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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Feb 03. 2021

[서평]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첫 번째 단편집


   마을을 떠난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을까? 마을 밖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내가 사는 마을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이유는 무엇일까? 마을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 데이지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마을의 모든 기록들이 담긴 금서 구역으로 향한다. 그녀는 그곳에서 마을의 설립자들, 릴리와 올리브의 기록들을 보게 되고 진실을 알게 된다.


   마을의 설립자 릴리 다우드나는 인간 배아를 디자인해서 결함이 없는 신생아를 태어나게 하는 바이오 해커다. 그녀는 결함이 없는 아이들이 - 신인류가 - 존재하는 세상이야말로 완전한 세상이며, 자신은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어느 날, 그녀는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느끼고 결함이 없는 올리브라는 아이를 만든다. 그러나, 올리브는 자신과 동일한 결함을 가진 아이로 태어났고, 자신의 아이를 폐기할 수 없었던 릴리는 올리브를 위해 자신의 신념과는 대비되는, 결함이 존재하지만 결함을 배제하지 않는 세계를 만든다.


   진실을 알게 된 데이지는 마을을 떠난다. 그녀는 스스로 순례자가 되기를 자청하며, 그 길에 오른다. 고통과 괴로움을 맞닥뜨리기 위해서, 그리고 행복과 사랑을 전하러 가기 위해서.




ㅣ사랑의 역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감정을 의인화하여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흥미롭게 다루는 내용의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기쁨이라는 감정과 슬픔이라는 감정이 나오는데, 대개 기쁨이는 선으로, 슬픔이는 악으로 묘사되어 둘 사이에 대립구도를 만들어내 이야기를 전개한다.


   기쁨이는 인간을 웃게 만들고, 아드레날린을 분비하여 인간에게 행복감을 선사한다. 반면, 슬픔이는 인간을 우울하게 만들고,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로 하여금 기쁨이는 인간에게 유익이 되는 존재로, 슬픔이는 무언가 결함이 있는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는 기쁨이와 슬픔이의 화해 및 통합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대립구도의 인식을 전환시킨다. 기쁨이 존재하기에 슬픔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슬픔이 존재하기에 기쁨이 존재할 수 있다는 역설의 원리를 보여주며, 이 역설이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근본적인 토대가 된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제나 기쁨, 행복, 긍정, 안정, 편안, 쾌락, 완벽 같은 이상향들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손에 넣기 위해 부지런히 애쓰며 달린다. 그것들만 존재하는 세상은 마치 지상 낙원과 같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지상 낙원은 저주의 땅이다. 그런 세상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없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는 보통 낭만적인 사건들을 상상하고, 행복과 같은 달콤한 감정들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경험하면서 깨닫게 된다. 사랑은 행복만을 주는 선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사랑은 우리가 필연적으로 결함, 약점, 허물, 아픔, 고통 등을 마주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러한 이유로 사랑은 결함을 끌어안을 때 시작된다. 타인의 결함을 볼 수 있는 눈과 끌어안을 수 있는 마음이 닫혀 있는 사람은 사랑을 시작할 수가 없다. 데이지가 사는 마을의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없었던 것도 서로의 결함을 끌어안을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타인의 결함을 마주하고 끌어안는다는 것은 괴롭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은 결함과 아픔을 모두 감수하겠다고 내던지는 주체적 결정이자 타인의 세계에 몸을 내던지겠다는 의지적 결단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사랑하면 불행해진다. 사랑은 행복만을 담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기 위해선 결함을 끌어안는 아픔을 수반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사랑이 시작된다. 그것이 '사랑의 역설'이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그들은 사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록, 사랑하는 일이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아프고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타인의 결함을 인식하고 수용함으로써 그들은 사랑을 할 수 있는 눈과 마음을 얻게 된다. 그렇게, 어른으로 성숙해진다. 아이들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지구로 떠나는 순례 의식(성인식)을 행하는 이유는 어른이 되기 위함이자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기 위함인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지구로 떠났다가 다시 마을로 귀환한 순례자들이 존재한다. 아마 그들은 지구에 혼재해 있는 결함과 아픔, 고통을 마주하고 감수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그들이 다시 한번 지구를 가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찾던 행복의 근원이자 삶을 사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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