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했으니 일단은 스키부터 18
국내 스키장에서의 스키는, 잘 다듬어진 길을 달리는 일이다. 슬로프 가장자리는 붉은 그물로 막혀 있고, 새벽이면 스노우캣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눈은 고르게 눌린다. 마치 누군가 밤새 빗질해 놓은 것처럼, 결이 곱다. 그 위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일은 어렵지 않다. 속도를 즐기면 된다.
일본에 가면 그 질서가 무너진다.
눈은 정리되어 있지 않고, 내린 그대로 쌓여 있다. 어디까지가 슬로프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경계는 없고, 어느 순간 숲으로 이어진다. 눈은 푹푹 꺼지고, 발목을 잡아당긴다. 미끄러진다기보다, 버티며 내려오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일본의 스키장은 늘 멋졌지만, 동시에 낯설었다. 넓고, 아름답고, 자유로워 보였지만 끝까지 즐기기에는 어딘가 버거운 곳.
한국에서는 빠르게 내려오는 사람을 부러워했다면, 일본에서는 다른 장면에 시선이 멈췄다.
울퉁불퉁한 눈 위를 아무렇지 않게 흘러내려오는 사람, 나무 사이를 망설임 없이 파고드는 사람, 리프트 아래 깊은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사람.
그들은 속도가 아니라, 눈 자체를 타고 있었다.
“우리도 저렇게 타면 진짜 재미있을 텐데…”
“우리 실력으로 저기 들어가면 바로 패트롤에 실려 가.”
“누가 가르쳐주면 좋겠는데.”
의지는 항상 있었다. 문제는, 그걸 배울 방법이 없다는 데 있었다. 한국에서는 그런 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배우려면 언어가 장벽이다.
그래서 늘 부러워만 하다가 돌아왔다.
그러던 차에, 일본에서 한국어로 파우더 스키를 가르치는 강사를 만났다.
오스씨의 은퇴 이후, 우리가 가장 먼저 붙잡은 일은 스키였다. 시간이 생겼고, 더는 미루지 않아도 됐다. 이제는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이었다.
우리는 3일 동안 그를 따라다녔다.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멋지게 내려오기는커녕, 한 발 한 발 겨우 옮겼다. 첫날부터 세게 넘어졌고,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들었다.
그래도 끝까지 따라갔다. 그리고 아주 잠깐, 정말 잠깐이지만 눈 위를 ‘버티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 같은 순간을 만났다.
이 글은 그 짧은 순간을 붙잡아보려고 아등바등했던 우리들의 기록이다.
일본 스키장은 눈이 많이 온다. 정말 많이, 과장 없이 많이 온다.
이번을 포함해 일곱 번을 갔는데, 눈이 오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체감으로는 절반쯤은 눈을 맞으며 스키를 탄 것 같다.
반면 한국에서 스키장 한 달 살기를 하는 동안, 눈을 만난 건 네 번뿐이었다.
일본 스키장의 또 다른 특징은 정설을 덜 한다는 점이다. 슬로프는 울퉁불퉁하고, 그 위에 눈이 쌓이면 겉으로는 매끈해 보인다. 샤라락, 스키 날이 부드럽게 미끄러질 것 같은 표면.
하지만 들어가는 순간 스키는 푹 박힌다. 균형을 잃고 고꾸라지기 쉽다.
게다가 산의 고도가 높아 눈이 오면 안개가 따라붙는다.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시야는 점점 지워지고, 어느 순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된다.
여기에 돌풍까지 겹치면 그날은 스키를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3일 동안 강습을 받는 동안, 이틀이 그런 날씨였다.
하루는 정상 부근에 올라가지도 못했고, 또 하루는 돌풍 때문에 곤돌라와 대부분의 리프트가 멈췄다. 슬로프를 이어 타기 위해 스키를 들고 오르내려야 했다.
날씨가 좋았던 날은 단 하루. 우리가 이번에 배운 파우더 스키 기술은, 사실 그 하루에 다 배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이틀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스키는 눈을 타는 스포츠입니다.”
첫날 뒤풀이 자리에서 강사가 한 말이다.
정설 된 슬로프를 내려오는 것만이 스키가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눈을 타는 것이 스키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운이 좋게도, 혹은 운이 나쁘게도, 그 다양한 눈을 모두 경험했다.
그 말은 스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하루 종일 강사를 따라다녔지만, 그가 말한 방식이 몸에 붙지 않아 기가 죽어 있던 오스씨가 물었다.
“턴할 때 에지를 너무 깊게 쓰는 편인데,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강사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그건 제가 모르죠. 그런 건 한국에서 배우셔야 합니다.”
그의 말투는 놀랄 만큼 단호했다. 비슷한 질문에도 같은 방식으로 대답했다.
“그건 본인이 해결하셔야 합니다.”
그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개인의 기본기를 교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눈의 상태를 읽고, 쌓인 눈의 성질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슬로프를 공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기대했던 ‘족집게 과외 선생’이 아니라 스키학 개론을 강의하는 전공 교수였다. 그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건 스키라는 스포츠를 이해하는 법이었다.
그의 열띤 강의 덕에, 내가 왜 이걸 좋아하는지, 안전하게 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기술보다 먼저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스키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내가 직접 눈을 보고, 그 상태를 읽고, 어떻게 내려갈지 스스로 판단해야 했다.
그제야 질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경우 첫 강의, 모임을 파한 후에도 머릿속이 한동안 정리되지 않았다.
아마 그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워 보였던 것일까. 강사는 자신의 소신을 살짝 접어두고 짧은 개인 지도를 해주었다.
기본자세를 잡아보라고 하더니, 오스씨에게는 오다리라 오히려 자세가 잘 나온다고 했고, 나에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서 있다고 말했다. 직접 손을 움직여 자세를 교정해 줬다.
이전에 여러 번 강습을 받았지만, 내가 틀린 자세를 하고 있었는지 처음 알게 됐다.
원인은 고관절이 유연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기술 하나를 배우는 것보다, 내 몸을 이해하는 일이 먼저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관절을 풀기 위한 지상 훈련이 필요했고, 그건 슬로프 위에서의 어떤 기술보다 더 중요했다.
스키는 슬로프 밖에서도 계속되는 스포츠였다.
이번 여행 이후로, 스키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그만큼, 더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