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에서 최고의 궁합이 되는 방법

by 선우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 MBTI로부터 애써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이거 모르면 간첩이고, 너도나도 이 복음을 공유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일부러 모른 척했다.

이런 종류의 심리테스트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난 스스로를 유물론자로 정의하고 있지만, 사주, 궁합, 타로점, 별자리, 띠별 운세 등,

‘있잖아, 넌 사실 이렇고 저렇게 태어났고, 그래서 이후에 그렇게 살게 될 거야.’라는 식의 이야기들에 항상 매혹되어왔다.


“넌 목의 기운의 강해서 무조건 토의 기운을 가진 사람과 사귀어야 해.”라든가,

“올해는 삼재니까 큰 사업을 벌이지는 마시고.” 라든가,

“넌 고아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마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의 후계자고, 태어나자마자 너도 모르게 강력한 흑마법사를 물리친 덕에 마법 세계 전체가 널 알고 있단다.” 라든가.


물론 그런 말을 듣는다고 행동에 제약이 걸리거나 만나지 말라는 인간형을 만나지 않은 적은 없다.

그럼 도대체 왜 그런데 돈을 쓰냐고 묻는다면,

“그냥. 재미있으니까.”

뻑뻑한 인생살이의 윤활유로 사용할 수 있다면 유물론자를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요놈의 MBTI는 좀 달랐다.

일단 MBTI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 심리학, 과학이라는 단어에서 경계심이 생겼다.

너무 전문적이라고 주장해버리면 일단 사이비 유사 과학이라고 의심부터 하는 버릇 때문이다.

내용은 또 뭐가 그리 어려운지.

유형을 뜻하는 8종류 영어단어의 깊숙한 의미도 어렵고,

그렇게 조합된 16가지 성격을 외우는 것도 힘들고,

각종 궁합표에 기능표까지 들여다보면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에잇! 뭐가 이렇게 복잡해!”

도표라면 학을 떼는 본투비 문과생에게는 허들이 너무 높았다.

어려우니까 재미가 없다.

내가 MBTI를 멀리한 단순한 이유였다.

그런 무식한 나를 복잡한 MBTI 도표 앞으로 멱살 잡고 끌어당길 일이 생겼으니...


작년 겨울 초입, 때 이른 한파로 몸과 마음마저 얼어붙은 어느 날 갑자기,

‘나 지금 괜찮나?’

자문하게 되었다.

연말을 맞이해서 한 해를 정리하다가 문득 떠오른 한 가지 사실.


“어, 나... 걔네들하고 헤어졌구나.”


작년 봄에는 가깝게 지내던 게이 커플과 연락을 끊었고, 가을에는 친한 친구와 절교했다.

모두 십 년 가까이 우정을 나눠온 사이였다.

지천명의 해를 보내는 동안 어쩌다 보니 우정이란 폴더를 사실상 초기화해버린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부터 사이가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같이 있으면 즐겁지만, 서로의 지독한 개성 때문에 스트레스를 주고받았다.

그런데도 마치 아주 오래된 연인이 그러하듯, 보기 싫은 부분으로부터 억지로 고개를 돌린 채 웃음을 교환했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 좋았겠지만, 먼저 나서서 싫은 소리를 하기가 귀찮았다.

그렇게 쉽게 헤어질 사람들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잘 풀리겠지, 만만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다 코로나 시대가 되어 못 만나게 되었고, 문자로 안부를 주고받는 게 너무 편해졌고, 무표정한 얼굴로 상대의 카톡에 ㅋㅋ나 ㅎㅎ를 날리는 데 익숙해졌다.

가끔가끔 짧게 만나게 되면 상대의 단점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코로나는, 아무리 오랜 관계라도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진리를 강렬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코로나가 진정 국면에 들어서면서 다시 자주 만나게 되자, 이미 상대방의 단점을 참아줄 인내력을 잃은 채였다.

