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축구 리뷰
2021.01.22
충격적인 경기 결과에 하루 동안 리뷰를 쓸 엄두가 안 났다. 안 그래도 금요일 아침의 날씨마저 꿀꿀했는데, 리버풀의 패배까지 더해지니 정상적으로 컨디션과 기분을 조절하기 어려웠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관념 속에서만 머무는 메아리에 불과했다.
리버풀에게 1월은 늘 고단했다. 미친듯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던 작년을 제외하고는 강팀다운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했다. FA컵에서 탈락한다든지, 뜬금없이 의적질을 행한다든지, 무밭을 캔다든지 등등, 1월의 리버풀은 매번 감기라도 걸린 것처럼 허약했다.
2021년 1월에도 그 전통을 이어나가는 것일까? 리버풀은 번리 전 이후 여러 가지 기록을 세우며(물론 모두 좋지 않은 기록이다)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 그 기록들은 다음과 같다.
리버풀은 2021년 리그 득점이 없다.
리버풀은 최근 리그 5경기 3무 2패 중이다.
리버풀은 리그에서 438분 동안 득점을 하지 못했다.
리버풀은 4경기 72개의 슈팅을 날렸고, 0득점을 기록했다.
리버풀이 홈에서 번리에게 패배한 것은 1963년 이후 처음이다.
리버풀이 4경기 연속으로 득점하지 못한 것은 2005년 이후로 처음이다.
리버풀은 2017년 4월 23일 크리스탈 팰리스 전 이후 이어가던 홈 무패(68경기) 기록이 종료되었다.
리버풀은 선발 라인업에 변화를 주었다. 마팁이 부상에서 복귀하면서 경미한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된 조던 헨더슨의 공백을 메웠고, 피르미누 대신 오리기가 선발로 나오면서 공격진에 새로움을 더했다. 반면, 번리는 애슐리 반스와 크리스 우드를 투톱으로 하는 4-4-2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리버풀은 전반 내내 다양한 루트를 활용해 공격을 펼쳤다. 최근 U자형 빌드업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는데, 상대 중앙 수비 블록이 두터울 때 쓰는 공격 전술로 좌우 측면을 빠르게 전환하며 플레이를 하는 빌드업을 말한다. 리버풀은 이 U자형 빌드업을 주로 활용했는데, 측면 크로스의 질과 정확성이 현저히 떨어지며
전반 30분이 넘어서는 좌우 측면 풀백이 스위칭을 하며 공격을 전개했고, 체임벌린과 샤키리는 박스 바깥에서 기회가 날 때마다 중거리슛을 날렸다. 진짜 이것저것 다 해보는데 골이 터지지 않아 답답하고 미칠 노릇이었다. 화룡점정은 전반 40분, 오리기가 날려버린 일대일 찬스였다. 이 장면은 마치, FC바르셀로나와의 18/19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후반 막판에 기회를 날려버린 뎀벨레의 모습과도 같았다. 패배의 복선이랄까나.
전반 막판 파비뉴의 거친 태클 동작으로 선수들 간에 신경 싸움이 과열되면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종료 휘슬이 울리게 되었다.
전반 막판의 사건 탓인지 염려스러운 분위기에서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후반전도 역시 리버풀의 주도권 아래에서 경기가 전개됐다. 얼마 가지 않아 번리의 왼쪽 풀백 찰스 테일러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아웃되었다. 꽤나 헌신적인 플레이로 수비를 해 준 선수였는데 리버풀 입장에선 공략점을 찾을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후반 56분, 오리기와 체임벌린이 아웃되고 살라와 피르미누가 투입됐다. 주전 공격수들이 투입되면서 득점에 대한 기대를 걸어볼 만했다. 그러나, 마누라 라인의 무뎌진 공격력, 날카로움이 떨어진 아놀드의 크로스 난사, 미드필더들의 불분명한 패스 전개와 슈팅까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살라의 결정적인 슈팅은 닉 포프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고, 피르미누의 슈팅은 영점을 벗어나도 심각하게 벗어나버렸다. 오히려, 구드문드손을 투입한 번리가 공격의 고삐를 당기며 리버풀의 골문을 간헐적으로 위협했다.
결국, 일이 터졌다. 후반 81분, 세트피스 상황 이후 애매하게 떨어진 볼을 반스가 끝까지 경합하며 일대일 찬스를 만들어냈고, 이것을 알리송 골키퍼가 제대로 끊어내지 못하며 파울을 범하고 말았다. 예상대로 페널티킥이 선언됐고, 반스는 득점에 성공했다. 반스가 실축하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골이 들어가자마자 나는 안필드 홈 무패를 마감할 것이라는 예상이 밀물처럼 다가왔다.
후반 막판에 미나미노가 투입됐지만, 경기를 바꾸기엔 능력도, 시간도 부족했다. 알리송 골키퍼까지 공격에 가담했으나, 골을 기대하는 것은 셰필드 유나이티드가 잔류할 확률과도 같았다. 결국, 경기는 번리의 1-0 승리로 끝났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 소리가 이렇게나 싫었던 적은 아마 처음인 거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까? 사실 난 잘 모르겠다. 엄청난 승률을 자랑하며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시즌들로부터 누적된 피로인지, 시즌 초부터 신물 나게 따라다녔던 부상 악령 때문인지, 이제는 리버풀의 플레이와 전술이 상대팀에게 완벽히 파훼당한 것인지, 선수들의 기량과 폼이 복구할 수 없을 만큼 떨어져 버린 것인지, 좀처럼 감이 오질 않는다. (어쩌면 전부일 수도..?)
안필드 홈 무패가 이렇게 허망하게 깨져버린 게 너무 아쉽고도 화가 난다. 기록이란 게 영원할 수 없기에 언젠가는 깨질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하는 것과 현실을 마주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다. 스포츠계엔 절대강자란 없고, 정점을 찍고 나면 반드시 내려오게 된다는 말 또한 인정하지만, 정점을 유지했던 시기가 너무 짧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프리미어리그에서 정점을 유지하기 위해선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자본이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같다.
리그 2연패를 꿈꿨지만, 이제 현실을 바라봐야 할 때이다.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낼 수 있는 리그 4위를 현실적인 목표로 삼고, FA컵 또는 챔피언스리그에 비중을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나저나, 하필이면 FA컵 상대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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