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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16. 형식적인 교육은 가라

매년 개인정보보호 의무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매년 연말이 되면 많은 기업들이 임직원을 대상으로 급하게 진행하는 교육과정이 있다. 모든 기업과 기관에 속한 직원들이 1년에 최소 1회 이상은 반드시 받아야 하는 법으로 정한 의무교육들이다. '개인정보보호 교육', '성희롱 예방교육',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이 그것이다.


각각 '개인정보 보호법'과 '양성평등 기본법',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 규정된 내용을 토대로 시행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개인정보보호 교육은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모든 기업, 기관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매년 최소한 1회 이상 진행돼야 한다.


그 말인즉슨 적어도 1년에 1회 이상은 기업의 임직원들이 개인정보보호 교육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매년 이렇게 열심히 교육을 하고 있다면, 직원들의 개인정보 보호 의식과 지식이 조금은 성숙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일선 현장에서 느껴지는 효과를 평가하자면 직원들의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인식 수준은 전혀 향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의 실무경험을 토대로 유추해보면 그 이유는 2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대부분 개인정보보호 교육의 작년과 올해 내용이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실제 개인정보보호 교육현장의 교육내용은 개인정보 보호법의 주요 내용을 전파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인 개인정보에 대한 개념과 함께 법 개정 현황 및 주요 처벌 규칙으로 이루어진 교재를 통해 교육이 이루어진다.


교육을 받는 직원의 입장에서는 작년과 같은 또는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다시 들어야 하는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매번 다른 내용과 주제로 변화를 주어 교육에 대한 집중도와 효과를 극대화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기업의 경우라면 가능할 수 있겠지만 공공기관의 경우 현실은 만만치 않다.


공공기관은 매년 중앙행정기관이나 상급기관에서 개인정보보호 교육의 주제와 내용을 정해 소속기관과 산하기관에 공문으로 내려 보내고 있다. 그리고 각 기관 보안담당자들은 공문의 지시사항에 따른 보안교육을 전파해줄 것을 강사에게 요구한다. 보안 강사가 준비한 교육교재의 내용이 상급기관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때는 보강을 요구한다. 공문대로 교육이 이루어졌음을 상급기관에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안 강사가 새롭게 변화된 주제로 보안교육 교재를 개발해 전파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도, 이미 교육의 주제와 방향이 정해진 상황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교육환경이 이렇다 보니 교육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시작 시점부터 교육에 집중하기보다는 스마트폰을 꺼내놓거나 업무를 처리를 위해 노트북을 켜놓고 작업 준비를 하는 등 관심을 다른 곳에 두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분명히 교육을 마치고 서명까지 마쳤음에도 정작 수료한 교육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둘째, 많은 경우 법정 의무교육이 동영상 교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많은 기업들이 도입의 편리함과 시대적 상황을 이유로 법정 의무교육에 대한 직원 교육을 전문업체에서 제공하고 있는 동영상 강의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교육을 주관하는 부서의 입장에서 보면 각각의 의무교육을 현장교육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강사 섭외부터 강의 일정 조율, 참석자 관리, 교육결과 정리까지의 다양하고 복잡한 업무들이 발생하게 되므로, 효율적 업무처리를 위해 온라인 교육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교육에 참여하는 직원들이다. 컴퓨터로 동영상 강의를 켜놓고 다른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예방하고자 전문업체에서는 중간중간 퀴즈를 삽입하거나 마지막 문제풀이를 넣어서 교육내용을 충실히 수강했는지 점검하는 형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퀴즈를 틀리거나 문제를 잘못 풀었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지 않으므로, 직원들이 느끼는 긴장감은 없다. 그저 하루를 귀찮은 강의를 수강하느라 손해보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고, 교육의 내용은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본래 사람은 함께 어울려 지내는 것에 익숙한 존재다. 때로는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고, 타인과의 접촉을 싫어하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타인과 함께 하는 것에 익숙하다. 인간이라는 단어도 사람끼리 어울려 지내는 것에서 유래된 단어임을 고려하면 사람은 혼자서 지내도록 진화된 존재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많은 기업이나 기관들이 쉽게 진행할 수 있는 온라인 강의가 아닌 손이 많이 가는 오프라인 교육을 진행해 온 이유는 명백하다. 전문강사를 통해 강사와 직원 간 직접 대화와 눈 맞춤을 통해 진행하는 사람 냄새나는 교육방식이 컴퓨터를 매개체로 진행되는 온라인 방식보다 내용 전달에 유리할 뿐 아니라, 기업이 강의를 통해 얻어내고자 하는 보안 인식 개선이라는 목적 달성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IT기술이 발달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각종 신기술에 익숙해진 현대에도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이 필요한 이유다.


보안교육 제공 방식의 변화는 어쩌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일 수 있다. 더구나 보안은 전문가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영역이므로 일반 임직원들에게는 더욱 어려운 분야일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찍어내기 식 천편일률적 보안교육을 요구하는 기존의 관행은 개선돼야 한다. 매년 비슷한 내용을 강제로 전파하는 방식으로 직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어렵다. 또한, 동영상 상영이라는 일방향 방식 역시 재고되어야 한다. 사람들에게는 일방향이 아닌 양방향 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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