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에 미친 자가 추천한 소설 읽기 4
소설 속 남성 동성애적 기운을, 비록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끝까지 착즙해서 즐기고 싶은 ‘BL에 미친 자’의 소설 목록 읽기를 진행 중이다.
이번이 4번째 작품이다.
추천자로부터 '끝판왕'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던 작품이라 무척 기대가 되었다.
동급생 – 프레드 울만
열여섯 살 소년 둘이 나누는 ‘세상에 단 둘만의 우정’과 역사적 격변이 맞물린다는 점에서, 지난번 소개한 《연을 쫓는 아이》와 어딘가 닮아 있다. 두 작품 모두 거대한 폭력을 배경으로 삼고 있어, 읽는 감각 또한 유난히 가까워진다.
히틀러가 등장하기 직전의 독일 슈투드가르트에서 살고 있는 중산층 유대인 의사의 아들 한스 슈바르츠와, 왕들과 인사하는 것이 일상인 백작의 아들 콘라딘 폰 호엔펠츠. 한스의 시선 속에서 그는 마치 로판 속 남자 주인공처럼 여겨진다.
한스는 수줍음과 자존심, 그리고 상처받을까 두려운 마음으로 콘라딘을 바라본다.
“프리드리히 폰 호엔슈타우펜이 안노 폰 호엔펠츠에게 보석으로 치장한 손을 내밀었을 때 내 조상들은 유럽의 유대인 거주 지역에서 웅크리고 있지 않았던가?
유대인 의사의 아들, 랍비의 손자이자 증손자이며 하찮은 상인과 가축 장수의 혈통인 내가, 이름만으로도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그 금발 소년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한스는 평소, 오로지 서로에게 충실한, 로맨틱한 우정만이 진짜 우정의 조건이라고 믿는 시인 지망생이다. 그래서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
‘미래가 이미 정해진’ 반 친구들과는 달리, 콘라딘은 자신의 친구가 되기에 마땅한 존재라고 판단한 그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집요하게 콘라딘을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려 한다. 선생님 질문에 손을 번쩍 들며 나서서 대답하고, 체육 시간에도 지옥에서 가져온 고문 기구(평행봉)에 기꺼이 실험체로 지원한다.
그래도 콘라딘의 시선을 끌지 못하자 결국 최후의 수단을 동원한다.
자신이 모으고 있는 '로마시대의 희귀한 동전'을 학교에 가져와 굳이 현미경으로 관찰한다.
"나도 그 동점 좀 볼 수 있을까?"
역시 덕후력으로 꼬드기는 게 최고지.
그의 영리한 작전은 결국 성공한다.
둘은 정말로 ‘오로지 둘만의’ 친구가 된다.
영원할 것처럼 보이던 이 우정을 갈라놓는 것은, 예상할 수 있듯 불운한 시대다. 히틀러의 등장.
읽는 내내 속으로 되뇌게 된다.
“안 돼… 제발…”
내가 보기에 이들의 안타까운 우정은 사실 사랑과 거의 다르지 않다. 지금처럼 열여섯 살에 사랑이니 섹스니 모든 것을 알아버리는 시대와 달리, 그 시절의 소년들에게 여성은 그저 신비로운 존재로만 그려진다. 우정은 사랑 이상의 감정으로 추앙받곤 했다. 하물며 세상에서 오직 나를 이해해 줄 유일한 친구라니.
퀴어력 가득이라고 외치고 싶지만… 이후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차마 만점을 줄 수는 없겠다.
그래서 8점!
이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다.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잘 쓴 첫 문장’ 목록에 반드시 올려두고 싶다.
하지만 이 소설의 진짜 백미는 마지막 한 줄의 문장이다.
이광수의 《윤광호》 마지막 문장 이후로, 이렇게 충격적인 한 줄을 만난 적이 없다. 버튼이 눌린 것처럼 눈물이 흐른다.
그 한 줄로 인해 소설 전체가 완전히 다시 읽히고, 특히 첫 문장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의미심장해진다.
내가 집어든 판본에는 초반에 서로 다른 작가가 쓴 두 개의 서문이 실려 있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절대 서문부터 읽지 않는다.
이번에도, 어찌나 다행이었는지.
덕분에 소설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혹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제발, 절대 서문부터 읽지 마시길.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이런 게 우정이었던 시절의 낭만을 이제는 느낄 수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