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를 얻는 동시에 행복해질 수 있을까

BL에 미친 자가 추천한 소설 읽기 2

by 선우비

우리 또래에게 그리스로마 신화는 상상 가능한 서구 판타지 세계의 전부였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가 나오기 전이었다. 신과 거인, 초능력의 요정들, 인간 영웅들의 이야기를 실감 나게 느끼려면 서구의 신화를 읽어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는 단연 트로이 전쟁을 다룬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였다.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는 각각 힘과 지혜의 상징으로 아이들에게 ‘영웅’의 전형이었다. 적어도 토마스 불핀치의 판본에서는 그렇게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훗날 어른이 되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직접 읽고(심지어 플라톤의 <향연>까지 섭렵하고) 난 뒤의 충격은 참 컸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와 동성애 관계(우정이 아니라)였고, 오디세우스는 현자라기보다는 영락없는 잔꾀의 달인이었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건, ‘완벽한 영웅’ 따윈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들의 이야기야말로 훨씬 재미있다는 걸 깨닫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매들린 밀러의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일종의 대체역사물이다.
아킬레우스와 그의 절친 파트로클로스를 대놓고 사랑하는 관계로 설정한다. 등장인물들과 전쟁의 흐름은 원작과 대체로 동일한데, 그 사이에서 두 소년이 서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지키려 노력하며, 예언적 운명을 피하기 위해 애쓰고, 끝내 서로의 명예를 위해 죽음까지 향해가는 과정을 아름답고 설득력 있게 펼쳐놓았다.

트로이 전쟁은 흔히 신과 인간이 얽힌 거대한 전쟁 판타지로 소비되곤 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그 모든 사건이 두 남자가 서로를 구원하기 위해 가야만 할 길로 환원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 로맨스에 머물지 않고, 트로이 주요 인물들의 관계를 충실히 묘사하며 원작의 긴장감과 질감까지 끌어오는 작가의 능력은 놀랍다.


소설의 화자는 파트로클로스다. 그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완벽한 남자, 아킬레우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이유는 스스로를 포함, 아무도 모른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를 죽였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킬레우스네 집의 떨거지 식객일 뿐이다. 아킬레우스 어머니인 여신 테티스는 아들의 앞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그를 지극히 혐오하며 어떻게든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려 한다.


전형적인 ‘치유계’ 캐릭터인 파트로클로스와는 달리,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지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내다. 영웅으로 추앙받아 영원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길 원한다는 의미에서 요즘 인기 있는 웹소설 <전지적 독자시점>의 캐릭터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걸 제외한 세상사에는 관심 없이 살아가지만, 파트로클로스만큼은 예외다. 긴 청소년기와 십여 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을 합쳐,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이 18년이 되어가도록 그는 한결같이 파트로클로스만을 사랑한다.

무려 18년이다, 18년.

당시 스파르타는 소년 간의 사랑을 터부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려하는 분위기까지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그만두어야 했다. 사내는 정복하는 존재고, 정복당한 사내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덥수룩한 수염의 이십 대 중반의 사내들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길 멈추지 않았다.

오로지 죽음만이 그들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


로맨스 소설에서나 가능한 설정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뛰어난 개연성으로 끝내 독자를 설득한다.

대놓고 퀴어 로맨스이니, 퀴어력은 10점 만점에 10점.

<일리어드>를 좋아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운명에 휘둘리고 신이 낸 숙제에 허덕이는 영웅들과 확실히 다른, 고고하고 매력적인 아킬레우스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맹세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걸 알기에,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가슴이 먹먹해지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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