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천봉에서 족발까지

은퇴했으니 일단은 스키부터 16

by 선우비

2월 12일 목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편의점에서 사 온 삼각김밥으로 식사를 마치고 설천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오늘은 6시간권을 끊었다.

어제 안개 때문에 가지 못했던 설천봉 정상에 올랐다. 날씨는 맑았고 어제 내린 눈도 잘 정설 돼 설질이 좋았다. 몇 년째 들어가지 못했던 상급 코스들을 쉬지 않고 탔다. 무릎에서 위험 신호를 보내왔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여기를 오겠나 싶어 멈출 수가 없었다.

점심은 옛날 돈가스를 먹었다. 이런 스타일의 돈가스는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나는 원래 돈가스나 치킨 같은 튀긴 음식을 무척 좋아하지만 사실상 먹을 기회가 거의 없다. 왜인지 요즘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특히 치킨 같은 배달 음식은 구경한 지도 오래다.

“진짜 왜 그럴까? 너 배달음식 좋아하잖아. 짜장면, 치킨, 피자, 족발, 보쌈…”

“몰라. 음식을 배달해서 먹는다는 사고회로가 나에게 없어진 것 같아.”

오스씨는 직장에서 툭하면 배달을 시켜 먹는다.

“예전에는 진짜 잘 먹었는데… 이제는 한두 개 먹을 때는 너무 맛있는데 그 이상은 못 먹겠어.”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안 먹다 보니 입맛도 조금씩 바뀌는 모양이다.

오랜만에 먹은 옛날 돈가스는 맛있었다.


평일 무주는 용평이나 하이원과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나이 든 사람이 잘 안보였다. 이유가 뭘까 잠깐 궁금해졌다. 생각해 보니 스키장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르다.용평은 스키어가 많고, 하이원은 보더가 많고, 무주는 젊은이와 관광객이 많다. 국립공원이어서일까. 눈꽃도 다른 곳보다 더 빼곡하고 모양이 다양하다.

설천봉 레스토랑은 정말 오랜만에 들렀는데 기억보다 훨씬 넓었다. 이번에는 차만 마셨지만 내일은 여기서 식사를 해봐야겠다. 다른 스키장에는 없는 부대찌개를 팔고 있었다.

6시간권을 30분 남기고 오늘의 스키를 마쳤다. 다리가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5시간권이 있다면 그걸 끊고 싶다.


점심에 오스씨와 배달음식 이야기를 했던 게 생각나 갑자기 족발이 먹고 싶어졌다. 족발 하면 배달이지. 조금 떨어진 곳에 족발집이 있었다. 중간 사이즈를 주문했다. 노크 소리에 문을 열었더니 배달원이 서 있었다.

“배달비 5천 원 추가입니다.”

시킬 때는 그런 말이 없었다. 순간 짜증이 올라왔지만 그냥 이 집 방식이겠거니 했다.

배달앱으로 시키면 배달비가 무료인데 직접 전화로 주문했더니 오히려 돈을 더 내게 됐다. 사실 이 숙소도 예약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곳이었다. 플랫폼으로 예약했더라면 조식이니 뭐니 실랑이를 벌일 일도 없었을 텐데 전화로 예약하는 바람에 일이 조금 꼬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상인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지역 분위기를 모르는 여행자라면 검증된 시스템에 기대는 편이 낫다. 다음부터는 그냥 플랫폼을 이용하기로 했다.

배달된 족발은 맛있었다. 음식만큼은 이 동네가 참 괜찮다. 제법 두툼한 용기에 담겨 있어 양도 많아 보였다. 위에 깔린 족발을 먹고 나니 그 밑에는 부스러기와 거대한 족발뼈가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크기였다.

아,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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