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원, 『수월한 농담』
송강원, 『수월한 농담』 — 한 사람을 ‘쓴다’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일
부산에서 자라고 해외를 떠돌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퀴어 청년. 다큐멘터리 〈퀴어마이프렌즈〉의 주인공. 그리고 이제는 “엄마의 마지막 3년”을 글로 기록한 에세이스트.
송강원의 『수월한 농담』은 그렇게 여러 겹의 얼굴을 가진 사람의, 가장 근원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어머니와 함께 보낸 3년. 병의 진행 속도를 매일같이 확인해야 했던 시간. 멀리 있던 아들이 짐을 싸 들고 돌아와야 했던 선택.
그럼에도 책의 톤은 의외로 무겁지만은 않다. 송강원 특유의 유머와 자기 인식이 계속해서 슬픔의 응어리를 조금씩 덜어낸다.
1. 퀴어마이프렌즈
송강원을 처음 알게 된 건 다큐멘터리 〈퀴어마이프렌즈〉에서 였다. 영화 속 ‘강원’은 청춘이라는 계단을 숨이 차도록 올라가다 잠시 두리번거리는 사람처럼 보인다. 긴 파마머리에 살짝 너드스럽게 묘사되는 친구이자 감독과의 우정만이 그의 이십 대를 간신히 지탱해주는 듯했다. 영화 속에는 그의 가족이 등장하지 않는다. 청춘, 우정, 아픔, 극복, 이런 서사가 잘 배합된 웨메이드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GV 자리에서 마주한 두 사람은 화면 속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긴 퍼머를 숏컷으로 단정하게 자른 감독은 너드기는 커녕 세련이 넘쳐흐르는 도시 여자였고, 강원 씨는 모든 방황을 끝낸 노련하고 재치 넘치는, 말 그대로 “프로페셔널한 퀴어 어른”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강원 씨의 어머니가 계셨다. 개봉한지 시일이 꽤 흘렀는데도,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영화를 이때 처음 보신다고 했다.
'집 근처에서 상영한다니까 어쩔 수 없이 보러 오신 건가?'
동성애를 다룬 프로그램에서 종종 나오는, 사랑하지만 여전히 자식의 정체성을 긍정하기 힘들어하는 부모님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중에 『수월한 농담』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어머니는 말기암으로 투병 중이었고, 화면에서는 힘들게 청춘을 통과하던 감독도 같은 병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녀의 세련된 숏컷은 병과 싸우는 과정에서 생겨난 흔적이었다.
이렇듯 삶은 어디에 서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짓는다. 그런 의미에서 〈퀴어마이프렌즈〉와 『수월한 농담』은, 같은 사람을 서로 다른 거리에서 바라본 두 개의 초상화처럼 느껴진다.
2. 퀴퍼 뒤풀이
2025년 서울퀴퍼가 끝난 뒤, 친구들과 뒤풀이를 하던 자리에서 우연히 강원 씨 일행과 합석하게 되었다. 지방에서 게이로 산다는 것, 오래된 커플의 시간, 서로 겹치는 퀴어 커뮤니티의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꽤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어색함이 없었다. 특유의 사회자 기질로 술자리에서조차 좌중을 이끌어갈 줄 아는 그는, 『수월한 농담』에서 고백하듯 우울증으로 고통받은 흔적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책에서 그가 밝혔던 소망처럼 발전소 같은 사람으로만 보였다.
어머니가 오셨던 GV에서 당신을 본 적이 있어요, 그는 반색하면서도 어머니가 그 이후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른 이별이었지만 어쩐지 그의 목소리는 어쩐지 담담함이 느껴졌다.
그날 그는 가을쯤 에세이가 나올 거라며, 기대해 달라는 말을 했다. 내용은 출판사 요청으로 비밀이라고.
책이 나오면 부산에서도 북토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니, 홍예당 쥔장을 졸라서 북토크를 추진할테니 꼭 부산에 와달라고 했다.
3. 『수월한 농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자연스럽게 〈퀴어마이프렌즈〉의 활자판을 기대했다. 다큐멘터리의 연장선처럼, 퀴어 청춘의 성장과 욕망, 밝고 어두운 순간들이 교차하는 자전적 에세이를 상상했다. 뒤풀이에서 만난 멋진 애인 이야기도 양념처럼 뿌려진.
