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 오스씨와 나는 구청에 혼인신고서를 냈고,
“너넨 결혼 못 해!”라는 불수리 통지서를 받았다.
그 이야기다.
작년 2024년 10월, 한국에 사는 11쌍의 커플이 각자의 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 구청은 동성결혼은 불가하다며 일제히 불수리 통지서를 내주었다. 커플들은 대리인단을 통해 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동성결혼을 가로막는 현행법이 위헌이니, 법을 고치라는 요구였다.
해가 바뀐 뒤, 앞선 소송의 주체들이 모두 수도권 거주자라는 점이 못내 아쉬웠던 동성결혼 법제화 단체 <모두의 결혼>은 소송을 전국 단위로 확장하기로 했다. 지방에 사는 커플들을 모집했고, 부산에서는 우리에게 연락이 왔다.
“같이 해볼래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오스씨에게 결정을 토스했다.
“할래요?”
표정이 애매했다.
“혹시 우리 신상이 노출되나요?”
우린 가족 외엔 커밍아웃을 하지 않아 조심해야 할 영역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다.
“안 됩니다.”
이미 작년부터 소송을 경험한 사람이기에 빈말은 아니었다.
그 말을 믿고 “그렇다면... 해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게 올 초의 일이었다.
한 해가 끝나가고, 실제로 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할 시기가 다가왔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하겠다고 한 거지?’
소송에 참여해야 할 ‘좋은 이유’가 수없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사실 서류 한 장을 내는 일일 뿐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 묵직한 돌덩이가 얹힌 느낌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혹시라도 벌어질 불미스러운 일에 대비해, 소송에 참여한 변호사와 함께 구청에 가기로 했는데도 불안은 남아 있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혼인신고를 하려면 신고서를 구청에서 받아와야 했다.
먼저 신고서를 가지러 '나 혼자' 구청에 갔다.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까지 단단히 쓴 채였다.
담당자는 자리에 없었고, 대신 다른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혼인신고서 작성하고 싶은데요.”
그 순간 직원의 시선이 내 희끗희끗한 머리에 잠시 머물렀다.
“혹시 본인이 혼인하시는 건가요?”
“네. 그런데 동성결혼이에요.”
나도 모르게 그냥 튀어나왔다.
“헌법소송에 필요한 불수리 통지서를 받으려고요.”
직원은 놀라운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구나. 그럼 일단 이거 가져가셔서 작성하시고요. 오시기 전에 전화 한 번 하고 오세요. 증인 서명받는 것 잊지 마시고요.”
꽤 친절한 응대였다.
서류 종이를 들고 집에 돌아와 보니,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려면 두 명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
동네 퀴어모임 친구들인 휴고와 쥐야다가 흔쾌히 증인이 되겠다고 나섰다.
“영광이에요.”
자신들의 신상 정보를 서류에 쭉쭉 적으며 웃었다.
“우리가 더 영광이야.”
수영구 퀴어모임으로 뭉치기 시작한 지 벌써 3년째.
언젠가부터 우리는 단순한 동네 주민을 넘어서 많은 것들을 함께 하는 이웃사촌이 되어 있었다.
덕담을 주고받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변호사와 통화하며 계획도 세웠다.
“원래 혼인신고는 법원의 일이고, 구청은 대리하는 거예요. 직원들도 이런 일은 처음이어서 거절 절차를 잘 모를 수 있어요. 제가 미리 전화해서 불수리 통지서 작성 방법을 안내해 둘게요.”
작년에 소송에 참여한 커플 중 한 팀은, 직원이 아무것도 몰라 두 시간 넘게 구청에서 대기하며 온갖 눈치를 봐야 했단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구청 업무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변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원래 가기로 한 구청의 담당자가 오늘 출근을 안 했대요. 오늘만 빼고 다른 날은 가능하다고 하는데, 날짜를 옮길까요? 아니면 다른 구청으로 갈까요?”
오스씨의 낮 시간을 어렵게 빼놓은 터라, 우리는 다른 구청으로 가기로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스크를 꺼내 들고 “쓸래?” 하고 묻자, 오스씨가 말했다.
“쓰지 말자.”
꽤나 덤덤한 말투였다.
우리 동네 구청이 아니라서인지, 발걸음도 더 가벼워 보였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민원실에 앉아 있는데, 홍예당 전인과 모리, 비타가 꽃다발을 들고 들어왔다. 이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오정진 교수님, 그리고 동성혼 법제화에 관심이 많은 부산 로펌 소속 변호사들도 모습을 보였다. 모리만 올 줄 알았는데, 예상치 않게 많은 축하객이 모였다.
"부산에서 진행되는 동성혼 소송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교육 차원에서 왔어요."
변호사의 말에 조금 힘이 났다.
그래, 서류를 작성하는 건 우리지만, 사실상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가 모인 일이다. 잘해보자!
마지막으로 우리 담당 변호사가 도착했고, 함께 창구로 갔다.
이번에도 땀을 한 바가지 흘릴 걸 각오하고 손수건을 꽉 쥐었는데, 의외로 편안했다. 일행이 워낙 많다 보니 든든함을 넘어 철옹성 같은 안정감이 느껴졌다. 사전 조율이 잘 되어 있어 창구 앞에 앉아 있던 시간은 고작 5분 남짓이었다.
마침내 불수리 통지서를 받았다.
우리를 거부한다는 문서인데,
그걸 무사히 받아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지는 아이러니라니.
우리는 민원실 입구에 마련된 결혼축하 포토존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중년 남자 둘이 꽃다발을 들고 그 자리에 앉아 있으니, 지나가던 민원인들이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뭔가 해냈다는 감각 때문이었을까. 이미 간이 딴딴해진 느낌이었다.
이후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눴다. 교수님과 변호사들은 대부분 초면이라 묻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이 넘쳐났다. 일정이 있는 친구들이 먼저 빠지고 난 뒤에는 술집으로 이동했다. 우리를 포함해 모두가 생전 처음 해보는 일들에 잔뜩 흥분해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이렇게 많은 이성애자들이 퀴어 인권을 위해 함께 싸워줄 줄은 몰랐다고 하자, 부산대 교수님이 한 번 웃으며 말했다.
“알고 보면 이런 일들을 함께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앞으로 저희랑 같이 하시면 다 만나게 될 거예요.”
긴장으로 흠뻑 젖은 몸으로 녹다운된 채 집에 돌아올 줄 알았는데,
집에 돌아와도 쉽게 잠들 수 없을 만큼 들떠 버렸다.
벌써 많은 분들에게 축하를 받았지만, 사실 우리 둘이서 해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프레임 밖에 훨씬 많은 얼굴이 겹쳐져 있다.
모두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