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5] 6. 선구자 되기를 거부하는 사회

그들은 1등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언젠가 누군가 내게 이렇게 푸념했다. "이상하게도 한국기업들은 1등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아요. 누군가 성공한 길을 보고 따라 하는 걸 선호하지. 안전하게요"라고.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의 그 길고도 긴 학습의 기간 동안에는 1등이 되려고 그렇게 기를 쓰고 노력하고선, 정작 사회에 진출해서는 모두들 몸을 움츠리고 모험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기업의 최고경영진까지도.


돌이켜보면 정말 그랬다. 거대 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대기업 정보보호 최고책임자로 근무하는 5년간의 기간 동안 자주 들었던 질문 중에서도 가장 자주 들었던 질문이 있다. 최고경영진부터 팀장급까지 모두 학습을 통해 말을 맞추기라도 한 듯 물어보던 그 질문. 무언가 조금이라도 변화시켜 보고자 했던 내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었던 그 질문. "다른 계열사에서도 하는 겁니까?" 혹은 "타사에서도 하는 겁니까?"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새로운 보안정책의 적용이나 보안설루션 도입을 통한 변화를 추구하고자 제안을 시도하면 항상 저 도전적인 질문이 날아왔다. 질문에 담긴 요지는 단순하고도 명확했다. 다른 계열사(또는 타사)에서 한다면(도입했다면) 검토해 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왜 굳이 우리가 먼저 해야 하냐는 의미였고, 누군가 해서 검증된 것이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하겠다는 소극적 의지의 표현이면서, 남들도 안 하는 거라면 왜 굳이 우리가 귀찮게 해야 하냐는 직접적 거부의 몸짓이었다.


그들은 정말로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굳이 정보보안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위험이나 귀찮음이 동반되는 시도라면 말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고, 안전한 길만을 찾아 건너고자 했다. 따라서 "우리 회사가 먼저 시도해 보면 관련업계(또는 계열사 중)의 선구자로 인식될 수 있지 않겠냐"라는 설득도 그들에게는 아무 감흥을 주지 못했다. 실제로 정보보안은 전혀 그들의 관심거리가 아니기도 했고.


그들은 서로서로 남이 먼저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굳이 먼저 나서서 시행착오를 겪는 수고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남이 닦아 놓은 길을 참고해서 편하고 안전하게 따라가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정보보안 분야에선 앞서서 나아가는 1등이 되고 싶지도 않았고, 선구자로 인식되기도 원하지 않았다. 2등으로도 충분히 족했고 사실 3등이나 4등이어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항상 이렇게 질문했던 것이다.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하는데요?"라고.


그래서 나는 푸념을 했던 보안컨설턴트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러니 남들도 하지 않은 앞선 과제를 컨설팅 결과물의 과제로 보안조직에게 툭 던져주지 말라고. 결국엔 실현되지도 못할 그림을 그리지 말고 그저 현상이라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을 찾아서 제시하라고.


결국은 침해사고가 발생해서 누군가 다치는 상황이 돼야 조금이라도 변할 수 있을 것이고, 본인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그제야 부랴부랴 움직일 거라고.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조차도 굳이 1등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을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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