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혼인평등소송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by 선우비

지난 일요일,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고 서둘러 차비를 하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인평등소송 기자회견에 참석하라고 시간을 남겨주시는 건가.’

기자회견이 발인 다음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랜 투병 끝에도 마지막까지 웃으며 떠나신 어머니 덕분에, 우리는 제시간에 맞춰 현장에 도착해 기자회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는 많은 분들이 애써주셨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더 많은 분들이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특히 우리의 발언문을 대신 낭독해 준 휴고, 사랑해!

이 공간에서 마음으로 함께해 주신 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의지가 제대로 전달되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모두 감사했습니다.




기자회견 발언문


저는 부산에 살고 있는 선우비입니다. 그리고 제 동반자, 오스씨와는 20년 넘게 한 집에서 살아온 삶의 동료입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서로의 가족이었습니다. 함께 밥을 먹고, 병원을 가고, 서로의 부모와 가족을 만나며 일상을 함께 살아왔습니다. 누가 봐도 부부지만, 법은 여전히 우리를 ‘아는 사람’ 정도로만 취급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재산 공증과 보험 수취인 변경 같은 여러 서류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서로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우리가 함께 살아온 시간이 법적으로는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오스씨는 30여 년을 다닌 직장에서 퇴사를 했습니다. 함께 퇴사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어 가족들까지 모여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회사는 퇴사자의 배우자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그간의 수고를 함께 치하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저 한 발 물러나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일 음식을 만들고, 차로 오스씨를 회사에 데려다주었지만, 저는 그 자리에서 아무 이름도 갖지 못했습니다.


이런 일은 어쩌면 소소한 불만일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에게 닥쳐올 문제들은 훨씬 더 현실적이고, 더 절실합니다.

아프게 되었을 때 서로를 보호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수술 동의를 할 수 있을지, 병실에서 곁을 지킬 수 있을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간병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법적으로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도의 바깥에 놓일 수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이 먼저 떠난 뒤의 삶도 불안합니다. 평생을 함께 살아왔지만 법적으로는 타인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상속 과정에서 더 큰 부담을 감당해야 합니다. 연금 역시 승계받을 수 없습니다.


작년 우리는 부산에서 함께 지내온 두 쌍의 동성 커플과 함께 괌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분명히 결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 결혼은 아무런 법적 의미도 갖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혼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선택을 법의 언어로도 인정받고자 합니다.


혼인평등은 특별한 권리를 요구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는 관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법원에 부탁드립니다. 이 사건을 논쟁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추상적인 권리가 아니라, 삶의 안전과 존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께도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그 관계가 아직 법적으로 이름 붙여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 이름을, 이제는 함께 불러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문기사 링크

https://naver.me/xCj6rl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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