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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Feb 18. 2021

[서평] 스펙트럼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두 번째 단편집


   외계 생명체를 탐사하기 위해 설립된 우주항공회사 스카이랩. 희진은 그곳에서 일하는 촉망받는 연구원이자 서른세 번째 생물학자이다. 그녀는 서른다섯 살 때,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 탐사선에 오른다. 그러나, 추진체의 결함으로 인해 탐사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희진 역시 머나먼 우주 속으로 사라진다.


   그로부터 40년 후, 실종된 희진은 극적으로 발견되어 구조된다. 그녀는 자신이 외계 지성 생명체를 만났으며, 그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고 왔다고 주장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받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증거가 없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그녀를 허언증 환자로 내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진은 자신이 외계 생명체와의 최초의 조우자라는 주장을 죽을 때까지 굽히지 않으며, 생을 마감한다.


   40년 전, 희진은 알 수 없는 행성을 탐사하다 조난을 당한다. 조난당한 지 10일째, 그녀는 그곳에서 지성을 가진 외계 생명체들을 만나고 그들의 무리에 편입된다. 그녀는 ‘루이’라는 이름을 가진 외계 생명체의 집에 살았는데, 그곳에서 루이의 삶을 비롯한 무리인들의 생활 방식들을 관찰하며 지낸다. 무리인들은 색채 언어를 통해 소통을 했으며, 죽음 이후에도 다른 개체를 통해 영혼이 전이되었다. 그렇게 네 번째 ‘루이’가 죽고 다섯 번째 ‘루이’가 나타났을 무렵, 무리인들의 천적이 나타나 희진은 불가피하게 그곳을 떠나게 되었고, 구조 신호가 탑재된 탈출 셔틀을 우연히 발견해 극적으로 지구로 귀환하게 된다.


   지구로 귀환한 희진은 프리즘, 렌즈 같은 유리로 만든 공예품을 모으며, 그녀가 만났던 외계 지성 생명체의 색채 언어를 해석하는 작업에 평생을 몰두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관찰했던 루이가 남긴 문장을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이라고 손녀에게 소개하며 읽어준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ㅣ환대에 대하여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진정한 의미의 환대란 바로 그 타자들을 향한 연민,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환영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데리다가 말하는 환대는 우리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환대의 개념과는 다르다. 그는 기존의 환대가 가지고 있던 개념들(인간 존재를 주인, 손님, 이방인 같은 역할로 규정짓는)을 모두 해체시킨다. 이것들이 오히려 위계를 낳고 배척을 낳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존재를 규정하는 모든 것들을 해체시킨 후, 타자를 만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환대, 즉 '절대적 환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그들만의 리그가 성행하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서 데리다가 말한 낯선 타자에 대한 절대적 환대가 가능할까?


    김초엽 작가의 단편집 스펙트럼은 이 질문에 대한 단초를 외계 지성 생명체와 인간의 조우로써 제공한다. 스펙트럼에 나오는 외계 지성 생명체는 희진을 환대한다. 두 생명체 사이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다. 국적, 문화, 나이, 인종, 성별, 계층 등 인간을 규정짓는 그 어떤 개념도 둘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백지상태의 두 생명체가 조우함으로써 절대적 환대가 가능한 조건이 성립되는 것이다.



   환대는 불가능성에 대한 영역으로 나 자신을 끊임없이 확장시키는 행위다. 외계 지성 생명체 '루이'는 이러한 환대의 의미를 여러 번의 생애 동안 실천하고 실천한다. 희진의 존재에 대하여 아무런 정보도 없는 '루이'는 끊임없이 희진을 관찰하고 기록을 남긴다. 그렇게 한 사람(희진)의 존재와 생을 수십 년 동안 관찰하고 얻은 결론은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로 귀결된다.


   희진 역시 '루이'를 환대한다. 비록 언어 체계가 달라 소통 행위는 불가능하지만, '루이'의 삶을 관찰하는 행위와 그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자신이 받은 환대에 대한 답을 표한다. 이방인과 타인에 대한 배척이 강해지는 현대 사회를 비추어볼 때, 환대에 환대로 답을 하는 두 생명체의 조우야말로 인간이 나아가야 할 지고한 사랑이며 윤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훗날, 희진은 그 누구에게도 자신이 만났던 외계 지성 생명체의 행성과 특징들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아마 이것은 절대적 환대를 지키고 싶었던 희진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혹시라도, 인간이 그곳에 가게 된다면, 그들은 낯선 타자에 대한 환대가 아니라 환난을 불러일으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루이가 희진에게 남겼던 문장(존재를 규정하지 않고 조건 짓지 않는 스펙트럼 )의 빛을 잃고 말 테니까.



[서평]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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