하지만 책장을 펼치자, 예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수월한 농담』은 강원씨가 어머니 ‘옥’과 함께 한 마지막 3년을 기록한 책이다. 죽음의 그림자와 병원의 냄새, 항암 치료의 부작용과 통증 같은 것들이 반복해서 등장하지만, 이 책은 단지 ‘투병기’나 ‘유족의 애도일기’로 읽히지 않는다. 출판사 소개의 말처럼, 이 이야기는 “나의 슬픔이 아니라 엄마의 생에 초점을 맞추려 했던 3년”의 기록에 가깝다.
어릴 적 그는 ‘발전소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긍정과 행복을 생산하는 사람. 하지만 현실의 그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깎아내리며 겨우 균형을 유지하는, 기대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엄마의 병 앞에서 처음으로 “온전히 누군가의 편에 서는 법”을 배운다.
강원 씨는 어머니를 ‘엄마’라고 쓰지 않기 위해 ‘옥’이라는 이름을 선택한다. 어머니라는 역할을 벗겨내고, 한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자꾸만 ‘엄마’라는 호칭이 흘러나온다. 이름과 호칭 사이에서 오가는 이 흔들림이, 그가 감당해야 했던 애도의 폭을 느낄 때마다 책장을 덮고 오래 멈춰 서게 되었다.
옥은 병의 통증에 갇힌 사람처럼 보이면서도, 때때로 놀랍도록 생의 기쁨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의사에게 평소 좋아하던 자몽을 먹어도 좋다는 말을 듣고는, 한 아름 사 와 세상을 다 가진듯 웃는다. 모자는 간병의 무게 속에서도, 서로에게 미안해하고 서로의 미안함을 돌본다. ‘돌봄’이라는 단어가 슬픔과 따뜻함을 동시에 머금는 순간들이 촘촘하게 나열된다.
『수월한 농담』에는 퀴어 아들의 삶,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서 살아온 시간, 여러 번의 이주 경험, 우울과 자살 충동을 지나온 자기 서사 역시 곳곳에서 등장한다.
어린 시절 “계집애 같다”는 말을 들어야 했던 기억, 낮에는 숨기고 밤이 되어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던 청춘의 시간들, 자신이 ‘이상한 존재’라고 느끼며 보낸 10대와 20대의 어느 조각들이, 엄마의 병실과 현재의 일상으로 이어지며 조심스럽게 엮인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책이 “엄마를 잃은 아들의 슬픔”을 대문짝만 하게 내세우기보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한 사람의 태도”를 끝까지 지켜보려 한다는 점이다. 죽고 싶은 마음으로 가까스로 버티던 아들이, 기꺼이 죽음을 껴안는 엄마 곁에서 다시 삶을 배워가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삶으로 돌아오는 법”을 우아하게 보여준다.
“사람을 쓰는 일은 어쩌면 가장 성실한 사랑일지 모른다.”
책 속 이 문장은, 『수월한 농담』 전체를 관통하는 한 줄 요약처럼 느껴졌다. 강원 씨에게 글쓰기는 슬픔을 견디기 위한 도구이자, 엄마를 두 번 살게 하는 작업이다.
4. 사람을 ‘쓴다’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일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책을 쉽게 읽지 못했다. 페이지 곳곳이 눈물 지뢰밭 같았다. 단 두 번의 만남이었지만 그가 가진 친화력 때문에, 이 책은 어느 지점부터 ‘그냥 아는 작가의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았다. 마침내 어느 날 마음을 단단히 붙들고, 곁에 수건 하나를 놓고서야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출간이 한참 지난 지금에야 독후감을 올리는 이유이자 변명이다.
한 사람의 삶을 오래 바라보고, 그 사람의 마지막 3년을 “쓴다”는 방식으로 사랑해보는 일이 얼마나 단단한 애도인지 강원씨는 몸소 보여준다.
나는 지금 내 주변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돌아보게 된다.
언젠가 내가 떠나보내야 할 이들이 생겼을 때, 그들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책을 덮고 나서, 조용히 다짐해 보았다.
나도, 언젠가 내가 사랑한 사람들을 ‘쓴다’는 방식으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이 살아낸 시간을 문장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