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적·신체적·관념적 정상성의 기준과 표준의 획일화로 인한 폭력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독특함'이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책 제목도, SF소설이라는 장르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독특했던 것은 다름 아닌 '저자의 이력'이었다. 포스텍 화학과 출신이라는 저자의 이력은 내게 독특함 그 자체로 다가왔다.
왜 내가 독특함을 느꼈을까? 무엇으로 하여금 독특함이라는 느낌이 형성된 걸까? 이 막연했던 느낌은 책을 읽으면서 점점 선명해졌고, 기어이 저자가 말하고자 한 주제 의식을 파악했을 때,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내 의식 속에는 긴 책 제목에 대한 낯섦, SF라는 장르에 대한 두려움(나는 뼛속까지 문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대생이 소설을?'이라는 편견이 은연중에 숨어 있었다.
이 책은 그런 편견을 가진 내게 세상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선에 대한 자기반성과 막연하고 주관적인 느낌으로부터 자행되는 차별과 배제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이 책은 내게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책을 통해 저자의 문제의식을 정확히 인지하였고, 주제 의식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SF소설이라고 해서 조금 긴장하고 들어갔지만, SF는 저자의 주제 의식을 최첨단으로 담아내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지 SF가 주는 위협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SF가 주는 무게감보다는 저자의 주제 의식이 더 무거웠다. 이 세계를 바라보는 저자의 다양한 관점들이 각각의 에피소드들 속에 개별적으로 반영됐지만, 결론적으로는 하나의 주제 의식이 모든 에피소드들을 관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언어로 이 책의 주제 의식을 표현한다면 '정신적·신체적·관념적 정상성의 기준과 표준의 획일화로 인한 폭력'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말은 거창하지만 책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비추어본다면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프리즘을 통해 무리인들의 색채 언어를 해석하는 희진처럼 말이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 속에는 정상성을 획득하지 못한 자들에 대한 편견, 차별, 억압, 소외, 배제라는 이름의 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상성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다. 이 세계에는 사회가 정한 정상성에 대한 표준과 개개인의 주관적 느낌으로부터 형성되는 정상성에 대한 기준이 존재한다. 만약, 한 개인이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또는 관념적으로 이 정상성의 기준과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 개인에 대한 편견, 차별, 억압, 소외, 배제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것들은 비정상성을 가진 이에게 정상성을 요청하게끔 하고, 정상성을 가지게끔 획일화를 시킨다.
하지만 이것은 개별성, 개체성, 개성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폭력이다. 소설은 이러한 폭력에 가장 쉽게 노출되어 있는 대상을 어린이, 장애인, 동양인, 여성 등으로 표현하여 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인공답게 맞서 싸우라고 말한다. 사회와 개인이 제시하는 정상성에 대한 기준과 표준이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그것을 인식하고 저항하라고 말이다. 우주가 아닌 바다로 몸을 내던졌던 재경 이모처럼 말이다.
물론, 법과 도덕·윤리적인 면에서는 정상성에 대한 기준과 표준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질서와 정의는 무너질 것이고, 세상은 무법천지이자 혼돈의 도가니가 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정신적으로 고통이 있다고,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다고, 관념적으로 대립된다고 해서 편견, 차별, 배제, 억압, 소외라는 이름의 폭력이 생겨나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 책에 대한 전체 서평을 하기 전에 3개의 에피소드들에 대한 개별 서평을 먼저 썼었다. 각각의 에피소드에 담긴 주제 의식을 파악하고자 노력했고, 나만의 해석을 덧붙였다. 그러나 남은 에피소드들을 읽어가면서 굳이 개별 서평을 쓸 필요가 없어졌음을 느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수많은 편견, 차별, 억압, 소외, 배제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로 인한 사건들이 전 지구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발생한다. 하지만, 우리는 시공간의 한계성 때문에 그 사건들이 일어난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도 없다. 정말이지 책의 제목처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그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아니, 어쩌면 바라보지조차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최첨단으로 발전한다 할 지라도, 우리는 빛의 속도로 차별과 배제의 현장을 넘나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전처럼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고 외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소설은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7개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유추해보건대, 모든 이들이 차별 없이 공생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정상성의 기준을 내려놓는 순례의 여정을 떠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 순례의 여정 속에서 낯선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낯선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낯선 감정을 통해 나의 의식 속에 담긴 나만의 정상성을 직면하고 그것을 내려놓도록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독특한 감정이 어디로부터 기인했는지를 발견하고 반성했던 것처럼.
[서평]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