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 결혼원정기 1
작년 이맘때, 우리는 괌에 있었다.
부산에서 온 세 쌍의 게이 커플이, 같은 날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결혼식이라고 하면 보통 두 사람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날의 결혼식에는 주인공이 여섯 명이었다.
각자의 시간으로 만나,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시대의 응원에 힘입어” 같은 결심을 하게 됐다.
이 이야기는, 그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조금은 들떠 있었고, 조금은 계산적이었으며,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인 결혼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결혼을 고민하기 시작한 이유는 노후 때문이었다.
2023년 2월 21일, 뉴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동성부부의 배우자도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동성부부의 관계가 이성부부의 사실혼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소송 당사자인 젊은 게이 부부의 환한 미소가 화면에 떠 있었다.
그 판결이 당장 우리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판결문을 읽다 보니 한 문장이 눈에 콕 박혔다.
동성부부를 “사실혼 관계”로 볼 수 있다는 대목이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서 계산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스씨는 공무원이다. 공무원연금은 사실혼 배우자에게도 승계된다. 만약 우리의 관계가 연금 제도 안에서 인정된다면, 노후의 풍경은 지금과는 전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저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고 희망을 품어보는 정도였다.
11월에는 퀴어 팟캐스트를 듣는데,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린 커플의 이야기가 나왔다.
평소 오스씨는 하와이에 가자고 노래를 불렀지만 나는 늘 시큰둥했다. 리조트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험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동성 결혼을 할 수 있는 여행지로서의 하와이가 갑자기 매력적으로 보였다.
“우리 2년 지나면 20주년인데, 기념으로 하와이에서 결혼해 볼까.”
“오, 그것도 괜찮겠다.”
이성애자 부부들이 결혼 후 몇십 년이 지나 리마인드 웨딩을 하듯이 우리도 그런 기념식을 해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야자수 아래에서 멋진 옷을 입고 사진도 몇 장 남기고 말이다.
그해 말, 홍예당을 통해 ‘모두의 결혼’이라는 단체를 알게 됐다. 동성혼 법제화를 위해 활동하는 곳이었다. 부산에서도 서명 캠페인을 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홍예당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 동거하는 게이 커플이 몇 없어서, 반은 자발적으로, 반은 의무감으로 거리로 나갔다.
서면 한복판에서 서명지를 들고 외쳤다.
“동성혼 법제화 서명 부탁드립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몇 번 반복하자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커졌다. 오스씨는 옆에서 유인물을 나눠줬다.
그해 마지막 밤, 부산 커플모임 멤버인 성민 커플과 명동 커플과 송년 모임을 했다. 모두 십 년 넘게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서명 캠페인 이야기와 하와이 결혼식 이야기가 이어졌다.
“우리도 하와이 가보고 싶다.”
“형님들 결혼할 때 우리가 사진 찍어주면 좋겠다.”
반쯤 희망 섞인 농담 같은 말들이 오갔다. 아직까지 같이 여행을 한 적이 없었고, 다들 직업이 달라 시간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우리 역시, 아직은 검색만 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해가 바뀌면서 하와이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일들이 이어졌다. 아시아 곳곳에서 동성 커플의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들이 이어졌고, 연금과 관련된 사례들도 하나둘 등장했다.
오스씨가 은퇴하기 전에 우리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물증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언젠가 우리가 소송을 하게 된다면, 그때 판사가 한 번에 납득할 수 있는 결정적인 근거.
예를 들면 미국 정부가 발급한 결혼증서 같은 것.
그 순간, 하와이 여행은 낭만에 실용이 더해진 계획으로 바뀌었다.
“이건 꼭 가야겠다.”
그 무렵 ‘모두의 결혼’에서 커플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린 경험이 있는 실무자가 직접 내려온다고 했다. 우리는 기꺼이 수락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우리도 준비만 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며칠 뒤, 성민 커플과 명동 커플을 다시 만났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는 두 커플의 눈빛이 이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공교롭게도 두 커플 모두, 연금을 파트너에게 줄 수 있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우리도 고민해 봐야겠는데?”