십년지기 인연을 끝낸 나의 마음은 슬픔 20%, 자책 10%, 후련함 70%였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 그때 더 노력할 걸, 분명히 후회하겠지만, 지금은 이 후련함을 더 즐기고 싶다.


가버린 인연이 있으면 새로 오는 인연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멈춰있던 사교활동이 재개되자 주위에 친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알아채고 말았다.


“사람 사귀는 거, 힘들다.”


싫은 건 아니었다.

상대를 어느 정도 맞춰주고 내 이야기를 늘어놓고 나면 멍해지는 순간이 생겨났다.

‘이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지?’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사람 사귀는 건데, 그것이 나의 최대 강점인데,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지 못했고, 내가 상대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도 몰랐다.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오면 모든 행위가 공허하게 느껴지고, 다음날 일어나면 전날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단어들이 귀로 들어오지 못하고 술잔에 부딪혀 부서져 버리기라도 했던 걸까?

생각해볼 수 있는 원인은 두 가지였다.

십 년을 사귀었지만, 한순간에 헤어질 수 있는 인간관계의 허무함.

같은 문제가 또 발생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는 패배감.

어, 하다 보니 사귐의 의미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모든 고통은 인간관계에서 시작되니, 그로부터 초탈할 필요가 있다’라는 스님 유튜버들의 조언처럼 신선의 세계로 가버릴까?

아니면 예전의 감을 찾기 위해 무어라도 해봐야 할까.

브런치를 한 이후로 필요 이상으로 공부에 기합이 들어가 있던 나는 후자의 방법을 택했고, 곧바로 MBTI의 세계를 파헤쳐보기로 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오묘한 엇갈림과 그에 따른 해결책을 단박에 파악하게 만든다는 그 복음의 세계에 풍덩 뛰어들었다.


MBTI는 할 때마다 바뀌고, 전문가에게 받아봐야 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간단한 테스트로도 나의 성향은 분명했다.

ENFP.

이 성향을 설명해둔 글을 읽었는데, 마치 나의 뇌를 스캔해서 전시해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란 인간은 가히 ‘인간 ENFP’, 또는 ‘ENFP 글로벌 앰배서더’라고 칭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였다.

오스씨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자기야, 이거 봐. 이거 봐. 이거 완전 나지?”


모든 일에 의심이 많고, 내가 야단법석을 떨면 일단 경계부터 하는 오스씨지만 엄지를 치켜세울 수밖에 없었다.


“딱 너!”


오스씨의 인정을 등에 업은 나의 MBTI 사랑은 그때부터 급가속을 시작했다.


나의 성향인 ENFP를 설명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생각을 멈추라는 말은 본능을 억압하라는 말과 비슷하다.

호기심이 많아서 흥미가 생기면 저돌적인 실행력을 보여주지만, 금방 질려 한다.

생각한 것들을 자신의 감정, 정서, 가치관, 신념을 통해 느끼려고 한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항상 들떠있다고 느끼는 건 본인의 사고를 감정으로 표출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한 것을 체계화하고 효율적으로 실행하는 기능이 부족하다.

과거를 잘 기억하지 못하며 본인이 했던 말과 행동을 잘 까먹는다.

(네이버, <심리학석사 선영씨>의 블로그에서)


위의 설명문을 나의 경험으로 풀어보자면,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나보다 흥미로운 것을 잘 찾아내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난 언제나 거의 모든 것에 흥미를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나의 일상 깊숙이 가지고 오는 데 능숙하다.

남들은 한번 쓱 보고 지나칠 일을 나는 사명감에 들떠 개입하곤 한다.

그 문제를 “인간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로 승격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게 내 영역 안으로 들어온 일은 온 힘을 다해서 해낸다.

물론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할 능력이 떨어져서 주변인의 도움은 필수다.

자신도 모르게 나의 열정에 물들어버린 주변인(대체로 오스씨)은 열심히 보조하다가 어느새 그 일을 좋아하는 자신을 깨닫게 된다.

