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했으니 일단은 스키부터 20
강사는, “스키는 밸런스 운동”이라고 계속 강조했다.
“발로 타는 게 아닙니다. 경사면을 내려오면서 허벅지로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 스키를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말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매번 변화하는 슬로프의 상태에 맞춰야 했고, 내 뼈와 근육이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도 동시에 파악해야 했다.
스키는 계속해서 판단해야 하는 운동이었다.
“스키를 계속 탈 수 있으면 치매 걸릴 일은 없죠.”
그 말이 괜한 너스레처럼 들리지 않았다.
밸런스.
적당한 타이밍에 몸의 무게를 옮기는 일. 반복적인 연습과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감각.
그날 밤 파티에서도 나는 그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
눈앞에 쌓인 음식 앞에서, 얼마나 덜어내야 지금의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그것도 결국 밸런스의 문제였다.
여행사는 시즌 마지막을 기념하는 파티를 열었다. 술을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는 저녁 자리였다.
3월 중순 일본에서 열린 행사라 그런지, 참석자들의 연령대는 대체로 높았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는 열 명이 있었고, 직업도 나이도 제각각으로 보였지만 서로의 신상을 깊게 묻는 사람은 없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누군가가 말을 꺼내고, 다른 사람이 이어받고, 그 흐름에 맞춰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질문은 오갔지만, 서로에게 깊이 들어가려는 기색은 없었다.
겉으로는 편안했지만, 보이지 않는 선을 넘지 않으려는 거리감이 분명히 있었다.
그것도 하나의 밸런스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런 자리에 익숙하지 않다. 모임에 가면 자리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고, 주어진 것만 소비하고 돌아오는 편이다. 돌아다니며 건배를 나누지 않고, 궁금하지 않은 것은 예의상 묻지도 않는다.
가족과 친구 중심의 좁은 관계 안에서는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대신, 그 밖에서는 종종 무례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렇게 하지 마라.”
그런 조언을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더 나대진 못하니, 낯선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야 할 때는 가능하면 더 조용한 쪽을 선택한다.
이성애자들 사이에서 오스씨와 함께 있을 때는 더 신경을 쓴다. 우리는 서로를 많이 챙기는 편이고, 그 모습은 "둘이 무슨 관계?"라는 질문을 부른다. 그래서 가급적 눈에 띄지 않으려 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습을 받으면서도 강사와 거리를 두었고, 술자리에서도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는데?”
오스씨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이번 수업에는 여성 보조강사가 함께했다. 나는 주로 그녀에게 질문을 했다.
나는 남성적인 분위기보다 여성적인 태도가 더 편하다. 거친 말투보다는 부드러운 설명이 좋고, 크게 드러내는 방식보다 섬세한 접근이 더 잘 맞는다.
어릴 때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
두 명의 누나가 나를 키웠고, 주변에는 늘 여성들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의 밸런스는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이제는 조금 바꿔볼 수 있을까.
낯선 방식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 보고, 익숙하지 않은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균형을 맞춰볼 수 있을까.
스키에서 오른발과 왼발에 번갈아 힘을 싣듯, 나도 그렇게, 조금씩 균형을 맞춰볼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