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소설 읽기 1

by 선우비

홍예당은 퀴어, 소수자, 페미니즘처럼 아직 사회에서 충분히 귀 기울여 듣지 못한 목소리들의 책을 주로 다루는 서점이다. 갈 때마다 한 권씩 집어 들다 보니, 어느새 내 독서는 홍예당 서가 안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역 창비서점에서 성해나의 『혼모노』를 발견했고,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오랜만에 베스트셀러 소설이 가진 힘을 다시금 실감한 순간이었다. 묵직한 주제를 신선하게 풀어내면서도, 지금의 공기를 정교하게 포착한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소수자로 살다 보면 소수자만 만나게 되고, 시선의 폭도 줄어드는 것 같아.”

그런 자각이 들어 이번 달은 ‘베스트셀러 소설을 읽는 달’로 정했다. 모두 사서 보기엔 부담이 있으니 도서관부터 찾았는데, 인기 있는 책들은 하나같이 대출 중이었다. 결국 해를 넘긴 2024년 베스트셀러 목록을 훑어보고, (상위권은 대부분 한강의 책이라 뒤로 미뤄두고) 눈에 들어오는 책부터 읽으며 감상을 남기기로 했다.


1. 『파친코』 – 이민진(인플루엔셜 버전)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었다. 멋지게 등장하고, 제 역할을 마치면 조용히 물러나는 모습까지도 자연스러워 마치 미드 속 캐릭터들을 보는 듯했다. 한국 드라마였다면 훨씬 더 감정선을 강조했을 텐데, 바로 그 절제가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었다.

교포 작가라서인지, 슬프고 황막한 사건을 서술할 때에도 바탕에는 늘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잔잔하게 깔려 있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도 느끼듯, 고국의 독자를 의식하는 세심함과, 그와 동시에 묵직한 자긍심과 연민이 공존한다.

『시선으로부터,』 『밝은 밤』처럼 역사 속에서 ‘그저 살아남은 개인들’을 바라보는 계보 안에 놓이면서도, 『파친코』는 한층 더 역동적인 방식으로 그 서사를 펼쳐 보인다.

오사카의 게이바에서 재일교포 3세 게이와 두 시간 넘게 술을 마신 적이 있다. 한류 이야기만 잔뜩하고, 정작 그들의 세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어 묻지 못했었다. 이 소설을 통해 그 복잡한 배경을 살짝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다음에 그분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파친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2. 『파과』 – 구병모 장편소설


구병모의 소설은 『아가미』 이후 두 번째였다. 『아가미』에서 문장 세공의 힘에 매료되었는데, 『파과』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유려한 만연체와 낯선 단어들은 사전을 곁에 두게 만들었고,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이미지들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소설의 본질을 ‘이야기의 맛’이라고 한다면, 구병모는 이야기의 틀 자체를 아름답게 빚어내는 작가다. 한국 문학계에서 이런 결의 작가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이런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독자층의 폭을 보여주는 듯했다.

『파과』의 세계는 현실과 환상이 기묘하게 맞물린다. 그 여운이 오래 남았다.

내친김에 넷플릭스에서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도 보았다. 소설만큼 촘촘한 인과관계를 재현하진 못했지만, 주인공의 매력을 극대화한 점은 인상적이었다.


3. 『칵테일, 러브, 좀비』 – 조예은 소설집


목에 가시를 박은 채 살아가는 여자의 이야기 「초대」,
자신의 외형과 이름을 잃어버린 물귀신 이야기 「습지의 사랑」,
아빠가 좀비가 되어버렸지만 차마 외면할 수 없는 가족의 이야기 「칵테일, 러브, 좀비」,
어머니를 구하려다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아들의 이야기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오랜만에 반전의 재미가 살아 있는 단편들을 읽어 행복했다. 한때 나도 이런 류의 소설을 무척 즐겼다. ‘어떻게 하면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할까?’라는 장난기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페미니즘 같은 시대적 감각을 자연스레 녹여 이야기를 더 맛있게 요리했다. 유머와 통찰의 균형도 탁월했다. 다음 책인 『트로피컬 나이트』도 읽어보고 싶다.


4. 『영원한 천국』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의 작품은 예전에 한 번 중도 포기한 적이 있었다. 내 독서 리듬과 잘 맞지 않는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다시 도전해보았다.

초반엔 복잡한 구성 때문에 조금 천천히 읽혔고, 장르적 요소가 있어도 확실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분위기라 낯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사 곳곳에 묘하게 끌리는 문장들이 있어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 요즘 작가들은 장르문학이라도 문학적 밀도를 놓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도 그런 흐름 안에 있었다.

‘프로그램 안에서 영원히 살아간다’는 설정은 흔할 수 있지만, 작가는 그 틀 안에 영리한 장치를 촘촘히 배치해두었다. 끝에 가면 감탄스러운 순간이 여러 번 찾아온다. 왜 많은 독자들이 정유정을 이야기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다만, 주인공 경주와 나는 끝내 감정의 호흡을 완전히 함께하지는 못했다. 그의 고통에는 충분히 연민이 갔지만, 인물과의 정서적 거리는 끝까지 조금 남았다.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냉기가 작품의 품격이자 한계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추천하기보다는, ‘이 작가의 서사 방식이 잘 맞는 독자라면 분명 매력을 느낄 것’이라는 정도로 소개하고 싶다.

내가 아는 한, SF라는 장르는 주인공과의 ‘정서적 동행’이 중요하다. 그래야 공상과학적 설정을 설득력 있게 따라갈 수 있다.


5. 『구의 증명』 – 최진영


시작부터 연인의 죽음과 식인이 등장한다. 마치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플라워의 〈Endless〉처럼.
제목만 보고는 수학자의 이야기일까, 이름만 보고 남성 작가일까 생각했지만, 몇 장 만에 여성 작가가 쓴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평소 자주 읽지 않는 조합이기도 했다.

어릴 적 로맨스 소설을 지나치게 많이 읽었던 탓인지, 요즘은 잘 손이 가지 않는 편이다. 엘리자베스 베넷과 마크 다아시 같은 이야기에 절여져서인지 그외의 이성애자 로맨스에 조금 심드렁한 채로 살고 있다.

주인공을 부르는 방식(구니, 담이니)부터 특유의 감성적 뉘앙스가 있어 처음엔 내가 익숙한 문체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다 보면, 왜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을 좋아했는지 보여주는 문장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다 읽고 나서도 이 작품의 인기가 폭넓은 이유를 완전히 해독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느껴졌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마주하는 현실, 어떤 사랑도 가벼운 힘으로 밀어버릴 만큼 냉혹한 삶의 조건들이 가져오는 비극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는 분명했다. 감정의 강도가 높아 가끔 드라마틱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작품의 분위기를 만드는 요소였다.


소수자의 언어가 아닌, 다수자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봐서 베스트셀러가 된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한국 문학의 밑바탕에는 소수자의 시선이 은근히 자리하고 있었다.

요즘 시대의 공기가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한국 문학이 그런 기질을 품고 있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베스트셀러들을 조금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2탄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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