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커플은 무엇으로 사는가 03
2010년 8월, 난 “가출”을 선언하고 차를 몰아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동거를 시작한 이래로 몇 차례 가출 선언을 하고 짐을 싼 적이 있었다.
오스씨는 트렁크를 들고 나서는 나를 붙잡고 늘어졌지만, 90킬로에 육박하는 몸뚱이를 가진 젊은 게이를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뒤에서 오스씨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린다.
“알았어, 그렇게 해.”
오스씨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내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떠올랐다 서둘러 사라진다.
그렇게 해서 얻어낸 전리품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일명 나의 가출쇼는 이렇듯 현관문을 나서지도 못하고 끝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날은 모든 게 달랐다.
내가 현관문을 열고 기세 좋게 나설 때까지 오스씨는 아무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차에 시동을 걸고 휴대폰을 노려보았지만, 벨은 울리지 않았다.
울산을 지날 때까지도 오스씨는 소식을 보내오지 않았다.
둘 다 싸움을 오래 끌고 갈 만한 두툼한 신경세포와 배짱이 없는 인물들이라 아마도 이때가 최초였을 것이다.
싸우고 1시간 동안 말 안 하기.
그까짓 게 뭐 대수야, 지금에야 웃고 말 테지만 그때는 그 자체로도 꽤나 충격이었던 듯하다.
본래 가출을 하게 된 원인보다 그가 붙잡지 않고 한 시간 넘게 날 방치했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차가 경주를 지날 때, 결국 오스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알았어, 그렇게 하자.”
승리의 환호를 지르기엔 이미 삐짐의 정도가 한계를 넘어버렸다.
“그러든지 말든지. 대구 게이바에 가서 밤새워 놀 거야. 그렇게 알아.”
비수를 야무지게 던지고는 탁 끊어버렸다.
오스씨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고, 그래, 그렇게 해서라도 네 속이 풀린다면 놀고 와, 그 말을 들으니 어째 내가 진짜 나쁜 놈이 된 거 같고, 그래서 그냥 차를 돌려서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Q: 아니, 싸운 이유는 얘기 안 하고 과정이 왜 이렇게 긴 거예요?
A: 내가 고양이를 키우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이 있었는지 말하고 싶어서예요.
그전까지의 분쟁은 현관문을 넘지 않고 해결됐거든요.
그런데 반려동물을 집에 들이는 문제에선 오스씨가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며 반대했어요.
“난 책임지지 못할 생물은 절대로 키우고 싶지 않아.”
그의 신념이었어요.
처음 그의 집에 초대되어 갔던 때가 떠오르네요.
국민 평수 아파트에 화초 하나 없더군요.
같이 살면서 베란다에 화초를 마구잡이로 들일 때도 싫은 기색을 비쳤지만, 식물은 감수한다고 물러섰는데, 살아 움직이는 애는 아니었던 거죠.
Q: 생각 없이 외롭다, 귀엽다는 이유로 동물을 키우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보다는 낫네요.
A: 그... 렇... 죠?
Q: 왜 글자 사이로 떨림이 느껴지죠?
A: 이제 와서 반성하지만,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거든요.
생각 없이, 외롭다는 이유로 고양이를 키우겠다고 떼를 썼습니다.
난 대체로 상식에 도전하길 좋아하는 편인데, 반려동물에 관해서는 ‘한국인의 표준 의식’에 딱 맞는 수준으로 발전해 왔어요.
사실 오스씨를 만나기 전에도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어요.
친구가 키워볼래? 하고 주길래 알았어, 쉽게 데려왔어요.
중성화 수술도 몰랐고, 여아니까 출산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죠.
좋은 품종이라 새끼 고양이들 값이 꽤 나가서, “우리 애는 제 밥벌이는 한답니다.” 자랑하기도 하고요.
부산에서 같이 살기로 했을 때, 오스씨는 고양이 키우는 걸 반대했습니다.
조금 다퉜지만, 그래도 사랑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키워줄 분을 찾아서 보냈어요.
눈물 조금 흘렸지만, 그게 다였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동물은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 기르는 고양이를 입양할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낯선 곳에서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따뜻한 무언가’였어요.
부산에 정착하면서 느끼던 신선함과 즐거움이 어느 정도 휘발되고 나니 300만 광역 시민 중 아는 사람이라곤 달랑 오스씨 하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린 거죠.
낯선 곳에서 낯익은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고양이를 키운 경험이 있으니 고양이가 쉽게 떠올랐고,
그래서 서울에서 떠나보냈던 아이와 같은 종의 고양이를 ‘고양이 공장’에서 사 왔습니다.
Q: 입양 동기부터 입양 방식까지 뭐 하나 맘에 드는 구석이 없네요.
A: 흑역사지요. 그래도 잘한 것도 있습니다.
아이를 입양할 때가 생각나네요.
어미가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개중에서 ‘주인이 추천해주지 않은 애’를 데리고 왔어요.
젖 싸움에서 져서 빼빼 마른 애였거든요.
한눈에도 형제들과 덩치 차이가 크게 났어요.
내가 안 데려가면 주인이 버릴 것 같더군요.
