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했으니 일단은 스키부터 10
스키복 주머니에는 늘 휴대용 휴지가 들어 있다. 리프트를 탈 때마다 쉬지 않고 코를 풀다 보니, 도대체 왜 이런지 궁금해 AI에게 물어봤다.
“냉기비염입니다.”
차가운 공기를 위협으로 착각해 코 점막이 반응하는 현상이라고 했다. 몇 가지 방법도 알려주었다. 그대로 해보니 확실히 덜했다.
AI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잠깐 생각했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옆자리에 ‘원로’라고 적힌 완장을 찬 할아버지가 앉았다. 그런 완장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나이 든 얼굴과 단단한 자세가 묘하게 잘 어울렸다.
그분의 친구도 인상적이었다. 찢어진 스키복을 노란 박스 테이프로 얼기설기 붙여 입고 있었다. 어쩐지 멋있었다. 기능과 세월이 뒤섞인 옷이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장면이었지만 그냥 눈에 담았다.
오스씨와 나도 언젠가 스키복이 해질 때까지 타다가 ‘원로’ 완장을 차게 될까. 그때쯤이면 냉기비염쯤은 노련하게 다스릴 수 있을까.
오전 스키를 마치고 곤돌라를 타고 ‘구름 담은 카페’에 갔다. 이 카페는 천천히 360도로 돈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풍경이 스스로 바뀐다.
밸리콘도에서 곤돌라를 두 번 갈아타고 올라가는 데 한 시간. 카페가 한 바퀴 도는 데 또 한 시간. 두 시간의 휴식이었다. 곤돌라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시즌권이 유난히 고맙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창밖으로 바뀌는 풍경을 따라갔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다른 세계가 계속 나타났다. 그래봤자 스키장 풍경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저녁에도 스키를 타러 나갔다가 한 시간 만에 돌아왔다. 하이원은 용평보다 슬로프가 길다. 한 번 내려오면 다리가 금세 풀려버린다. 이곳에서는 야간을 길게 탈 필요가 없다. 한 시간만 타도 하루가 충분히 채워진다.
아침에 토스트를 먹었는데 오스씨가 다시 속이 꽉 막힌 것 같다고 했다. 며칠 전 토했던 일이 있어 괜히 긴장됐다.
AI에게 물었다.
“며칠 전 토했던 그 노인 있잖아. 이번엔 토스트 먹었더니 속이 답답하대. 왜 그런 거야?”
“구토 후에는 위장이 예민해져 있습니다. 빵처럼 뻑뻑한 음식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이미 아는 상식인데도, AI가 말하니 괜히 더 권위가 생겼다. 바로 따르게 된다.
점심은 미역과 두부, 밥을 한꺼번에 넣어 죽처럼 끓였다. 오스씨의 이마에 주름이 가득 찼다. 평소 중국집 잡탕밥은 잘도 먹으면서 이런 형태의 꿀꿀이 죽은 질색 한다. 그는 양푼이비빔밥처럼 게걸스럽게 먹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음식들을 싫어한다.
예쁜 것만 먹는다.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그릇을 마음껏 살 수 있다. 저런 음식도 예쁜 그릇에 담으면 제법 우아해지니까.
억지로 떠서 먹는 것 같더니 어느새 그릇을 싹 비웠다. 이번에는 속이 편하다고 했다. 당분간 아침 메뉴는 이걸로 정했다. 은퇴 후 첫 식단 관리가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 걸까.
하이원에서는 야간 스키는 그만두고 대신 오전과 오후로 나눠 타기로 했다. 체력이 버틸지 걱정했지만 일본 원정을 위해서라도 하루를 통으로 타는 연습을 해두어야 했다.
스키를 마치고 강원랜드가 운영하는 카페 ‘운암정’에 갔다. 세트 메뉴는 보기 좋고 맛도 무난했다. 가격은 만만치 않은데 늘 사람이 많다. 우리처럼 ‘투숙객 할인’이라는 말에 끌려온 걸까.
카페에 앉아 밀린 여행기를 썼다. 연필을 자주 손에서 놓칠 만큼 졸음이 쏟아졌다. 하이원에 와서부터 묘하게 체력이 빨리 닳는다. 슬로프가 길어서일까, 아니면 새 스키 때문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스키를 타지 말자는 선택지는 아예 없다.
이제 스키를 타지 않으면 하루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저녁에는 강원랜드로 갔다. 카지노에는 흥미가 없어 입구에서 열리는 작은 뮤지컬 공연을 봤다. <위키드> 같은 유명 넘버도 부르고 창작 뮤지컬도 짧게 공연했다.
창작 작품의 내용이 묘했다. 서울로 떠나지 못한 청년들이 고향에 남아 평범하게 살아가며 그 삶도 괜찮다고 말하는 이야기였다.
꿈을 좇지 않아도 괜찮다고 설득하는 서사.
방탄소년단의 노래 ‘낙원’이 떠올랐다. 꿈이 없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노래다. 무대에서 그들이 그 말을 외칠 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그런데 그 메시지를 썰렁한 고한 읍내의 풍경 위에 얹어보니 조금 다른 의미가 되었다.
‘여기 남아도 괜찮다’는 말이 위로처럼 들리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선택지가 사라진 사람에게 건네는 체념처럼 느껴졌다.
내가 너무 꼬아서 받아들이는 걸까. 아니면 장소가 메시지를 바꾸는 걸까.
공연을 보고 호텔 안을 산책하다가 거대한 ‘하이하우’를 만났다. 한때는 스키장 곳곳에 붙어 있던 마스코트였는데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래전에 하이하우 인형을 샀다. 사실 이번 여행에도 데려왔다. 밤에는 그걸 안고 잔다. 이런 욕망도 어릴 때 못 누린 몫이라고 해두자.
예전의 강원랜드는 더 요란했다. 호텔 지하에는 작은 놀이기구도 있었고 러시아 예술단 공연도 열렸다. 반면 로비에는 거의 노숙인에 가까운 차림으로 서성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방금 인생을 모두 잃고 나온 듯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런 사람을 딱 한 명 보았다.
사라진 걸까.
치워진 걸까.
나는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꽤 많은 유혹에 넘어가며 살아왔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술, 담배, 도박, 마약, 섹스 중독이 아닌 것만으로도 이번 생은 절반쯤 성공이 아닐까 싶어졌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넌 이미 다른 것에 단단히 중독되어 있다고.
이를테면 스키라든지.
그렇다면 나쁘지 않다.
눈 위에서 미끄러지는 일로 망가지는 인생이라면, 그 정도는 꽤 괜찮은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