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소설 읽기 2

by 선우비

6.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 김기태 소설집


‘지금 시대의 남성 작가’를 만난 느낌이었다.

이성애자 남성과 교류가 거의 없고, 남성 작가의 글은 주로 장르문학으로 접해온 나에게, 이 작품집이 펼쳐 보이는 남성적 세계는 낯설면서도 신선했다.

김기태는 1985년생이지만, 그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세대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가 다루는 아이돌, 방송 프로그램, 철학자 같은 소재들이 내게도 익숙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방식도 뻔하지 않았고, 디테일이 살아 있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세상모든바다〉와 〈롤링선더러브〉는 재기발랄했고, 〈전조등〉은 묘하게 서늘했다. 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보편교양〉은 조카 둘이 교직에 있어서인지 유독 흥미롭게 읽혔다. 다만 그 이후의 작품들은 번뜩임과 안정감이 조금씩 엇갈려 보이며 집중의 흐름을 잡기 어려운 지점도 있었다.

아이돌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워낙 좋아해서인지 〈세상모든바다〉가 가장 재미있었고, “이 작가, 정말 매력 있다”라는 생각이 든 건 〈전조등〉이었다. 하지만 가장 마음이 오래 머문 작품은 역시 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다. 나 역시 소설 속 화자처럼 ‘인터내셔널가’를 연달아 틀어놓고 청소한 적이 있어서일까,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우린 친한 사이야.”

마침내 둘만의 농담을 갖게 된 진주와 니콜라이의 삶을 오래 응원하고 싶다. 기꺼이, 진심으로.


7. 『홍학의 자리』 – 정해연 장편소설


프롤로그부터 강렬하다. 스릴러 혹은 추리소설에서 이렇게 단번에 끌어당기는 도입은 오랜만이다.

이 장르는 독자가 얼마나 쉬지 않고 읽었는지로 점수를 매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십 쪽 읽고 덮으면 0점, 절반쯤 읽고 쉬면 50점, 잡자마자 끝까지 읽으면 100점.
그 기준이라면 『홍학의 자리』는 100점이다. 정보를 모두 준 상태에서도 긴장을 놓지 않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극한의 몰입’이나 ‘숨 막히는 전개’라는 표현이 어울리지는 않는다. 정해연의 서사 방식은 그런 쪽보다는 ‘영리함’에 가깝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계산된 구조를 떠올리게 하는 우아한 정밀함이 있다.

결말의 반전은 다소 뜬금없게 느껴졌다. 살인의 구성을 위한 장치라고 보기엔 조금 과감한 선택이었다. 세부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까 적지 않지만, 그런 방식의 모티프는 과거 서구 범죄물에서 흔히 쓰이던 장치이기도 했다. 요즘 독자라면 불편함을 느낄 여지가 있다.

몇몇 죽음은 개연성 면에서 조금 급하게 처리된 듯한 인상이 남기도 했다. 그래서 ‘마침표까지 모든 것이 꽉 찬 작품’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개가 신선했고,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힘이 있다. 장르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한 번쯤 몰입해 읽기 좋은 작품이다.


8. 『이 중 하나는 거짓말』 – 김애란


김애란의 작품은 예전에 『달려라 아비』를 읽어본 것이 전부였다. 그때 재미있게 읽었다는 인상만 남아 있었다. 작년에 자주 가던 서점마다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이 전면에 비치되어 있었고 서점 주인도 추천했지만, 아이들이 주인공인 소설에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아 그대로 지나쳤다. 이번 ‘베스트셀러 소설 읽기’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 책과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기구한 사연은 충분히 흥미를 끌었고, 약간의 판타지가 섞인 능력 설정도 의외로 재미있었다. 그러나 읽는 내내 “이런 성장 서사는 이제 조금 멀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솔직히 들었다.

청소년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기 어려워진 나이도 한몫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 만난 여러 소설들이 대체로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발버둥치는 인물들’을 중심에 두고 있어서, 어느 순간
“또 이런 이야기인가…” 하는 삐딱한 마음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비슷한 방식으로 그려지는 ‘아버지 캐릭터’가 놓여 있다.

