파티 여기서 했잖아.”
그리고 며칠 전, 오스씨가 책을 꺼내 보여주며 물었다.
“이거 기억나?”
“아니…”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이 책을 잊고 있었을까.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마도 출판 파티에서 마주친 ‘그 사람’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스씨를 만나기 전, 약 1년간 연애했던 사람이 있었고, 우리는 좋지 않게 헤어졌다. 이후 몇 년에 한 번쯤 우연히 마주치는 정도였는데, 그날 출판파티에서 다시 마주친 것이다.
나랑 헤어진 이후 수년 간 연인이 없다는 말을 건너건너 들었는데, 어느새 애인이 생겨 있었다.
‘뭐야, 나랑 너무 닮았잖아.’
나는 그와 ‘외모부터 성격까지 완전히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데…
이런 건 왜 기분이 안 좋을까?(아는 분 있나요?)
새 옷을 입고 축하받으러 간 자리에서 느껴진 그 알 수 없는 복잡함. 어쩌면 그날의 찜찜함이, 이 책의 존재를 내 기억 저편으로 밀어 넣게 만든 진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책에 실린 내 글은 앞 선 <고전 편>과 <청소년 편> 말고, <젠더문학 편>이 더 있다.
한국 동성애 소설의 풍경
2000년 ‘게이문학닷컴’(이후 ‘젠더문학닷컴’)이 문을 연 이후 국내 동성애자들의 작품은 대부분 이곳을 통해 발표되었다.
종이책으로 출판된 『마성의 게이』(2002), 『남남상열지사』(2003), 『정호의 성공사례』(2004), 『레인보우 아이즈』(2005), 『나나 누나나』(2006), 『비쳐 보이는 그녀』(2008), 『하추간』(2008), 『낙원의 열매』(2009), 『오늘 나는 푸른색 풍선이 되어 도시를 헤매었네』(2010) 외에도, 2006년 이후 250편이 넘는 전자책이 꾸준히 제작됐다.
작가층이 좁고 작품 수도 많지 않아 뚜렷한 경향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인기작의 면면은 뚜렷하다.
『낙원의 열매』(마모), 『그는 무식한 머슴이었다』(서우영), 『마취를 시켜서라도』(바닐라스카이), 『하추간』(모가), 『달이 가득 차오를 때』(달몽실이).
모두 격정적이고, 순수하고, 가슴이 미어지는 로맨스물이다. 한국의 동성애 소설 독자들이 무엇보다 ‘사랑의 서사’에 끌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면 현실적인 삶과 문제를 묘사한 작품으로는『어느 개인 날 아침에』(김정수), 『핑크 스카프』(명안), 『허망한 것에 대한 지치지 않는 고백』(정완), 『그린란드로 가자』(현수) 등을 들 수 있다.
국내 동성애 소설을 읽을 수 있는 곳
바로북닷컴 : 사라졌다.
젠더문학 : 다음 카페에서 젠더문학 검색
엘문학 : 다음 카페에서 엘문학 검색
필라인 : 사라졌다
교보문고 디지털북의 젠더문학: 교보문고에서 '해울'로 검색
이제 와 다시 펼쳐보니, 잊고 살았던 책이지만 내 청춘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문장 하나하나에 그 시절의 열정과 서툴렀던 믿음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글을 쓴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 출판계에는 ‘퀴어 소설’ 열풍이 불었고, 어느새 책장 속에서 퀴어 문학이 차지하는 자리는 눈에 띄게 커졌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 이후의 이야기들도 차근차근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