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주의의 본질적인 모순에 대한 분석
바야흐로, 자유의 시대다. 자유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개인은 타인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 어떤 문화도, 그 어떤 공동체도, 그 어떤 관계도 개인의 삶과 행동을 통제하고 구속할 수 없다. 그 어떤 문화도, 그 어떤 공동체도, 그 어떤 관계도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배제할 수 있다. 자유주의는 개인에게 개인의 자유보다 우선시되는 것은 없다고 이야기하며, 개인을 규정하고 묶고 있는 모든 사슬로부터 해방을 권한다. 그렇게 개인은 모든 사슬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묶여 있는 사슬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워진 것만 같았는데, 갑작스레 불안과 무력감에 휩싸이게 된다. 거대한 세상 앞에 단독자로 선 개인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기 때문이다. 해방되기 전, 함께 묶여 있었던 사람들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나, 그들은 온데간데 없다. 모두 살아남기 위해서 각자도생을 펼치고 있다. 개인의 자유라는 머리띠를 두르며 말이다. 곧이어, 저 멀리서 개인을 보호해주겠다는 거대한 함선이 다가온다. 이것이 과연 개인이 꿈꾸던 진정한 자유일까?
이 책의 저자 패트릭 J 드닌은 이러한 현상이 자유주의 시대의 산물이며, 자유주의가 낳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주장한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약속한다. 또한, 개인이 스스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것과 개인을 억압하거나 구속하는 것들(문화, 전통, 장소, 관계, 규범, 공동체)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유주의는 이러한 목표에 충실했고, 결국 20세기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가장 성공적인 체제로 자리 잡아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패트릭 드닌은 이렇게 말한다.
자유주의는 성공했지만 실패했다!
자유주의는 성공하면 할수록 실패하게 되는 모순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개인주의를 부추긴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강화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국가주의 역시 강화된다. 개인은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을 원하지만, 그 해방의 자유를 보호하고 통제해 줄 국가를 필연적으로 요청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자유주의는 개인이 자유를 요구할수록 개인을 가두어버리는 철창을 만들면서 병폐를 더욱더 키우게 되는 실패적 모순을 낳게 된 것이다.
자유주의의 모순은 자유관의 변질로부터 시작되었다. 자유주의는 자유의 개념과 정의, 즉 자유관을 변질시킨다. 자유주의가 도래하기 이전의 - 전근대적 - 자유관은 이성과 정신의 고귀한 능력을 사용해 스스로를 다스리는 오랜 학습 과정의 결과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홉스와 로크는 자유관을 새롭게 재정의하며, 전근대적 자유관을 붕괴시켰다. 그들에게 자유란 욕구에 대한 제약과 덕성에 의한 통제에서 벗어나 자연 상태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었으며, 자연계 지배와 개인 해방의 도구로 사용될 뿐이었다.
변질된 자유관은 자유교육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근대적 자유교육은 자유시민을 자제의 윤리, 덕성에 의해 통제되는 자유관에 부합되게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새롭게 정의된 자유주의적 자유교육은 인간이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가정하지 않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난다고 가정한다. 대학의 이념은 이러한 가정에 맞춰 자유교육을 개인 해방의 도구로 바라봤고, 전근대적 자유교육을 비실용적인 교육으로 간주하며 실용적인 학문 STEM으로 대체하였다.
개인의 자유에만 초점을 맞추는 자유주의는 개인을 넘어서는 종교와 문화, 공동체의 가치를 간과한다. 자유주의가 도래하기 이전의 사람들은 종교, 문화, 공동체 단위로 전통과 규범을 생성했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자율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이 권리 보호를 위해 사회 계약을 맺었다는 이데올로기를 앞세워서, 인간 본성을 왜곡하고 인간을 전통과 규범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인간은 누구에게서도 생겨나지 않았고, 어디에서도 생겨나지 않는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인간을 문화와 분리시키는 반문화주의를 생성하며, 공동체로부터 벗어나게끔 하여 시민적 무관심과 사사주의를 주입시킨다.
자유주의의 이러한 특성은 시민권의 퇴화를 야기한다. 개인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자유관은 개인의 사적 물질적 표현적 자유를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시민으로서의 정체성과 권리, 공공복리에 대한 요구는 약화시킨다. 개인들은 자유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중앙정부의 역할에 관심을 가질 뿐, 지역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갖지 않는다. 그들은 공적인 것보다 사적인 것을, 시민 정신보다 자기 이익을, 공동선보다 개인들의 의견 취합을 끊임없이 강조함으로써 시민권의 퇴화를 불러온다.
자유주의의 자유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만한, 보편성을 획득할 만한 자유일까? 적어도 드닌의 분석에 따르면, 그렇지 않아 보인다. 자유주의는 내부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고, 자유관을 변질시켜 자유교육의 범위를 축소시키며, 문화와 종교, 공동체의 가치를 파괴함으로써 시민권을 퇴화시키는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자유주의적 치료를 감행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자유주의의 병폐를 만드는 굴레를 낳게 된다.
이것이 드닌이 말한 '자유주의는 성공했지만 실패했다'의 역설이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한 것이 과연 진정한 자유일까? 모든 것들을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집중하고, 다른 것들의 가치는 외면해버리는 것이 올바른 자유의 이념일까? 자유주의 자유관이 현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이념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유주의가 낳은 실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지 함께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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