사업 실패로 인한 가족 해체를 그리는 문학적 시선이 다른 방식으로도 확장될 수는 없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적어도 가족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여성 작가들이 치열하게 쓰고 여성 독자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하나의 ‘세계관’이 있는 듯했다. 웹툰의 로맨스 판타지에 고유한 결이 있는 것처럼, 어떤 고정된 계보가 느껴진달까.

그래도 도마뱀 용식이와 지우의 소소한 웹툰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다. 두 인물을 그런 매개로 자연스럽게 엮어낸 구성은 신선했다. 전체적으로 소재는 요즘스러웠고, 정서는 옛 감성을 품고 있었다.


9.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한때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너무 좋아해 여기저기 추천하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꽤 시간이 흐른 뒤 전자책으로 다시 읽었을 때, “예전엔 더 촘촘하게 느껴졌는데…?”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야기의 연결이 곳곳에서 조금 무리하게 느껴졌고,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의 감동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구조라는 인상도 강했다. 다소의 억지스러움이 몇 방울의 눈물과 교환되며, 책을 덮을 때 “좋았다”라고 말하게 되는 작품. 명절에 온 가족이 함께 보는 감동 영화나, 번화가에서 자주 공연하는 시즌제 연극 같은 느낌이랄까.

사실 『불편한 편의점』도 읽을까 말까 오래 망설였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니까… 도전해 보기로 했다.

요즘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호명하고, 그들에게 위로와 웃음을 건네고, 갈등의 해법까지 제시하는 구조는 확실히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다만 사회구조적 문제의 해법이 유튜브 쇼츠 영상처럼 ‘간단·즉시효과!’의 방식으로 제시될 때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개인적 취향이지만, 나는 제목에서 ‘형용사 + 장소’ 조합을 보면 조금 경계하게 된다. 어쩌고 저쩌고한 백화점, 편의점, 병원, 서점… 그런 제목을 보면 자연스레 ‘나미야 잡화점의 변주곡’ 같은 느낌일까 걱정이 되고, 실제로 읽어보니 완전히 틀린 예감만은 아니었다.

나의 독서 목적과는 조금 다른 방향을 향해 쓰인 작품. 굳이 2편까지 이어 읽을 필요는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서 열흘간 이어진 ‘2024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소설 읽기’를 마친다.
대한민국 곳곳의 소설 애호가들이 선택한 책들을 읽고 난 뒤 떠오른 한 줄 평.

“나는 베스트셀러와는 조금 취향이 다른 독자인 것 같다.”

반짝이는 단편들이 분명 있었지만, 두 번, 세 번 다시 펼치고 싶을 만큼 가까워진 작품은 없었다.

밤을 새워가며 책을 읽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가끔은 침대에 누워도 손을 놓기 싫은 이야기를 만난다. 그런 작품들과 어떻게 조우했는지 떠올려보면 대개 우연에 가까웠다. 누군가 추천했거나, 제목이 마음에 들어 펼쳤거나.

확실한 건 하나.
이제는 내가 좋아할 책을 찾아내는 나만의 방식이 더 필요하다는 것. 이번 베스트셀러 읽기는 그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니 이제 다시, 내가 오래 사랑해온 소수자 문학의 세계로 조용히 돌아가려 한다. 그곳에서야말로 무엇을 읽어도 ‘나답게’ 읽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 이번 리스트에서 건너뛴 책들 기록


한강의 작품을 제외하고,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은 다음과 같다.


오래된 베스트셀러들
양귀자 『모순』,『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황석영 『철도원 삼대』
김유정 『종의 기원』


애초에 거른 책들
김호연 『나의 돈키호테』,『불편한 편의점 2』
윤정은 『메리골드 마음 사진관』 / 『세탁소』
이미예 『달러구트 꿈 백화점』


끝내 도서관에서 못 구한 책들
김동식 『회색 인간』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정대건 『급류』


읽다가 그냥 포기한 책
백희성 『빛이 이끄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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