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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Apr 08. 2021

[서평] 가난의 문법 / 소준철

- 재활용품 수집 노인에 대하여


   우리 동네엔 커다란 고물상이 하나 있다. 가끔씩 이 고물상을 지나치다 보면 작은 언덕만큼이나 쌓인 폐품과 폐지의 모습들이 보인다. 그 옆으로는 이것들을 수거하고 관리하는 커다란 크레인의 모습이 보이며, 그 앞에는 주차되어 있는 리어카 몇 대의 모습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에는 고물상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노인 분들의 모습을 간혹 볼 수 있다.


   고물상 앞에서 폐지와 폐품 같은 재활용품을 판매하는 노인 분들의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실패자'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열심히 살지 않아서,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서, 심지어는 못 배워서 라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재활용품 수집 노인'은 이미 대중문화나 공영 방송에서 '가난의 표상'으로서 프레임화 되어 있고,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삶의 실패는 개인의 무능함 때문이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이 정말 개인의 문제로 인해 가난의 표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그들의 이미지는 과연 그들이 좌초한 결과일까? 이 책(가난의 문법)의 저자는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이 그런 일과 생활을 하게 된 원인은 개인의 잘못만은 아니며, 대부분이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들이 그런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이 개인의 문제라고 환원시키는 시야를 벗어나, 재활용 정책 및 산업과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의 삶 속에 어떤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지를 짚어주며 그것들을 가시화하고 있다.



   왜 그들이 재활용품 수집을 하게 되었는가?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면 성별과 연령에 상관없이 돈이 되는 일을 하기 마련이다. 소득이 적고 리스크가 큰 일이더라도 생계유지를 위해서라면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이 그렇다. 그들은 동네 거리를 매일 같이 돌아다니며 재활용품을 수집한다. 왜?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재활용품의 가격 산정이 규정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재활용품 가격은 중국의 경제상황, 국제 유가, 국제 원자재 가격, 국내 경제상황 등의 변수로 결정되며, 중간 업체와 고물상의 이윤을 뺀 나머지 가격으로 노인들에게 지급된다. (p107) 2020년 9월을 기준으로 폐지 1kg당 전국 평균 가격은 66.6원이며, 이들이 하루 8시간 노동 후 재활용품 판매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 수집량에 따라 다르지만 - 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이것도 수집량이 최대치였을 때를 산정한 가격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들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수입을 받고 있는지 감이 올 것이다.)


   문제는 단순히 소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비현실적인 수입을 받으며 노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보호조차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재활용품 수집 노동이 제도권에 속하지 않은 비공식적 노동이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재활용품 수집 노동은 재활용품 산업의 제도로부터 재활용품을 낚아채는 일이다. 한마디로 재활용품 수집 노동은 재활용품 정책과 제도가 공공의 영역을 완전하게 커버하지 못해 생겨난 빈틈이 만들어낸 변종 노동이라는 것이다. (p74) 때문에 이들의 노동은 비제도권 속에서 명확한 고용- 근로 계약 관계와 그로 인한 의무와 책임 없이 비공식적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유령 노동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비제도화 되어 있는 열악한 근무 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재활용품 수집 노동을 하는 것일까? 이들의 대부분이 사회보장제도 혜택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1980년대 말 적용된 사회보험(특히 국민연금)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물질적 부를 축적하지 못한 이들은 마땅한 생계의 재원을 갖추지 못하게 되기 마련이다. 몇몇 노인들은 기초수급자 대상에서조차 제외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부양의무자 제도 때문이다. 부양의무자 제도는 가족 전체의 부를 기준으로 복지 서비스 자격 여부를 정하는 제도인데, 가족 전체의 소득이 일정 기준 이상이면 아무리 가족들과 연락이 끊겼다한들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것도 한 몫한다. 대한민국은 현행법상 65세를 은퇴연령으로 규정하고 해당 연령이 되면 노동 시장에서 나가게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부는 사회복지 정책으로 노인일자리사업을 내놓고 있다. 즉, 산업은 노인을 은퇴자로 이해하지만, 복지 정책은 노인을 복지사업의 참여자로 이해하는 상호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p143)


   은퇴연령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노인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정부의 복지 사업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지원사업은 보편적 복지를 제공하기보다는 경쟁을 통한 선별적 복지를 제공한다. 또한, 사업 기간의 한계로 노인들이 생계를 유지하는데 안정적인 토대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주지 못한다. 이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에서 노인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재교육을 시행하지만, 당장 먹고 살 생계비를 버는 시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교육을 위한 시간은 견디기 어려운 시간일뿐더러, 하루 종일 일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것과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노동을 하기 원하는 노인들의 실제적인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면 실패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지만 돈을 버는 노동 행위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고, 법적으로 보호받지도 못하며, 국가의 복지 혜택조차 마음 놓고 누릴 수 없는 것이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의 현실이다. 저자는 이 책(가난의 문법)을 통해 이것이 단순히 개인의 책임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한 근거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변화의 바람은 어디서부터 불어야 할까?


   먼저 저자의 말대로 법과 제도의 개선 그리고 산업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이 제도권 밖에서 비공식적인 노동을 하지 않아도 생계유지의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시행되어야 할 일이다. 정부는 - 통계를 위해 - 임시방편으로 내놓는 껍데기 정책을 시행할 것이 아니라 오래 걸리더라도 실효성 있는 정책을 위해 관련된 연구자들과 협업하여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들을 연구하고 추적해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에 대한 현실을 인지하고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이 불편했다. 기본적으로 이들의 문제는 개인이 좌초한 결과라는 전제가 내 생각 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내가 이들을 위해 간접적으로나마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것을 공론화시키면서 많은 공감대를 형성해 나간다면, 변화의 바람이 나비효과처럼 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언젠가 책에 나오는 북아현동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시야에 접속해서 그들의 삶을 조망하다 보면 그들이 가진 가난의 문법이 어떤 원리로 형성되었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가까운 미래 사회에는 가난의 문법이 아닌 자립의 문법이 그들 사이에서 생겨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서평] 가난의 문법 / 소준철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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