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했으니 일단 스키부터 3
아침 기온은 영상 3도. 슬로프로 나가 보니 예상대로 길목의 눈이 대부분 녹아 있었다. 그래도 레드, 뉴레드, 블루를 차례로 탔다. 시작부터 상급 코스라니. 실력이 늘어난 건지, 겁이 조금 무뎌진 건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리프트에서 특이한 스키와 폴을 든 사람을 만났다.
폴이 눈에 띄게 멋져 보여 말을 걸었더니 대나무로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단순히 모양만 멋진 것이 아니었다. 속을 파 길이 조절도 가능하다고 했다. 공예대전에 출품해 상까지 받았다고 했다.
대나무가 카본보다 세 배는 강하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주며 스키 장비의 세계를 짧게 강의해 주었다.
그대로 헤어지는 줄 알았는데 다음 리프트에서도 또 나란히 앉았다.
이번에는 스키 이야기가 시작됐다.
우리가 타는 카빙스키보다 폭이 넓고 가벼운 올마운틴 스키라는 장르가 있다고 했다.
“내 스키 두 짝이 그쪽 스키 한 짝보다 가벼울 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오스씨 눈이 반짝였다. 며칠째 숙소에서 리프트까지 스키를 메고 다니느라 어깨에 멍이 들어 있던 터였다. 좋은 스키는 무거워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 믿음이 조금 흔들렸다.
우리 스키 인생에 ‘가벼움’이라는 선택지가 생겼다.
리프트에서 내려 헤어지며 그에게 속으로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고수님.
그는 스키 30년, 검도 30년을 했다고 했다.
하나의 일을 그렇게 오래 붙들고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잠깐 생각했다. 나는 깊게 파는 사람은 아니다. 얕고 넓게,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여백을 남겨 두는 쪽이 더 편하다. 아마 그래서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한 달씩 살아보는 일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와 헤어진 뒤 레인보우 슬로프로 향했다.
발왕산 정상에서 시작하는 최상급 코스다. 얼마 전에서야 개방됐다고 했다.
레인보우4는 비교적 완만했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 코스였던 레인보우1은 이야기가 달랐다. 설질도 각도도 만만치 않았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눈 위에 군데군데 얼음 덩어리가 박혀 있었다.
내려오는 동안 다리가 계속 떨렸다.
오스씨는 처음부터 무섭다며 패스했다.
한 번 타고 내려오니 다리가 다 풀렸다. 이걸로 오전 스키는 끝.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워터파크로 갔다.
겨울 리조트에는 늘 두 가지가 붙어 다닌다. 스키와 온천이다. 일본 스키 리조트들이 그 조합을 잘 활용한다. 국내에서는 온천 대신 워터파크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사실 이런 시설을 나는 꽤 좋아한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뒤 우리가 좋아하는 유수풀로 갔다. 튜브에 기대 둥둥 떠 있다가 한참 뒤에야 안경이 사라진 걸 알았다.
놀람. 황당. 당황. 그리고 체념.
오래 쓴 안경이라 이쯤에서 놓아줄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스씨는 끝까지 찾아보자고 했다. 물속을 계속 들여다보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통통한 아이 하나가 나타났다.
“심심한데 찾는 거 도와주면 안 돼요?”
뜨거운 온천에 들어가기는 싫고, 그렇다고 유아풀에서 놀기에는 조금 커 보였다. 남의 아이에게 일을 시킬 수는 없어 괜찮다고 했지만, 아이는 떠나지 않았다. 물속을 들여다보며 자기만의 탐정놀이를 계속했다.
꼭 애니메이션 UP에 나오는 러셀 같은 아이였다.
결국 그 자리에서는 찾지 못하고 파도풀로 이동했다. 예비 안경이 있으니 괜찮다고 오스씨를 달랬다.
잠시 뒤 라이프가드가 다가와 안경을 찾았다고 했다.
유수풀 어딘가에 분실물이 모이는 구역이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런데 되찾고 나니 갑자기 더없이 소중한 물건처럼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그 안경은 오스씨가 백화점에서 처음 사주었던 것이었다.
새 안경 값을 아꼈다며 읍내 ‘단골집’에서 오삼불고기를 먹었다.
오징어가 넉넉하게 들어 있었지만 예전만큼 매운맛이 반갑지는 않았다. 입맛도 나이와 함께 조금씩 바뀌는 모양이다.
숙소로 돌아와 잠깐 눕는다는 것이 그대로 잠들었다. 새벽에 깨어 이 글을 쓰고 있다.
며칠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모르겠다.
아침과 저녁에는 스키를 타고 낮에는 글을 쓰거나 논다.
사치라고 하기엔 검소하고, 일상이라고 하기엔 조금 비현실적이다.
겨울을 보내기 가장 좋은 방법인 건 분명하다.