이제 주변인이 더 난리다.

그런데, 내 속에서 그 일은 어느새 시들...

난 새로운 일에 호기심을 보이고...

주변인(오스씨!)은 화가 나고, 이거 다 어쩔 거냐며 나의 열정의 흔적들을 꺼내서 흔들지만 난 이미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저런 것까지 샀었어?”

헤헤... 배시시 웃으며 ‘그 건’은 마무리.

“자자, 그건 치워버리고 이걸 봐. 이게 뭐냐 하면....”

새로운 수레바퀴가 돌아간다.


언제나 지루할 틈이 없어서 삶이 재미있지만, 사실 “제기랄, 또 실패했어. 왜 끝까지 해내지 못 했지?” 자책은 피할 수 없다.

젊었을 때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미련도 없어서 이곳에서 저곳으로 메뚜기처럼 튀어도 거칠 것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언젠가부터 실패가 두렵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특히나.


벌써 햇수로 18년 연인인데 인제 와서 오스씨와의 생활, 사랑, 뭐든 간에... 실패한다?

이성애자 세계에서 황혼이혼은 일반명사가 되었고, 이혼은 커녕 결혼제도도 없는 게이 연인에게 결별은 결심만 하면 가능한 수준이지만, 그와 헤어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누가봐도 문제가 산더미인 커플 이야기를 들어도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낫겠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아침 드라마를 보면 이미 벌어질 때로 벌어진 관계를 어떻게든 봉합해보려고 자존심도 내다 버리고 아등바등하는 중년 캐릭터가 자주 나오는데,

예전에는 “뭘 저렇게까지 해!” 구질구질해서 싫었지만, 지금은 짠하고 애틋해 보인다.

호쾌한 척 물러나 봐야 뒤는 벼랑 끝인 나이가 분명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지만, 나이 들어 인간관계가 한없이 좁아지고 흐려지는 상황에서라면 어설픈 실패는 맛보고 싶지 않다.

제자리에서 현명해져야 할 때다.


“넌 MBTI가 뭐니?”

최근에 알게 된 친구에게 물었다.

짧은 시간 안에 자주 만나다 보니 이젠 친한 친구 목록에 올려도 되겠다 싶었는데, 어느 날부터 거리감이 느껴졌다.

내가 예민한 걸까?

몇 번 테스트를 해봤더니, 확실히 멀어지려 하는 것 같았다.

평소대로라면 갈 테면 가라, 가는 놈 안 잡는다, 하고 딱 끊어버리는데, 이번에는 이유를 파헤치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대답한 MBTI는 나와 상극의 궁합이었다.

사고회로 자체가 다르게 움직이는 성향이었고, 자주 말을 걸거나, 귀찮게 하는 걸 싫어한다고 적혀있었다.

최근 술 먹자고 자주 불러냈더니, 그것이 역린을 건드린 걸까?

앞으로는 필요하면 네가 연락하라고 하고는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

“인연이 아닌갑다.”


사실 부산 게이 커뮤니티에서 내 나이 언저리의 친구를 만날 기회는 매우 귀하다.

오히려 섹스 상대를 만나는 게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어쩌다 비슷한 연배를 만났다고 해서 반드시 친구가 돼야 할 필요는 없다.

세상엔 나랑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있고, 내가 받아내지 못할 사람, 나를 수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가뜩이나 퍽퍽한 게이 생활, 친구라도 맘 편한 성향끼리 만나서 노는 게 좋다.

MBTI의 최고의 순기능은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라던데, 덕분에 누군가와 앙금을 남기지 않은 채 헤어질 수 있어서 기뻤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왜 친구를 사귈 때 MBTI부터 묻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만큼 삶이 퍽퍽하다는 의미겠지.


“자자, 자기는 MBTI 뭐라고 나왔어?”

당연히 오스씨에게도 빨리해보라고 종용했다.

