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세 번째 단편집
류드밀라 마르코프는 어렸을 적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소유한 화가였다. 그녀는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세계와 외계 생명체들이 살고 있는 듯한 행성을 실제적으로 그려내며 대중과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그림을 사랑했으며, 그녀의 그림을 보고 아련함과 그리움 같은 감정을 강렬하게 느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작품의 영감의 원천에 대해서 묻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그린 행성은 실제로 존재하고 자신은 그것을 본 대로 그려낼 뿐'이라고 답하였다.
류드밀라가 세상을 떠난 후, 천문대 관측소에서는 그녀가 생전에 남긴 그림과 모든 면에서 일치한 행성을 발견하였다. 더욱 기이한 사실은 그 행성은 이미 오래전 폭발하여 사라진 행성이라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의문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미래를, 아니면 먼 과거를 보는 능력이 있었던 것일까?
그 기이한 사실이 세계로 전파되던 시각, '뇌의 해석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생각-표현 전환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 기술은 뇌에서 활성화된 뉴런의 패턴을 읽고, 피험자의 생각을 언어 표현으로 옮기거나 반대로 표현된 언어를 역추적하여 피험자의 생각을 추측하는 기술이다. 연구원들은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서는 이 기술을 활용하여 낙관적인 데이터를 얻었다. 그러나, 아기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서는 아기들의 발달 단계를 넘어서는 고차원적인 데이터를 얻으며, 실험을 재시작해야 하는 순간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때 한 연구원이 기이한 결과물을 출력해왔다. 아기들의 데이터가 고차원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이유는 아기들의 뇌 속에서 물리성이 없는 어떤 외계 존재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아기들에게 윤리, 사랑, 이타성 같은 가치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이들은 아기들이 류드밀라의 그림을 볼 때, 뉴런의 움직임이 가장 활성화되었는데, 그 그림의 행성을 자신들의 고향이라고 이야기를 하며, 행성에 대한 아련함과 그리움을 표현하였다.
터무니도 없는 인류와 외계인의 공생 가설에 연구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인류의 인간성은 외계 존재들에 의해 터득되어 온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아기들에게 인간성을 남기고 머지않아 떠난다. 사람들이 류드밀라의 그림에 강렬히 사로잡혔던 것도 어린 시절 공생했던 외계 존재들이 남겨둔 기억 때문이었던 것이다.
단, 한 사람 '류드밀라'는 제외하고 말이다.
‘나'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일까?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형성된 존재이며, 어떻게 형성할 존재일까? 한 마디로 나는 누구일까?
우리는 흔히 나의 존재는 내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들로 구성된 존재라고 이야기를 한다. 나의 생각이 쌓여 행동이 되고, 나의 행동이 쌓여 하루가 되고, 나의 하루가 쌓여 나의 삶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오늘의 나는 과거의 나가 만들어낸 집합체이자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라는 존재가 단순히 내가 살아온 내 이야기들로만 집약된 존재일까?
영국의 윤리학자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는 '서사'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인간은 서사적인 존재라고 이야기를 한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타자의 삶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개인이라는 자격만으로 삶의 이야기를 형성해 나갈 수 없다. 내 삶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 정체성이 형성된 인류라는 공동체의 이야기에 속한다. 따라서, 나를 과거 혹은 타자와 분리하려는 시도는 내가 맺은 현재의 관계를 변형하려는 시도다.
김초엽 작가의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세 번째 단편집 '공생 가설' 역시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 같다. 사랑, 윤리, 이타성 같은 고귀한 가치들을 인간이 아닌 외계 존재로부터 학습한다는 설정이 마치 우리가 서로 다른 모습과 성격, 언어, 국적, 인종 등을 가진 타자들과의 소통, 상호 작용을 통해서 - 공생을 통해서 - 더 고귀하고, 더 나은 삶을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라는 존재의 삶에는 내 이야기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타자들의 서사가 얽히고설켜 있다. '나'라는 존재는 나의 생각과 행동들로 형성되지만, 타자들로부터 배우고 타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 속에서 함께 공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떠한 존재도 우리는 배제할 수도, 혐오할 수도 없다. 나의 삶의 이야기는 너의 삶의 이야기이고, 너의 삶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서평]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