1월 16일, 금요일
슬로프가 열리자마자 나가 막 다져놓은 눈을 밟았다. 최상급 슬로프인 레드부터 시작했다. 신설일 때는 인기 코스를 먼저 타두는 게 맞다.
하지만 전날 따뜻했던 공기가 설면을 단단하게 굳혀 놓았다. 생각만큼 즐겁지는 않았다.
요즘 숏턴을 연습 중이다.
유튜브 속 강사는 눈 위에서 춤을 추듯 가볍게 돈다. 나는 제자리에서 버둥거린다.
강습을 받아야 할까.
오기 전 ‘숨고’ 앱에서 강사를 몇 명 찾아봤지만 몸이 조금 풀리면 연락하자고 미뤄둔 지 벌써 일주일이다. 배움은 늘 다음으로 밀린다. 그 습관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점심에 와인을 한 잔 마시고 오늘 스키는 여기서 접기로 했다. 더운 날씨와 단단한 설질이 핑계가 됐다.
오후에는 리조트 안에 있는 ‘애니포레’에 갔다. 미니 동물농장 같은 곳이다. 알파카와 토끼, 염소에게 먹이를 주었다. 동물의 혀가 손바닥에 닿는 순간이 묘하게 기분 좋다.
우리 집 고양이는 나를 잘 핥아주지 않아서일까.
이날도 읍내 카페에 갔다.
주인아주머니가 내가 TV에 나오는 유명 문학가를 닮았다고 했다. 이름은 끝내 떠올리지 못하고 멋쩍게 웃었다.
아… 그… 왜 있잖아요…
요즘 내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다.
오스씨 보고는 일본인인 줄 알았다고 했다. 둘 다 선명하지 않은 칭찬이었다.
소설을 구상하다 알림음이 울렸다.
스키 전문 여행사에서 온 광고 메일이었다. 3월 파우더 스키 투어 광고였다. 색다르게도 강습이 포함되어 있었다.
재작년 하쿠바에서 파우더 설질에 허우적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다음에는 꼭 제대로 배워보자고 했었다.
“어때? 갈래?”
오스씨도 강습의 필요성에는 동의했다.
투어 담당자는 강사와 직접 통화를 해보라고 했다.
“그 정도 나이시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베테랑이라며 나이 든 분들도 많이 강습해 봤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마음이 더 기울었다.
“파우더나 올마운틴 스키를 준비하셔야 하는데, 한국에서도 타실 거면 올마운틴이 좋습니다.”
전날 리프트에서 만난 고수님 덕에 이미 쇼핑 목록에 올마운틴 스키가 올라가 있었다.
울고 싶을 때 뺨 맞은 격이었다.
강사는 자신이 홍보대사로 있는 브랜드 매장을 소개했고, 그렇게 연결된 스키숍 사장이 여러 모델을 추천해 주었다.
“천천히 고민해 보시고 결정되면 연락 주세요.”
한국 스키 시장은 여전히 카빙스키 중심이다.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수가 적으니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일단 고민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아마 결국 사게 될 것이다.
생각이 물건으로 이어지고, 물건이 다시 여행으로 이어진다.
새 아이템으로 새로운 문을 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오래된 방식이었다.
“올해는 그냥 스키에 몰입해 보자.”
오스씨의 은퇴 후 첫 번째 주제가 그렇게 정해졌다.
스키장에서 여든이 넘으면 곤돌라를 먼저 태워준다고 한다.
우리가 쫓기에는 그보다 좋은 목표도 없어 보였다.
이번 여행에서는 낯선 사람들과 말을 많이 섞었다.
대체로 또래거나 연상이다. 헬멧과 바라클라바에 얼굴은 가려져 있지만 목소리에서는 나이가 묻어난다.
나이 든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말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묻는 말에 다들 과할 정도로 성실하게 답해 준다.
누군가는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는 눈치이기도 하다.
나 역시 비슷하다.
나이 들수록 줄어드는 건 체력이 아니라 먼저 말을 건네는 사람의 수다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게이 스키 모임에도 가입했다.
게이들과 모여 남자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단톡방은 이미 친한 사람들끼리의 대화가 중심이었다. 내가 올린 글에는 반응이 거의 없었다.
스키장에 와서도 같이 타자는 말에 답이 없었다.
‘내 나이가 많아서일까.’
그들의 반응을 신경 쓰는 내가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대화 상대를 찾는 거지 구걸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말없이 모임을 탈퇴했다.
스키는 각자의 궤적으로 내려오는 스포츠다.
동호회의 활기가 그립지 않은 건 아니지만, 리프트에서 우연히 옆에 앉은 사람과 나누는 몇 마디도 충분히 즐겁다.
이 나이에 그 정도면 괜찮다.
어쨌든 내일도 스키는 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