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퀴어퍼레이드 2025

by 선우비

지난 11월 23일, 전포동 일대에서 ‘부산 퀴어퍼레이드 2025’가 열렸다.


기독교 세력의 극악한 방해 속에서도 2017년과 2018년에 두 번 치러냈지만, 해운대구청의 조직적인 훼방으로 결국 문을 닫아야 했던 바로 그 행사다. 나는 1회 때 가봤는데, 당시 해운대 구남로 일대는 혐오세력의 피켓으로 쫙 뒤덮여 있었다. 축제 참가자보다 혐오세력이 몇 배는 많아 보였다. 처음 퀴퍼에 오는 퀴어라면 충분히 질릴 만한 풍경이었다. (지금은 떨어진 공간에서 각자 집회를 하기 때문에 퍼레이드를 하다 혐오세력을 마주칠 일은 거의 없다.)


다시 퍼레이드를 조직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오오, 드디어! 반가움, 그리고 대견함 같은 감정이 밀려왔다. 누가 조직했든, 오랜 공백을 깨고 다시 부산에서 퀴퍼를 열겠다는 용기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니. 그런데 개최 날짜가 다가오는데도 홍보가 활발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서울이나 대구 퀴퍼처럼 주변 친구들로부터도 “같이 가볼까?” 하는 연락도 오지 않았다. 정말 하는 게 맞나… 살짝 불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행사장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
“아… 사람이 정말 없구나.”
확실히 홍보가 부족했던 듯했다. 그럼에도 홍예당 친구들, 성소수자부모모임 부모님들, 부산대 퀴어동아리 케세라, 수영구 퀴어모임 친구들까지, 내가 아는 사람은 거의 다 나온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서로 참석 여부를 묻지 않았던 이유가 ‘참석이 너무 당연해서’였던 것처럼.


지인들과 인사하고 수다를 나누다가 성소수자부모모임 유튜브 <비비안의 무지개식탁>을 진행하는 비비안님과도 인사를 하게 됐다. 우리가 20년 차 커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곧바로 “프로그램 게스트로 나와달라”며 열정적으로 섭외를 하셨다. 우리는 웃으며 맞장구는 쳐주었지만, 사실 오스씨는 아직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속으로는 ‘죄송합니다…’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행사장은 큰 무대가없이 부스도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었다. 아마도 예산 문제 때문일 것이다. 대신 붉은 천이 깔린 패션쇼 런웨이 같은 무대를 만들어 누구나 그 위를 걸어 나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해 두었다. 홍예당 친구들처럼 행사 홍보를 하기도 하고, 소수자로서의 고통을 토로하거나,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순간의 가슴 벅참을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스피치가 줄을 이었다. 코스프레를 한 커플은 자신의 취향을 마음껏 뽐내며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사세요!” 소리쳐 박수를 받았다.

정해진 식순에 따라 움직이는 행사가 아니라, 참여자 누구나 가볍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형식이라 더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진행자는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혹시 아무도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다고 하는데, 기우에 불과했다며 감탄했다. 부산 퀴어들의 저돌성을 다시 확인한 자리. 이런 아기자기한 구성은 작은 축제만의 진짜 매력일 것이다.


행진 코스는 전포동에서 시작해 부산의 중심 서면로를 지나도록 되어 있었다. 경찰 측에서 큰 도로를 행진하게 해 주었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윤석열 탄핵 정국 때 진행했던 ‘메리퀴어스마스’에서는 뒷골목만 행진하도록 했었다. ‘대통령이 바뀌니 이런 것도 달라지는 건가?’ 싶어 괜히 투표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트럭은 보통 음악만 틀고 춤만 추는 역할인데, 이번에는 ‘영남퀴어’ 활동가 민준이가 노래 중간마다 마이크를 잡고 도로가에 미리 설치한 프랙카드의 내용을 소개하며 시민들에게 퀴어 관련 정보를 전했다. 단순한 흥겨움만이 아니라, 행진을 하나의 메시지 전달 행위로 확장하려는 시도였다. 적은 인원으로도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느껴져 더 인상적이었다.


경찰의 도로 통제가 말끔해 행진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끝났다. 서울과 대구에서 경찰 통제가 엉망이어서 몇 시간씩 질질 끌었던 것을 떠올리면 속이 다 시원했다. 동시에, 이렇게 빨리 끝난 건 행렬이 짧아서 가능했던 거라는 씁쓸함도 남았다.


사람이 적었다. 하지만 다시 시작한 부산 퀴퍼이니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오랜 공백 끝에 처음부터 크게 하기란 애초에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다시 시작’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자리에서 용기를 낸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단단했는지 알기에 감사함이 더 컸다.


한편 지난 대구 퀴퍼에서도 느낀 점이었는데… 요즘 퀴퍼들이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인 패턴을 반복한다는 우려가 있다. 비슷한 굿즈를 파는 홍보부스, 케이팝에 맞춰 도로를 도는 행진, 뻔한 깃발 행렬. 퀴어만의 독특함보다는 ‘조금 색다른 가두집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진짜 부산다운, 부산만의 아이디어가 살아 있는 퀴어 축제를 만들 수는 없을까? 사실 꼭 길을 돌아다니며 케이팝에 맞춰 무지개깃발을 흔들지 않아도 우리의 자긍심을 널리 알릴 방법은 많다. 축제의 형식이 반드시 ‘퍼레이드’ 일 필요도 없다. 부산이라는 공간이 품고 있는 퀴어한 감수성을 더 예민하게 살펴본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축제도 가능할 것이다.


아마 이 부분은 앞으로 더 논의하고, 더 연구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다만 지금은, 이번 행사를 준비한 분들에게 진심을 다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늘 어렵다. 그래서 그만큼, 용기를 낸 분들이 더욱 고맙다.
수고 많았습니다. 내년에 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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