귀찮아하던 오스씨는 성화에 못 이겨 얼마간 끙끙거리더니 무어라고 말했다.

그가 불러주는 특성을 들었지만, “내가 아는 그”와는 매우 달랐다.

평소 뭐 할래? 물으면 네 맘대로 하셔, 흐물흐물하고 맹탕 같은 남자인데,

MBTI 상으로는 이지적이고, 차갑고, 주도적이고, 계획적인 사람이라고 적혀있었다.


“자기 안 같아.”

“네가 나의 진가를 몰라서 그래. 나 회사에서 이런 사람으로 통한다고.”


나의 MBTI가 이리저리 쏘다니며 헐레벌떡거리는 사고뭉치 이미지(그래도 왠지 귀여운)인 데 반해,

그는 성공한 전문가이자 무게중심을 잘 잡는 꽤 그럴듯한 차도남 같았다.

뭔가 불공평해, 중얼거리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 어디 보자. 우리의 궁합이 어떻게 나왔나...”

오스씨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거 궁합도 있어?”

“응. 서로의 성향에 따라 잘 맞는 궁합, 상극인 궁합이 표로 나와 있어.”


기대에 차서 궁합표를 봤는데, 좋지 않았다.

아주아주 안 좋았다.


“애초부터 인간이 16가지 부류로 나뉜다는 발상 자체가 글러 먹었어.”


오스씨는 재빨리 MBTI를 전면 부정하며 밥이나 먹자고 화제를 돌렸고, 나는 그동안 우리 사이에서 발생했던 여러 갈등이 어떤 성질에서 기인했는지 풀이해보기 위해 MBTI 기능표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며칠 후,

오스씨가 다시 MBTI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다시 해보니까 그때 그게 아니더라고. INFJ라고 나오더라.”

“정말?”

“그때는 대충 짧은 거 해본 거고, 이번에 문항 많은 거로 해보니까 그렇게 나오더라고.”

“INFJ, INFJ라... 어디 보자.

당신은... 새로운 일 시작하는 거,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극혐합니다.

이건 아닌 거 같은데?

낯가림 심하고, 눈치가 빠릅니다.

이것도.

겉으로 웃는데 속으로 욕을 많이 합니다. 관심받고 싶은데 나서는 건 싫어합니다.

딱 자기네.

내 사람한테는 진짜 잘해줌. 그냥 아는 사람한테도 어느 정도 선의를 베풀지만 잘못하면 얄짤없이 버립니다.

자기 버리는 것 잘 못 하잖아.

엄청 조용히 다니는데 엠티 이런 곳 가면 나가서 막 춤추고 노래 부르고 싶어 합니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맞아, 맞아. 딱 나야.”

“뭔가 의심스럽지만 그렇다 치고... 어쨌든 궁합을 한번 봅시다!”


그래서 검색을 해봤더니,


“ENFP와 INFJ는 환상의 궁합으로 유명합니다.

사고방식과 생각이 유사한데, 나아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상호보완할 수 있으며, 서로가 상대방에게 원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잘 통한다고 느끼면서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환상의 짝꿍, 최고의 궁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렇게 나왔다.


오스씨는 꺅! 거봐 거봐, 호들갑을 떨며 좋아라했고, 나는 뭐지, 요거? 일부러 궁합표 보고 적어온 거 아니야?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진짜로 속이려 한 거라면 뭐,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

진짜 잘 맞는 부부의 궁합이란, “안 맞으면 억지를 써서라도 최고의 궁합이라고 우기는 것”이 아닐까?

그런 억지라도 부리지 않는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겠나 싶기도 하니 말이다.


아래는 네이버, <심리학석사 선영씨>의 블로그에서에서 가져온

나의 ENFP와 오스씨의 INFJ의 관계를 나타내는 짤이라고 한다.

재롱떠는 나와, 잘한다 잘한다 박수치는 오스씨...

솔직히...

꽤 그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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