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에 미친 자가 추천한 소설 읽기 3
연을 쫓는 아이 – 할레드 호세이니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이 프로젝트하길 정말 잘했다.”
‘퀴어적 기운이 넘실댄다’는 추천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이 소설을 집어 들지 않았을 것이다. 딱 그런 책이다.
전 세계에는 이름만 들어도 곧장 ‘고통’이 떠오르는 나라들이 있다. 이디 아민 시대의 우간다, 기아의 상징처럼 굳어버린 에티오피아, 국제 정치의 이해관계 속에서 내전으로 초토화된 아프가니스탄과 유고슬라비아, 지금도 인종청소가 자행되는 팔레스타인.
이 가운데 내 인문학적 세계 바깥에 가장 오래 머물러 있던 나라는 아프가니스탄이었다. 소련의 침공, 끝나지 않는 내전, 9·11 테러의 배후라는 굵직한 사건들을 뉴스로 수없이 접했음에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그 나라가 지도 어디쯤에 붙어 있는지도 선뜻 떠올리지 못했다.
세상에는 내가 전혀 모르는 나라가 얼마나 많을까. 문학은 그런 나라를, 몸 하나 움직이지 않고도 여행하게 만든다. 이 소설은 새삼스럽게 문학의 즐거움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도 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주인공 아미르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는다. 그는 자신이 어머니의 목숨을 빼앗았다는 죄책감 속에서 성장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버지 바바가 자신을 그렇게 차갑게 대할 리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바바처럼 힘세지도, 용감하지도, 또래 남자아이들이 열광하는 축구를 잘하지도 못하는 점 역시 아버지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이유였을 것이다.
아미르의 집에는 커다란 저택을 돌보는 하인 알리와 그의 아들 하산이 함께 산다. 하산은 아미르보다 한 살 어리지만 오히려 더 듬직한 형처럼 보이는 소년이다. 하산 역시 태어나자마자, 이번에는 불과 일주일 만에 어머니에게 버림받는다.
두 아이는 같은 보모의 젖을 먹고 자랐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는 곧 형제의 의미다. 바바는 하인 알리의 아들을 자기 아들처럼 대하고, 아미르 또한 하산을 형제처럼 여긴다. 그러나 그 ‘똑같음’이 오히려 아미르에게는 질투의 이유가 된다. 하산이야말로 기질이나 외모, 행동 모두 바바가 원하던 아들의 모습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아미르와 하산 사이의 지나치게 끈끈한 우정과 질투는 결국 이야기를 비극으로 몰아가는 씨앗이 된다.
아직 어린 두 소년 사이의 미묘한 감정 교류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독자의 마음도 괜히 말랑해진다. 1970년대 이슬람 국가의 이국적인 풍경, 연 싸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년들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쯤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곧 아프가니스탄을 강타하는 잔혹한 현대사가 밀려오고, 그들의 이야기는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고통과 속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읽는 쪽은 저절로 알라의 이름을 떠올리게 되고, 끝까지 무사하길 바라는 기도의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게 된다.
이 소설에는 동성애라 부를 만한 장면도 등장한다. 다만 그것은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이슬람 사회가 묘사할 수 있는 가장 악랄한 형태로 그려진다.
왜 특정 종교적 세계관이 동성애를 이토록 완강하게 악마화하고 싶어 하는지는 솔직히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의 매력이 심각하게 훼손되지는 않는다. 나는 작가의 삐뚤어진 동성애관을 그냥 통 크게 용서하기로 했고, 악당을 욕해가며 읽었다.
아미르와 하산의 ‘퀴어력’을 점수로 매긴다는 것 자체가 이미 슬픈 일이라, 평점은 남기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