내가 목숨 구한 거야, 이렇게 흑역사에 금칠을 조금 하면서...
아무튼 그래서인가, 위장이 덜 발달했는지 아무리 사료를 많이 줘도 살이 찌지 않아요.
편식도 심해서 특정 사료가 아니면 안 먹고, 심지어 츄르도 최근에야 먹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습식사료를 다 토했거든요.
하지만 요즘 들어서 작은 위장이 장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
소식으로 체중 관리를 잘해서인지 뚱냥이들이 걸리는 병에 걸린 적이 없고, 몸이 가벼워서 열세 살이 된 지금도 거실을 종횡무진 와다다 잘 달리고 있거든요.
Q: 주변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나요?
A: 끼리끼리 모인다고, 지금 가장 친하게 지내는 게이 커플들이 모두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요.
난 한 마리지만, 그 친구들은 두 마리씩 키우고 있는데, 쏟는 애정의 정도가 저랑은 차원이 달라요.
아주 극성 대디들이죠.
한 커플은 한 달에 백만 원 가까이 병원비를 쏟아붓고, 또 다른 커플은 침대를 아예 고양이에게 뺏겨버렸어요.
난 아직도 고양이와 인간의 경계선을 확실하게 구분 짓는 편이에요.
이를테면 서로의 잠자리를 침범하지 말자! 침대는 안 돼!
자연스러운 게 가장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미용도 하지 않고요.
아프기 전에는 병원에도 안 갑니다.
이동장에 넣고 집 밖에 나가자마자 목이 쉴 때까지 울기 때문에 되도록 집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는 편이죠.
친구들은 이런 거도 하고 저런 거도 하면서 돈 좀 쓰라고 하는데, 아직 건강한 걸 보면 내 방식이 딱히 부족했던 것 같진 않아요.
Q: 게이 커플들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건 혹시 자식 대용이기 때문일까요?
A: 그런 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애인과 동거를 2006년에 시작했고, 고양이 키우겠다고 가출한 시기가 2010년이니 4년 정도의 신혼 기간이 끝날 때쯤이네요.
이성애자들이 결혼하고 나서 언제 자식을 갖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비슷하지 않을까요?
하나의 생명이 더 있어야 비로소 지금의 삶이 완벽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아 맞다. 처음엔 그냥 귀여운 고양이였는데, 내 자식 같아진 시기가 있었어요.
한때 우울증으로 혼란스러운 시기가 있었는데, 소파에 누워서 엄청나게 울고 있을 때였어요.
고양이가 속도 모르고 배 위에 올라와서 꾹꾹이를 하는데, 기분이 아주 묘했어요.
슬픈 일이 있을 때 자식이 다가와서 엄마 울지 마 안아주는 느낌?
그 맛에 자식 키운다는 얘기를 누나에게 들은 것 같았는데, 딱 그 기분이었어요.
그날 이후 얘 장례식은 반드시 내가 치른다고 맹세하게 된 거죠.
그때부터 고양이 책을 사서 공부하고, 고양이 유튜브 보는 재미도 알았죠.
Q: 고양이에게 힐링을 받는 재미가 쏠쏠했겠네요. 그럼 다른 커플들에게도 고양이를 추천하나요?
A: 안 합니다.
나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아요.
이제는 인간의 필요로 동물을 위치 지우는 일에 반대합니다.
하지만 가족을 입양하는 거라면 계획과 공부를 통해 충분히 알아보고, 또 파트너와 합의를 본 상태로 추진했으면 좋겠어요.
일단 집사의 마음가짐이 똑바로 서게 되면, 고양이가 주는 기쁨은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거든요.
생명을 책임지는 경험도 쌓게 되고요.
Q: 생명을 책임지는 경험이라고요?
A: 네. 게이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잖아요.
기르는 노동에 참여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항상 그런 불안이 있었어요.
‘내가 누군가를 돌볼 수 있을까? 나 자신을? 나의 파트너를?’
나와 띠동갑인 오스씨도 항상 농담처럼 이야기해요.
“내가 늙고 병들면 네가 날 버리고 도망갈 거 같아.”
노인 돌봄 노동이 쉽지 않다는 건 익히 알지만, 늙고 병든 게이를 돌보는 일은 정말 난이도가 엄청날 겁니다.
자식이 없으니 모든 문제를 두 사람이 해결해야 할 테고,
한 사람이 떠안을 수 없을 만큼 악화되면 결국 요양원에 가야 할 텐데 받아줄지도 의문이고(게이란 사실을 감추면 되지만 다 늙어서까지 그렇게 살아?),
하루하루가 눈물 바람일 것 같아 걱정이 태산이죠.
한 번뿐인 생인지라 관련 업종에서 일하지 않으면 경험을 축적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지금 기르는 고양이를 끝까지 책임지는 방식으로 돌봄 노동을 배우려고 합니다.
사람과는 난이도 차이가 상당하겠지만, 적어도 사랑하는 존재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는 같을 테니까요.
Q: 끝으로 고양이 자랑 좀 해주세요.
A: 백문이 불여일견이죠.
보세요.
사람 나이로 환갑이 넘은 13세 고양이가 이 정도로 이쁩니다.
심지어 남자아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