“형님, 그 실무자 우리도 만날 수 있어요?”
한 달 뒤 두 커플도 '모두의 결혼'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결혼증서를 받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꽤 의미있는 선택으로 바뀌고 있었다.
각 커플의 사정은 조금씩 달랐다. 우리는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오스씨가 은퇴하기 전에 결혼식을 해야 했다. 반면 성민 커플은 몇 년 뒤 미국 장기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고, 명동 커플은 가을에 유럽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형님들 할 때 우리도 하고 싶긴 하지만…”
“그러게요. 같이 가서 합동결혼식을 하면 여행비도 꽤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괜히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가 먼저 결혼식을 하고, 그 경험을 나누는 것으로 이야기는 정리됐다.
6월, 서울 퀴어퍼레이드에 다녀온 주말, 성민 커플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퍼레이드 경험을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하와이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하와이 여행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우리는 겨울쯤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화가 비용과 준비 과정으로 흘렀다.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보태는 걸 보니, 두 사람 역시 어느 정도 마음을 굳힌 듯 보였다.
마침 그 무렵,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퀴어 팟캐스트 운영자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얼굴도 모르는 우리에게 긴 시간을 내어 결혼 절차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결혼 증서를 받는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웨딩 준비 등의 막연했던 물음들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
통화를 마친 뒤, 내용을 커플 단톡방에 공유했다.
친구들은 이미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듯, 망설임 없이 답을 보냈다.
“우리 같이 가서 합동결혼식 해요.”
둘이 시작했지만, 어느새 여섯이 되어 있었다.
이제 우리는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날을 잡고 다시 모였다. 결혼 절차를 하나씩 정리했다. 가장 중요한 날짜는, 휴가를 내기 가장 어려운 사람의 일정에 맞춰 2025년 4월 초로 정했다.
그 사이 명동 커플은 부산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됐지만 합동결혼식에 대한 의지는 오히려 더 단단해 보였다.
6월 18일, 태국이 동성결혼을 허용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운이 좋은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한 달 뒤, 7월 18일.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동성 동반자는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과 차이가 없다.”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부양자 자격을 부정하는 것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이다.”
우리는 단톡방에 유튜브 생중계 링크를 올려놓고,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역사적인 판결이 나오자 단톡방이 한순간에 들끓었다.
사랑이 이겼다.
짧은 문장들이 연달아 올라왔다.
모두가 환호했고, 나는 잠깐 울었던 것 같다.
세상이 우리 등을 한 번 밀어준 날이었다.
사흘 뒤, 우리는 성민 커플 집에 다시 모였다. 주꾸미무침과 유린기를 앞에 두고, 그동안 모아온 정보를 펼쳐놓았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여행 계획을 짜야 했다.
먼저 숙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구글지도와 유튜브를 번갈아 보며 와이키키 해변 근처를 훑다가, 방 세 개짜리 에어비앤비 하나를 발견했다.
일주일에 450만 원.
다들 눈이 커졌다. 하와이가 왜 그렇게 비싸다고 하는지 실감이 났다.
그래도 한 친구가 예약금을 결제했다. 626.28달러.
그 돈이 빠져나가는 순간,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략 계산해 보니 전체 경비는 커플당 천만 원 정도였다. 잠깐 정적이 흘렀지만, 누구도 불만을 말하지는 않았다. 이성애자들의 결혼 비용에 비하면…
그때 유튜브 알고리즘이 또 다른 영상을 하나 보여줬다.
괌에서 결혼식을 올린 게이 부부의 채널이었다.
다 같이 영상을 보자마자,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괌은 체류 비용이 훨씬 저렴했고, 부산에서 직항도 있었다. 같은 미국령이라 혼인증명서의 효력도 차이가 없었다.
잠깐 망설이기는 했다. 오스씨는 원래 20주년 기념으로 하와이를 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 고민하지는 않았다.
합동결혼식이, 더 큰 기념이었으니까.
“괌, 좋다. 괌에서 하자.”
그렇게 괌 결혼 원정대가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