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은 읽기

by 선우비

<칵테일, 러브, 좀비>를 읽고 조예은 작가가 궁금해졌다.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이 작가, 조금 더 파고들고 싶어졌다.


1.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 조예은 장편소설


<뉴서울파크/젤리장수////대학살>은 독특한 형식의 장편소설이다.

한 아이가 화자로 등장해 놀이공원에서 벌어진 기괴한 일들을 서술하는 단편이 나온다. 이어 그 짧은 단편 속에 등장한 인물들이 저마다 단편의 꼭지를 맡아 전체 이야기 속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소개하다 하나로 합쳐진다.

나중에 프로듀서(?)의 후기를 보니 이런 방식을 '군상극' 형식이라고 하는 듯했다.

내용은 뉴서울파크라는 놀이공원에서 벌어지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형식으로건 낙오된 사람들이 겪는 말도 안 되게 섬뜩하고 슬픈 이야기다. 형체가 있지만 안면 인식은 불가능한 존재라든가, 땀으로 끈쩍거리고,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신체라든가, 고양이, 강박증 환자, 죽음으로라도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열망 등등... 스티븐킹의 소설과 이토 준지의 만화에서 익히 본 것들이 뷔페처럼 차려진다. 이런 장르는 사실 이런 맛에 보는 건데, 조예은은 '250'이나 '테디'같은 케이팝 프로듀서처럼 레트로를 요즘 입맛에 맞게 잘 섞어낸다.

어떻게 읽으면 조금 뻔한 장르소설이지만, 한달 쓰고 두 달 탈고로 완성해낸 작품이라니 작가의 재능에 입이 쩍 벌어진다.


2. 『트로피컬 나이트』 - 조예은 단편집


언젠가 이런 주장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 문단의 질서를 쥐고 있는 대형 출판사들이 신춘문예와 문예지를 통해 젊은 작가들을 통제하고, 단편을 계속 쓰게 만들어 그들의 재능을 소모시킨다는 이야기였다. 신예는 문예지를 채우는 단편을 기고하는 게 일종의 의무처럼 여겨지고, 어느 정도 연차가 쌓여야 비로소 장편을 쓸 기회를 얻는다. 한 번 장편을 써낸 작가는 다시 단편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뭐, 믿거나 말거나 한 음모론 같은 이야기다.

실제로 그런지야 외부인인 내가 알 수는 없다.
다만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단편집이 유독 많다는 사실은 조금 흥미로웠다. 내가 젊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허구한 날 『토지』, 『태백산맥』, 『아리랑』처럼 숨이 찰 만큼 긴 대하소설을 들고 다녔던 것 같은데, 요즘은 단연 단편이 강세다. 도파민이 즉각 분출되지 않으면 외면받는 시대, 쇼츠로 대표되는 이 감각의 흐름 속에서 한국 문단도 자연스레 호흡을 갈아타는 걸까 싶기도 하다.

『트로피컬 나이트』는 『칵테일, 러브, 좀비』의 기괴하고 신선했던 감각을 한 단계 더 밀어붙인다. 단편의 호흡은 더 짧고 빠르고, 소재는 훨씬 넓어졌다. 도시괴담, 악마, 제물, 식인 같은 어둡고 흉측한 이야기부터 냥냥하고 따뜻한 미스터리까지, 낯설고 열대적인 밤의 분위기를 다채롭게 변주한다. 쉽게 읽히는 작가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영특한 감각이 어느 순간 단단한 세계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고 싶다. 사실 ‘장편’의 이름을 달긴 했지만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이 묵직한 한방은 아니었으니까.

한국 문단의 그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를 잠시 빌리자면, 이제 충분히 단편이라는 형식을 마음껏 탐험해온 만큼, 다음에는 조예은 작가가 구축할 더 깊고 무거운 세계를 만나보고 싶다.


3. 『칵테일, 러브, 좀비』 – 조예은 소설집


목에 가시를 박은 채 살아가는 여자의 이야기 「초대」,
자신의 외형과 이름을 잃어버린 물귀신 이야기 「습지의 사랑」,
아빠가 좀비가 되어버렸지만 차마 외면할 수 없는 가족의 이야기 「칵테일, 러브, 좀비」,
어머니를 구하려다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아들의 이야기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오랜만에 반전의 재미가 살아 있는 단편들을 읽어 행복했다. 한때 나도 이런 류의 소설을 무척 즐겼다.

‘어떻게 하면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할까?’라는 장난기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페미니즘 같은 시대적 감각을 자연스레 녹여 이야기를 더 맛있게 요리했다. 유머와 통찰의 균형도 탁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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